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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18. 2024

기르던 청개구리가 죽었다

20240417

요즘 아이가 거실에서 밖을 바라보는 일이 잦다.

서서히 노을빛 그러데이션으로 번지는 하늘을 보기 위함은 아니다.

고개를 조금 더 내리면 보이는 축구장의 활기찬 소리에 시선이 가는 것도 아니다.

차가 많아지기 전에 서둘러 움직이는 자동차줄을 보기 위함도 아니다.

저 멀리 대모산을 보며 계절이 푸르르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자 함도 아니다

앞동에 사는 친구가 궁금해서 보는 것도 아니다.

한창 철쭉이 예쁘게 핀 단지 내 꽃밭의 알록달록함에 빠져든 것도 아니다.

그냥 아이 눈높이에서 45도 내려 보이는 그곳에 아이의 소중한 굴굴이가 묻혀있다.


하루에 두 번씩 찾아가서 인사하고, 기도하고, 울면서 노래하며 찾아가는 무덤에 묻힌 개구리의 이름은 굴굴이다. 작년 11월 13일 갑자기 개구리를 잡으러 가겠다는 아이의 순진함이 귀여워 따라나섰다. 채집통과 잠자리채를 들고 단지 내의 개구리 서식지 중 하나지만 추워진 날씨에 더 이상 물을 받지 않는 연못을 서성였다. 패딩을 입기 시작한 추운 날씨에 물 한 방울 없는 곳에 개구리가 있을 턱이 없어 내년 봄에 계곡에 가보자는 말로 설득하고 개구리 이야기를 하며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떤 할머니가 옆에서 귀 기울여 들으시며 멈칫 멈칫하시는 게 느껴졌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으신가 싶어 마주 보고 웃어드렸다. 그때 할머니가 고이 포개고 무언가 품고 계신 손을 내미셨다.

"이 개구리 볼래?"

세상에, 할머니 손에는 작고 귀여운 청개구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김장배추에 섞여온 개구리를 아파트 식물원에 놓아주러 가는 길에 식물원 옆 동에 사는 우리를 만난 건 다시 생각해도 기적 같다. 수많은 날들 중에, 멈춤 없이 흘러가는 시간 중에, 이 넓은 단지의 정신없이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만났다. 할머니에게 개구리를 받아 집으로 뛰어가던 아이의 설렘이 고스란히 기억난다. 차가운 날씨에 뛰어서 빨개진 뺨인지 신나서 상기된 뺨인지 그날따라 아이는 더 싱그러웠고 사랑스러웠다. 전날밤에도 혼자 개구리를 잡고자 집 앞 연못에 갔다가 아빠한테 울면서 끌려왔으니 더 기쁠 수밖에 없겠지. 그렇게 가족이 되었고 개구리를 기르기 위해 귀뚜라미도 기르며 겨울을 보냈다.


4월 13일 아침, 귀뚜라미를 잘 먹었나 확인하려는데 움직이지 않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웅크리고 죽은 채로 마주했다.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에 묻어주고 싶어 아이와 돌아다니다 결정한 곳은 단지 끝의 양지바른 곳이었다. 진한 분홍색의 철쭉을 병풍처럼 뒤에 두고, 트인 축구장을 앞에 둔 해가 잘 드는 곳에 굴굴이를 묻었다.


죽은 동물을 위한 기도문과 직접 만든 개구리 인형을 가방에 달고 다닌다

9살은 누군가의 죽음을 감당하기에 아직은 어린 아이다. 그 죽음이 사람이 아니어도 충분히 힘들고 괴롭다. 처음에는 고작 개구리라고 생각했지만 아이에게 굴굴이는 가족이고 친구였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내가 돌보고 아이는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지라도 아이의 첫 반려동물이고 천사 할머니가 주신 의미 있는 존재였다. 


생각해 보니 죽음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는 없다. 어린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더 연세 드신 분들에게도 죽음은 힘든 일이다. 특히 가족의 죽음은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아이의 기도처럼 함께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남겨진다는 것은 너무 힘들다.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견뎌야 하는 건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남은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 분명한 일이라 그냥 살아가는 거다.

나의 소중한 연두빛깔아이의 힘듬에 나도 힘들다.


그나저나 벌써 단지 내 연못에 개구리가 울기 시작했다.

"나 600마리 잡아올 거야!"
"그래?"
"응!"

개구리가 바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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