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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 Jul 29. 2020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프리랜서 삶에서 중요한 것. 해야하는 일은 즐겁게, 하고싶은 일은 과감히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겪은 대표적인 어려움은 수입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입이 예측할 수 없이 너무 많아서 겪는 어려움이면 좋겠지만, 나는 일할 준비가 200% 되었으나 일이 들어오지 않을 때 발생하는 어려움인 경우가 태반이다.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하던 시절에는 일주일에도 두어 번은 거절할 정도로 일이 많이 들어오던 시기도 있었는데, 정작 전업 프리랜서(?)로 살아가려고 결심을 하고 나니 몇 개월째 생각보다 적은 일과 수입에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잦았다. 


    문제는 이 불안함이 삶을 좀먹도록 두지 않는 것이다. 콧대 높게 이 일 저일 가리기보다, 일단 이 때는 물이 들어오는 대로 노를 열심히 젓는 게 중요하다. 


정작 전업 프리랜서(?)로 살아가려고 결심을 하고 나니, 지난 몇 개월 생각보다 적은 일과 수입에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잦았다.





      수입이 불규칙해도, 소비습관은 '가장 많이 벌던 시절'을 언저리를 맴도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수업이 몇 개 들어왔는데, 수업들을 하나같이 (내 입장에선) 기상천외한 제안처럼 보였다. 어머님들이 이제 어린이집에 갓 적응하기 시작한 3세 아이를 매주 한 번 30분간 영어로 놀아줄 수 있냐, 혹은 주말에 4살 남자아이에게 영어 책을 읽어줄 수 있냐는 제안을 하셨기 때문이다.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영어로만 소통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지만, 일을 알선해주신 분은 되려 '요즘은 20개월만 되면 영어를 시작한다'며 너스레를 떠셨다.

     


    일이 들어왔다는 사실은 감사했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예술이론까지 전공한 내가 예쁘게 원피스를 차려입고 바닥을 기어 다니며 반복적인 놀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지금 나는 콧대 높게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래 고민하지 않고 수업을 하기로 결심했지만 말이다.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입시 수업처럼 큰돈이 되는 수업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이 가릴 땐가. 그저 앞으로 삶이 어떻게 풀릴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작은 수업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열심히 할 때,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마음으로 아이의 집을 찾았다. 첫날은 땀에 절어서 아이의 집을 나왔다. 힘들었지만, (남의)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늘 그렇듯 많이 웃을 수 있는 일이었다. 잔잔한 즐거움과 보람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람들은 프리랜서로 살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다는 막연한 환상을 품는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하여는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 일들을 '억지스럽게 참으며 할 것인가', 혹은 '감사하며 할 것인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한몫한다. 


    '해야 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게 해낼 수 있을 때, 삶은 한 뼘 더 행복해진다. 프리랜서들도 자주 삶의 대부분을 해야 하는 일로 채운다. 우리 모두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프리랜서도 하고, 하고 싶은 일도 꿈꾸며 사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삶을 구성하는 해야 하는 이 일을 행복하게 할 때에, 원하는 삶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자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매우 커다란 지출이 예상되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하고 싶은 건 과감하게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하루를 설계할 때, 해야 하는 일들만 하고, 남은 시간을 '해야 하는 일들을 구하기'만 하거나, '다가올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보낸다면 아마 몇 년 후 나는 지금은 아쉬워하고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해야 하는 일은 즐겁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될 때는 주저하지 말고 그냥 그 일을 선택할 용기가 필요하다. 





    비가 많이 온다. 미술관을 가려다가 빗방울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층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한 잔 고르고, 기분도 낼 겸 파운드 케이크도 한 조각 시켰다. 해가 나진 않았지만, 밖은 여전히 밝다. 비를 맞거나, 혹은 알록달록한 우산을 나눠 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지금 이 여유가 허락되도록, 일이 내게 들어왔고 적절한 시간을 노동에 쓸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그 일이 비록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더라도 내게 주어진 이 일들을 할 때, 언젠가 나는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을 늘릴 수 있을 테니까. 설령 당장에 삶의 모든 순간으로 하고 싶은 일들로 채우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저 주어진 매 순간을, 그리고 이 순간을 사는 나를 더 사랑하며 살아가야지. 




    

    언제까지 프리랜서로 살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남들 다 일하고 있는 이 시간에 비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서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날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 나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매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을 놓치지 않는 법을 배워 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저 오늘의 내가 즐겁지 않은 일을 즐겁게 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의 즐거움을 선택하는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 사실을 말이다. 






*사진 참조

https://simplebeyond.com/so-ready-for-spring-2017/

https://www.deviantart.com/4leafclovervn/art/Free-406743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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