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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밤이 Jan 03. 2021

내 뇌가 기형일 줄이야 (1)

갑작스러움과 함께 살아가기


올해 초 대구로 내려오면서 심해진 어지럼증과 구역 증세로 한 동안 걱정이 많았다. 어지럼증은 기립성 저혈압이 있는 나에겐 다소 익숙한 증상이었지만, 생간도 잘 먹을 정도로 비위가 강한 나에게 이유 없이 구역질이 나는 건 처음이었다. 거기에 왼쪽 팔다리가 저리고 불수의적으로 근육 경련이 함께 일어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작년 여름 발생했던 공황 발작의 영향일 것이라 치부하며 안정을 취하면 좀 나아질 거라 여겼다. 그래서 집 근처 금호강변을 달리고, 자기 전엔 명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린 증상은 사라지지 않고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불편했다. 또 갑작스러운 발작으로 잠에서 깨어나기를 반복하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 괴롭기도 했다. 


관련 증상들을 검색하니 대부분 뇌졸중, 파킨슨병 증세였다. 뇌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무서웠다. 거기에 언니가 앓고 있던 다발성 경화증이 뇌와 중추신경계 질환이다 보니 괜찮아지기만을 기다릴 수 없었다. 마침 회사에서도 연말이 되기 전 건강검진을 하라는 안내가 내려와 회사 연계 건강검진센터에서 회사가 지원해주는 20만 원짜리 기본 검진과 함께 추가 검진으로 뇌 MRI를 신청하였다.


무릎 연골이 찢어져 MRI를 찍어본 경험이 있던 터라 뇌 MRI도 20분가량 찍겠거니 각오하고 왔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검진 결과는 다른 검사 결과들과 함께 3주가 지나 우편으로 배송되었다. 오랜 프리랜서 생활로 직장인 검진대상에서 제외되어 제대로 된 건강검진은 처음이라 조금 떨리는 마음에 검진 결과지를 열었다. 맨 첫 번째 장은 ‘종합 판정’ 란으로 모든 검사 결과 중 유의미한 결과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된 결과가 기술된 곳이었는데 그중 첫 번째 결과는 뇌 MRI였다.

뇌 Screening MRI(T2 axial) – 좌측 중 두 개와에 약 38mm *16mm 크기 지주막낭종이 있습니다. 정기적인 추적검사 요합니다


검사 결과를 읽는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내 뇌에 뭐가 있다고?’

서둘러 지주막낭종을 초록색 검색창에 입력하고 검색 버튼을 눌렀다. 지식백과에 나열된 내용들을 읽어보니 뇌를 둘러싸고 있는 지주막하라는 공간에 뇌척수액이 들어와 생기는 선천적 기형의 물혹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크기가 더 커지지 않으며 아무 증상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혹 낭종의 크기가 커지면서 두통을 일으키거나 주변 뇌 조직을 압박하여 뇌전증, 일명 ‘간질’이 생길 수 있다고 나와있었다.


‘지금까지 내 증상들이 혹시 이 낭종으로 인한 뇌전증 증상이 아닌가?’ ‘단순 낭종이 아니라 뇌종양이라면 어떡하지?’ ‘언니가 가진 병과 관련 있는 건 아니겠지?’


결과에 대한 문의사항이 있으면 바로 연락을 달라는 문자가 기억나 다음 날 바로 검진 기관에 전화를 했다. 지주막낭종이 확실한지, 혹시 뇌종양이나 다른 질병일 가능성은 없는지 물어봤다. 담당 간호사가 말하길 검진 결과가 확실하지 않을 경우 전문병원에서 정밀검사를 요구하는데 추적검사만을 요하는 것은 문제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내 몸의 여러 증상들은 언니의 병과 연관된 증상이었고, 병 자체가 가족력이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이라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MRI 검진 결과를 CD로 받아 큰 병원을 가기로 했다.


언니가 10년 가까이 다녔던 E대학병원 홈페이지에서 K교수님을 찾았다. 해당 병원 의료진 예약에 나오지 않아 인터넷에 검색하니 마침 언니네 집에서 멀지 않은 C대학병원에 계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언니가 진단받은 다발성 경화증은 현재도 전국에 25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병으로, 2000년대 초반에는 병 자체가 많이 알려지지 않아 진단이 잘못되거나 치료가 늦어져 팔다리 마비 등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행히 언니가 쓰러져 실려갔던 병원의 K교수님의 빠른 진단과 처치로 현재는 10년간 재발 없이 보통 사람들처럼 지내고 있다. 


검진 결과가 나왔을 때 친한 친구 몇몇을 제외하곤 가족에겐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야기하는 것이 싫었고 특히 언니에 이어 나까지 선천적으로 이상이 있다는 사실에 엄마 잘못이 아니지만 분명 죄책감을 느낄 것 같았다. 그러나 검진 후 2주가 지난 주말, 서울에 있던 약속 때문에 서울 본가에 머물다가 내려가는 날이었다. 검진 결과가 배송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보고 ‘결과 나왔네, 결과나 보러 가야겠다’하며 흘린 말을 엄마가 기억하곤 며칠 뒤 결과를 묻는 전화가 왔다. 거짓말까지 해야 할 심각한 병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올해는 뭐든 숨기는 것 또한 더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도 있기에 엄마에게 결과를 말해주었다. 


사는데 지장은 없는 것 같은데 뇌에 물혹 같은 게 있다고 나오네, 선천적 기형이고 뇌가 생겨날 때 기포가 생겨서 그렇대, 더 커지는지 추적검사 정도만 하면 되나 봐


약간의 탄식이 휴대폰 너머로 들렸다. 나는 덤덤하게 얘기했지만 마음이 쓰렸다. 엄마는 결국 그렇게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나지막하게 사과했다. 엄마의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에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화가 나면서 속이 상했다. 대상도, 실체도 없었다. 도대체 자식이 세명이나 되는 집에 한 명이라도 멀쩡할 순 없는 걸까? 나라도 잘해야 한다는 속박에 살아왔던 시절에서 벗어날 무렵 이제 또 다른 걱정을 끼치는 것 같다는 죄책감을 피할 수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은 늘 갑작스럽게 나타나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일들이 발생할 확률게임에서 왜 나는 늘 비껴가지 못하는지, 앞으로의 삶에서 또 어떤 갑작스러움이 나를 흔들지. 새해를 준비해야 할 나의 연말은 눅눅했다.



너무 가까워서 입은 상처이다. 언니는 손목에 칼을 댈 정도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지니면서도 자신에게 한번도 그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던 미란이. 다정했던 딸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타인이 되어버렸고, 미란 또한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기에 날개가 찢긴 독수리처럼 눈이 퀭헤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럴때는 서로 헤어져있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잖으면 마음과는 달리 서로에게 더욱 상처를 입힐테니까 -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신경숙 

가까울수록 보여주기 싫은 것들, 가끔 타지에서 만난 여행객들에겐 무장해제가 되지만 사랑하기에 더욱 말하기 어려울때가 있다. 어릴때 마냥 드라마를 보면서 왜 말을못해? 라고 했던 부분들이 이제는 점점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날개가 찢긴 나보다 더 아파할 사람이기에 차마 말하지 못하는 그 핏덩어리들. 토해봤자 나에게 도로 튀어버리는 그 덩어리들이 싫어서 아예 꾹꾹 눌러버린다. 피해버린다.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기형적인 삶이 태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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