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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밤이 Nov 22. 2020

우리는 모두 과정 속에 있음을

떠나고 비우고 채우기

 회사를 그만둔 후 가장 먼저 했던 일이 템플스테이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종교는 없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후부터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 올해 2월부터 12월까지 K 공공기관의 계약직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10개월의 계약기간 중 한 달 반 가량을 채우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삶에 집중하고자 회사를 그만둔 나의 선택에 대한 불안감과 다시 경영컨설팅 프리랜서로 돈을 벌 기회가 주어짐에 따라 흔들리는 마음을 비우고 싶어서였다. 

 대구에 있는 D 템플스테이는 1박 2일 프로그램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11월부터 소규모로 시작하고 있었다. 1박 2일 간 함께 참여했던 사람들은 총 13명이었고 5살 남짓의 어린 아들과 온 모자와 60대 여성을 제외하면 나와 내 친구를 포함하여 10명이 모두 2~30대 초반의 미혼 청년들이었다. 첫째 날은 방사(숙소) 배정 후 입재식(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절하는 법 등을 숙지한 후 사물 관람*,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갖는 것이었고 둘째 날은 새벽예불, 108배로 이루어졌는데 식사를 하는 공양시간을 포함하여 모든 일정은 참여자의 자율이었다.
 
* 사물 : 사찰에서 아침과 저녁 예불 때 치는 네 가지 불구(佛具)로 법고, 운찬, 목어, 범종을 말함
- 대구 D 템플스테이의 전경 -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중 가장 기대했던 시간은 스님과의 차담 시간이었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내면의 불안감을 조금 해소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서였다. 차담 시간은 스님이 직접 우려 내주 시는 차를 마시며 참여자의 질문에 스님이 답을 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대부분 참여자들이 인간관계와 취업준비생으로서 현재의 불안정한 삶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질문은 2가지 있었다.


어떤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사실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라 그 사람에 대해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이런 생각을 하는 제 자신도 싫습니다.


 첫 번째는 20대 여성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었는데 이에 대해 스님이 말씀하시길 30년 전 처음 절에 들어왔을 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스님 또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있다고 하셨다. 그럴 때 스님은 대상도 이유도 없이 그저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마음속에 되뇌며 절 주변을 한 시간씩 걸었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불안장애로 힘들어하고 있던 올해 2월 생일선물 받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나면서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과정은 우리의 뇌를 끊임없이 새롭게 연결한다. 우리 머릿속에서는 매일 10만 개 정도의 연결망이 생성되는데, 바로 여기에 우리가 생각하는 바가 저장된다. 그리고 자주 반복하는 생각을 점점 더 대표적인 생각으로 등장하고, 반대로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는 내용들의 신경 연결은 해체되어 버린다. 우리의 뇌는 얼마나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하게 이용하는지에 따라 완전히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생물학적으로 뇌는 이용하는 방법에 적응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자동장치가 구축되어 있어서 같은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뇌를 조종하는 게 아니라 뇌가 우리를 조종하게 된다.

* 출처 : 어느 날 갑자기 공항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이미옥 옮김, 흐름출판


 모든 인간들은 살아있는 한 죽기 전까지 생각할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순 없지만 타인에게 투영된 나의 모습에 대해 이유도 대상도 없지만 감사함과 미안함을 대표적인 생각으로 등장시키고 분노, 미움 등의 부정적 감정을 해체하는 연습을 한다면 어느덧 우리는 완벽하지 않는 나와 타인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모습들은 제각각이겠지만 그 모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 것인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에 스님의 행동처럼 우리 스스로에 대해 감사와 용서의 마음을 되새기는 과정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것을 도전하는 것이 어려워요. 걸어온 길을 버리고 가기엔 너무 늦은 것 같고, 주어진 현실을 살다 보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어요.


 두 번째 고민은 나이가 먹을수록 또 다른 도전을 하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내용이었다. 이 고민은 나 또한 20대를 지나 30대 초반까지 고민해왔던 부분이라 참여자들에게 나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저는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되는 일을 하면서 살았어요. 그러다 30대가 되면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요즘 말하는 '현타'가 오고 나서 생각해 봤어요. 우리 세대가 100세까지 사는 시대인데 내가 만약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지금 30대 중반의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일로 60년을 살 텐데 늦은 것 같지 않고, 반대로 내가 일찍 죽는 운명이라면 내 마음이 원하던 것을 놓치고 죽기 전에 서둘러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두 가정의 초점은 결국 하나로 가게 되더라고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라고. 그런데 저도 제가 원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그리고 혹시 내가 너무 이상적인 삶만을 살려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는 시간이 3년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고민하던 시기가 길었던 것에 대해 '더 빨리 결정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그 고민하던 3년 동안의 경험이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데 너무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 경험을 통해 지나고 나니 필요 없는 시간은 없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섣불리 선택하지 못하는 시간 또한 필요한 시간이에요. 지금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며 현실을 살아가 보세요. 어느덧 정말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확실해지는 시기가 옵니다. 다만 그 시기를 맞이하기까지 자신에게 늘 고민해보세요,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내 마음을 잊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언제가 해야겠다는 결심이 설 것이고 사실은 그때가 적기인 거죠"

 생각의 과정과 선택의 과정이 모여서 삶의 여정이 된다. 이 여정의 어떤 순간들은 결론이라고 느껴지는 때도 있지만 우리 삶의 결론이란 결국 죽음뿐이다. 죽음이라는 결론 안에서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든 삶은 과정일 뿐 결론이 아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당연한 결론'을 향해 가는 우리 개개인은 삶을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을 꾸릴 것인지 각자 선택할 수 있다.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종국에는 하고 죽느냐, 안 하고 죽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고민하고 선택하는 그 과정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다. 늦은 것은 없다. 길은 걷는 순간 길이 된다. 그때부터가 길이다.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 출처 : 길, 박노해, 느린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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