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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Apr 15. 2024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20240415

비가 온다.

일기예보를 미리 확인하며 비 소식이 있으면 신랑에게 알려준다.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달리 우산 챙기라는 말을 못 했다. 마음속에 비가 내리는 아이가 있어서 하늘이 흘리는 눈물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여행 일주일되던 날, 아이의 영혼의 단짝인 사촌들을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난 후로 슬픔을 내비치던 아이는 여행 마지막 날이 되더니 슬픔이 몰려왔다. 여행 후유증이려나 싶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 여행지에서 시간이 그립고,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가서 슬프고, 어느 순간 10살, 11살이 될 거 같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고, 자기가 할아버지가 될 거 같다며 그땐 엄마가 죽고 없을 거라는 슬픔과 불안이 터져 나왔다.

불안은 매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모습으로 튀어나오며 끊임없이 영상을 남기고 싶어 했다. 불가능한 일임을 설득하기 수십 번, 결국 일기를 쓰며 매 초 단위로 기록을 남기려 한다. 한 가지 또 집착하는 건 엄마. 엄마와 한시도 안 떨어지며 껌딱지를 하려고 한다. 모든 걸 같이 하고 지나간 시간들을 자꾸 물어본다. 기억하지 못함에 가슴이 찢어질 거 같다며 오열한다. 그렇게 폭풍처럼 슬픔을 표현하다가 억지로 웃으며 이겨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그 모습에 내 마음이 미어터진다.

아이는 여행 중 떨어진 면역력 때문인지 목요일부터 감기가 심해지면서 장염 증상이 나왔다. 금요일 등교 준비 중, 아침에 먹은 걸 모두 넘기고 학교를 못 갔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며 한 시간에 30번은 시간의 빠름과 죽음, 하늘나라 이야기를 들었다. 금요일은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다른 수업은 다 거부했지만 몸이 아파도 미술수업은 가고자 해서 다녀왔다. 수업 후 피드백을 듣는데 아이가 가장 의지하는 미술 선생님도 아이가 보인 이상증상을 걱정했다.

토요일 아침, 절정을 찍는 일이 발생했다. 기르던 개구리인 굴굴이가 죽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집 아이는 주말 내내 초상집 분위기였고 이걸 지켜보는 엄마의 감정도 같이 물결치며 다른 의미로 초상집이었다. 내가 죽을 거 같았다. 결국 일요일 아이를 재우고 신랑을 붙들고 울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변화와 순한 양이 되어가는 아이 모습에 내 불안 극도로 치달았다. 지난 과거와 오버랩이 되면서 무너질 거 같다.

이러다 아이가 죽어버릴 거 같아.
지금 너무 천사같이 착한 모습이야.
정말 천사가 돼버릴 거 같아.

말도 안 되는 불안인데 이 불안이 나를 잠식했다. 그렇게 울고 나서 아이가 원하는 묵주팔찌를 만들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나는 좀 진정이 되는 거 같지만 아이는 밤새 자다 깼다를 반복하며 울고 흐느끼고 기억을 못 한다.

오늘 아이 상담을 하고 피드백을 받다 나의 불안을 이야기하고 결국 울고 말았다. 선생님은 오늘 상담을 하며 아이는 노말이라고 판단되지만 아이가 검사를 받고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한다. 전문기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면 빨리 진행하고 그게 아니라면 내 불안을 없앨 수 있으니 조속히 검사받기를 권했다.

6세 때 나왔던 아이 모습과 지금 나온 아이 모습을 어떻게 느끼는지 다시 한번 물어본다. 아이의 감정이 가기 전에 내가 그 감정으로 먼저 가서 기다리는 건 아닌지를 조심스레 말했다. 아이는 그럴 수 있지만 부모가 같이 그런다면 아이는 나아질 수 없다. 하나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건 엄마여야 한다. 공감을 해주며 그럴 있다고 긍정적으로 전환을 해줘야 하는데 과연 내가 지금 그럴 있는 상태인지를 물어보신다.

결국 나는 구멍 뚫린 우산은 아니었을까. 일기예보를 보고 비를 걱정하고 대비하지만 구멍 뚫린 우산을 쓴다면, 결국 서서히 젖고 말지도 모른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나인 것 같다.

이번에는 내 안에 거센 비가 내린다.


#한달매일쓰기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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