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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Jan 11. 2024

타인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당신에게 보내는 TIP

찾고 찾고 또 찾자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얼마 안 돼서 썼던 글이 있다. 발행하자마자 다음 메인에 올라가더니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 처음 있는 기분 좋은 일이기에 동생에게 링크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여태 글을 쓰면 제일 먼저 라이킷을 누르고 이상한 부분을 찾아주며 호응을 해주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카톡으로 링크를 보낼 때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오늘 좀 바쁜가? 안 좋은 일이 있나?'

다음 메인에 올라가서 3박 4일을 있더니 베스트 1위도 찍어봤다.


오후에 놀러 온 동생에게 글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는데, 조심스레 그 글이 불편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춘기 시절 동생과의 다툼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동생의 이야기가 안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생각해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동생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기억난다. 하나는 독설이라는 표현이었고, 다른 하나는 언니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게 된 정황의 생략이다.

싸우면서 좋은 말이 오갈 수는 없지만 독설이라는 표현을 써야 했는지 한참을 고민했다고 한다. 독설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기까지 했다는 말에 내가 쓴 은유적 표현이 이렇게 받아들여졌음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동생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분명 동생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했지만 나를 해치는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싸움은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상처 주고 화내고 미운말을 내뱉는 너도 나도 잘못하는 쌍방과실의 그 쌍방이었다. 그러나 내 글에서는 나는 약한 피해자고 동생은 나쁜 가해자처럼 표현되었다는 동생의 말 역시 맞았다. 분명 동생이 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내뱉기 전에 나 역시 그에 못지않은 미운 말이던 행동을 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독설毒舌

네이버 국어사전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을 함. 또는 그런 말.


나무위키

독설은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공격적인 표현이다. 당연히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하며, 대부분의 경우에 그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럼에도 굳이 독설을 사용하는 것은 사용하는 사람이 그것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는 독설이 공격적인 만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큰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기 때문에 이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는 상대가 개선되기 바라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것이다. 이 경우 충고 문서를 참조. 물론, 모든 독설이 충고는 아니며, 굳이 독설의 형태를 띠고 있지 않더라도 충고가 가능하다. 현대 사회로 오면서 충고 자체도 그렇게 바람직한 행위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마당에 독설을 통한 충고는 점점 용인되기가 어려운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동생이 돌아가고 글을 고쳐서 재발행을 했다. 하지만 뭔가 깔끔하지가 않다. 글의 마무리가 아니라 내 기분이 그렇다. 세수를 하고 난 후 뽀독뽀독하지 않고 미끄덩하는 그 느낌이다. 내 이야기와 감정을 담는 글로 누군가가 불편할 수 있구나? 그런 상황이 또 생긴다면 무조건 수용하고 고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넣는 부분은 지양해야 할 글쓰기인가? 솔직한 글쓰기에서 솔직하다는 건 뭘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며 글을 쓰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유의 글쓰기 상담소라는 책을 독서모임에서 읽게 되었다. 중반쯤 읽었을 때 내 눈을 사로잡는 챕터가 있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룰 때,
주의할 점은 무엇인가요?

유작가 역시 나와 같은 고민을 했었고, 이 고민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은 해봄직한 고민이다. 이 챕터 말미를 읽고 나자 머릿속 물음표가 마침표로 종결되었다. 이전 글을 쓰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 TIP을 얻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타인의 이야기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안 쓴다'가 아니라 '함부로 쓰면 안 되니까 조심스럽게 쓴다'로 방향을 잡으시고요. 심판자가 아닌 관찰자가 되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되는 인물을 그려내시길 바랍니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P.162)


그렇다. 나는 내 글을 쓴다는 핑계로 그 당시 상황을 심판하며 동생에 대해서 함부로 쓴 게 맞았다. 그로 인해 동생은 이해할 수 없는 나쁜 동생이 되어 버렸다. 그 글이 다음을 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읽혔으니 내가 많이 경솔했다. 이 자리를 빌려 동생에게 심심한 사과와 솔직한 피드백에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내 1 호팬이 되어주기를 바라본다. 너 없으면 나 못살아, 알지?




이 일이 있은 후로 글쓰기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이 습관이 타인의 이야기 쓰기를 넘어 타인을 배려하는 쓰기를 위해 제시하는 두 번째 TIP이다. 애매한 단어는 무조건 검색을 해본다. 그래서 독자가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고 오해가 없는 단어를 선택하고자 한다. 특히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더욱 심혈을 기울여서 생각하고 쓰고 퇴고한다. 내가 쓴 하나의 단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일이 없기를 그래서 그 상처가 나에게 돌아오는 악성댓글이 되지 기를 바라본다.


요 며칠 고민이 있다. 다음에 발행할 글 제목에 전쟁이라는 단어가 제격이다. 하지만 나는 전쟁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망설임이 있다. 실제로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나의 글을 읽고 너 따위가 전쟁을 알고 쓰는 거냐고 불쾌할 수 있는 부분이고, 요즘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피해를 실시간으로 접하다 보니 나에게도 부담스러운 단어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끊임없이 검색한다.




[고치기 전]

문을 닫는 속도도, 창문을 흔드는 문 닫힘의 세기도 동생에게 지고 말았다.

오늘도 동생의 독설이 너무 아프다. 언니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에 '말이야 방귀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쿨한 여자 아니다.


[고치고 난 후]

문을 닫는 속도도, 창문을 흔드는 문 닫힘의 세기도 동생에게 지고 말았다.

모든 싸움이 그랬듯 서로를 상처 주는 개싸움 중에 동생의 가시 돋친 말이 너무 아프다. 내가 준 상처에 돌아온 언니가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에 '말이야 방귀야'하고 넘어갈 수 있는 쿨한 여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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