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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라랜드 Feb 10. 2018

노견에게 어차피 죽을거라는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프로불편러의 소심한 일상

우리집 강아지 '롬이'는 16살 할아버지이다.

블랙시츄인 녀석은 원래 털이 아주 까맸지만 이제는 회색털이 되어버렸다. 

녹내장때문에 한쪽 눈은 적출되었고, 다른 한쪽 눈도 시력이 없다.

최대한 눈 적출만은 피하고자 했지만 녹내장이 심한 경우 안압이 높아 눈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물론 롬이의 눈 적출을 고민했던건 보기 안 좋을까봐... 이런 이유는 전혀 없다. 

단지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혹시 눈이 없어진 것으로 인해 공허함? 이런 것을 녀석이 느낄까봐 크게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안압이 심하게 높은 경우에는 적출이 불가피했다. 아이가 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울었다. ㅠㅠ)


치매가 있어서 밥이나 물도 먹여줘야하고 기저귀를 차고 잠을 재운다.

강아지는 사람처럼 혼자 나가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요리를 한다고 하다가 불을 지른다거나 이런 큰 위험은 없기 때문에 치매라고해서 엄청나게 문제가 있지는 않다. 

그러나... 원래 하던 애교나 장기는 당연히 사라지고, 이름을 부르거나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아이처럼 지낸다. 

(롬이는 다행인지 원래 애교나 장기가 없었다. 그 흔한 '손!'. '앉아!'도 원래 못했다. ㅎㅎ)

잠을 깊게 자지 못하고, 밤새 울거나 짖고, 밥을 안먹거나 너무 많이 먹기도 하고.... 뭐 증상이 정말 많다.

 용변을 못 가리는 것은 기본인데 롬이의 경우 눈이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아무데나 똥오줌을 싸진 않는다. 오히려 신호가 오면 낑낑대로 약간씩 짖으면서 우리한테 화장실쪽으로 자기를 옮겨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가끔 침대 등에 오줌을 지릴 때가 많아서 하는 수 없이 기저귀를 채우게 됐는데 강아지 기저귀보다 성능이 좋다고 하여 하기스를 쓴다.

놀이터에서 가볍게 산책을 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강아지 늙으면 힘도 없고 돈만 많이 들지. 어차피 곧 죽을 거 아냐."

하루는 롬이와 가볍게 산책을 하는데 (놀이터까지는 안고 가고 놀이터에서 부딧히지않게 약간만 산책을 한다.) 

어떤 할아버지꼐서 오셔서 롬이를 보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롬이는 딱 봐도 건강해보이진 않기때문에 ㅎㅎ 염려어린 인사는 익숙했는데 갑자기 할아버지께서 어차피 죽을테니까 강아지에게 돈을 쓰지말라고 그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말이 매우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 강아지에게 할 말인가 싶었다. 

사람이든 강아지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아무리 늙고 병들었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함께해주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 아닌가. 

화가 나서 "저 돈 많아요. 부자에요." 라고 하고 싶었지만, 너무나 큰 거짓말이기 때문에 참았다.


노견에게 어차피 죽을거라는 말을 하지 말아 주세요. 



DTP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박별라 입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크고 작은 아이러니와 불편사항을 그림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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