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리 Apr 17. 2024

뿌린 대로 거두는 법

20240416

내가 행한 최고의 선행이라는 말에 善行과 先行이 같이 떠오르는 거 보면, 나 혼자이기전에 학부모가 맞나 보다. 예전 같으면 내가 했던 선행을 떠올리며 그중에 뭐가 최고일까 고민했겠지만 오늘 내 두뇌회로를 아무리 돌려도 그 어떤 선행도 했다고 찾지 못하고 쳇바퀴만 돌고 있다. 꼬리를 물고 생각해 보니 선한 행동을 따라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요즘 꼴을 봤을 때, 그다지 수확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면 제대로 뿌리지 않았거나 돌보지 못했음이 틀림없다. 콩심은 데서 콩도 못 따는 실정이니 돌보지 못했음이 맞는 거 같다.

낳았으니 제대로 기르고 잘 돌봐야 하는데 쉽지 않다. 부모이기전에 나라는 자아를 먼저 챙기려다 보니 아이가 소외되었다. 아이도 돌보면서 나 하고 싶은 일도 하는 게 왜 안 되는 걸까? 적당히 둘 다 챙기고 살면 좋은데 태생적으로 생겨먹은 게 중간이 없다. 하나에 빠지면 거기에 몰입하는 속도와 깊이가 남다르다. 혼자 살 때도 분명 그렇게 살았다. 그러다 상처받고 피해 입은 건 내 몫이라는 말을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부모님과 동생들이 증인이니 차마 거짓말은 말 못 하겠다. 그냥 지금보다 덜 힘들었다고는 말할 수 있다. 참 이기적이네.

내가 낳은 자식이 내 부족인지 부덕인지 암튼 지간에 나 때문에 힘들어하니 미칠 노릇이다. 엄마 탓이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는 위로를 많이 듣지만 결국 내 탓이 맞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알아채고 고치려고 노력하는 엄마라는 점.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는 점. 아이가 아직 엄마껌딱지라는 점. 그러니 내가 중심 잡고 잘하면 되는 거겠지.

학교 가서 공부하고 친구들 만나고 잘 지내다 와. 엄마도 네가 학교 간 동안 엄마 일하고 지내다가 학교 끝나면 같이 만나서 서로 집중하고 같이 재미있게 지내자.

엄마와 헤어지는 시간이 너무 슬프고 싫어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는 아이에게 해준 말이다. 아이의 행동이 그냥 한때라기보다는 이유가 있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이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이라며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다른 일은 거들떠도 안 봤으니 아이가 엄마와 있으려고 학교를 안 가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벌려 놓은 일들이 좀 버겁다고 느끼던 참이었는데 어쩌면 나보다 아이가 먼저 느끼고 엄마를 위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긍정회로를 돌려본다. 신청하지 않아서 아쉬웠던 수업에 대한 미련도 이참에 깔끔히 정리가 된다. 이미 결제가 끝난 자격증 과정은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시간을 어찌 내야 하나 고민하던 일이 사라져서 근심거리 하나 줄었다. '그래, 모든 일은 다 결론적으로 좋은 일이 되기 위해서 일어나는 거야'라고 또다시 자기 위안을 삼아 본다.

그래야 나와 아이가 웃으며 살 수 있을 거 같다.

아이를 중심에 두니 새로운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른다. 이 또한 나와 아이를 위한 일이겠지.


그나저나, 선행학습 안 하는 엄마인데 영어 공부 좀 시켜야 할거 같다. 올해 3학년 첫 영어수업에 단어 몇 개 보여주고 앞에 나와서 프리토킹으로 자기소개를 했다는데 속이 답답하다.


"내년에 학교에서 영어 배우는 거 알지?"
"응."
"선생님이 첫 시간에 단어 몇 개 보여주고 앞에 나와서 자유롭게 자기소개하라고 했데."
"My name is Gabriel."
"근데 다른 단어 보여주면 어떻게 해?"
"그럼 첫날 학교 안 가면 되지."
"아하!"

첫날만 안 간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란다 게이브리얼아!

뿌린 대로 거두기 위해 좀 돌봐보자.



#한달매일쓰기의기적


이전 11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