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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Apr 22. 2020

산으로도 인생을 배울 수 있나요.

동네 뒷산도 산으로 쳐주신다면, 저는 요즘 산으로 인생을 배우는 중입니다


프리랜서로 삽니다 #4, "등산"



   프리랜서에게 운동이란 하루 일과 중 손에 꼽을 만큼 중요한 항목입니다. 단순히 다부진 몸을 만들거나, 체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직업 특성상 일 하는 시간이 많지 않고, 하루를 통째로 갈아 넣을 정도로 몰입해야 할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취약한 마음이 우울함이나 불안함에 잠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몸을 움직이는 동안은 부정적인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보다 희망찬 관점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것이 가장 주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요즘은 오전 시간을 이용하여 요가와 태권도를 하루 걸러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고,  요가 수업을 진행하던 문화센터가 갑작스레 문을 닫았습니다. 날씨도 따뜻해지고, 운동하기 점점 더 좋은 계절이 오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요가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자, 저는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날씨는 따뜻해지고, 나무들도 푸르러지는데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자니, 온몸이 근질근질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럽게 등산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 공부와 일을 병행하며 바빴던 학부생 시절, 건강을 챙기겠다는 욕심으로 몇 달간 꾸준히 산을 올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갖 장비를 갖추고 고가의 등산복을 입는 화려한 등산은 아니었습니다. 편안한 복장으로 집 뒤에 있는 산을 열심히 오르내리는 게 전부였죠. 그래도 왕복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돌산을 오르는 일은 꽤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당시엔 매일 같은 시간에 등산을 했기 때문에, 자주 보는 얼굴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은 가볍게 인사를 하거나, "젊은이가 산을 열심히 탄다"며 사탕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한파주의보가 내리던 날에도 산에 가곤 했으니, 꽤나 열심히 등산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눈이 온 다음 날은 어김없이 산에 오르곤 했습니다. 눈 쌓인 산은 절경 그 자체였으니까요.  (물론 사진은 가져왔습니다 ^^;)


    그러나 등산을 그만두게 된 것은, 아마 목표 중심적 등산에 지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 저는 등산을 하며  ‘전망대까지’ 혹은 ‘정상까지’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바삐 걸음을 옮기곤 했습니다. 바쁜 스케줄  속 시간을 따로 내서 몸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등산을 하며 물을 제외한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목이 마를 때마다 물을 마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한참을 산에 오르다가 쉬어갈 만한 공간이 나오면 그제야 물을 한두 모금 마시고 다시 등산을 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집'이 또 다른 목표였고, 저는 빠르게 집으로 돌아오기 바빴습니다. 뭐, 여하튼 저번 글에 썼던 유노윤호 같은(?) 목표 중심의 열정 등산을 몇 개월간 지속하니, 산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목표 중심적 행동은 언제나 사람을 지치게 만들죠. 등산 역시 그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나 봅니다.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이후, 다시 시작한 등산은 이전의 등산과는 사뭇 다릅니다.


    먼저 더 이상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을 가지 않습니다. 눈을 떠서 밖을 확인하고, 날씨를 즐기기 좋은 날이라고 판단이 될 때, 바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섭니다. 산을 즐기만한 날씨일 때, 그리고 그럴만한 마음일 때 산을 오릅니다. 삶을 '해야 하는 일'로 채우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로 채우고 싶은 여유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이전처럼 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등산을 시작합니다. “팔각정, 전망대, 혹은 정상”이라는 목표를 정할 경우 가는 길을 충분히 즐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소리나 풀벌레 소리, 맑은 하늘,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빛들을 구경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팔각정에, 전망대에, 그리고 정상에 도착해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목표가 없을 경우는 일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억지로 올라가지 않기보다 힘이 들면 내려올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나를 생각하며 시작한 등산임에도, '목표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개입되는 순간 나를 희생하며 산을 오르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비슷한듯 다른 매일의 산. 날이 좋은 날이면 눈을 뜨자마자 산으로 향합니다.


   다음으로는, 물 먹는 타이밍이나 과일을 먹는 타이밍을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물이 마시고 싶으면 잠시 멈춰 서서 물을 마십니다. 당이 필요한 느낌이 들면 ‘살찌면 어쩌지’라는 걱정 대신, 그 자리에서 당을 섭취하고 행복하게 남은 길을 걸어갑니다. 건강에 신경 쓰느라 너무 많은 계산을 하는 대신 등산하는 그 순간을 즐거워할 때, 마음도 몸도 건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산을 오르면 이전보다 행복감을 자주 느낄 수 있고, 자연스럽게  예민한 상태로 인상을 쓰며 등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등산 시간을 계산할 때는,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에 더 많은 시간을 부여합니다. 올라갈 때 볼 수 없었던 절경들을 즐기기 위하여는 내려갈 때, 천천히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올라갈 때보다 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자연에 시선과 귀를 기울입니다. 이 원리는 삶에서 배운 것 같습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달성한 뒤에도 여전한 일상을 그 일상을 잘 살아갈 때, 참으로 좋은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일 테니까요.



산 아래는 이미 벚꽃이 다 졌는데, 산 위에서는 이제 막 시작인가 봅니다.


    물론 등산은 여전히 힘이 듭니다. 올라갈 때는 자주 숨이 차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멈추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나 오르고 내려오는 매 순간을 즐기기로 결정하니, 이전보다 산이 더 좋습니다.


  혹여나 마음이 처지고 우울하다면, 이번 주말은 시간을 내어 '등산' 어떠세요?


정상 근처에 잠시 머물러서 하늘을 바라보니, 나뭇잎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이 아름답습니다.



<사진 출처>


겨울 설산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J&nNewsNumb=201612100060&pa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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