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물괴>
추석 시즌 빅매치 영화들이 차례차례 개봉했다.
<물괴>, <안시성>, <협상>
그중 첫 테이프를 끊은 <물괴>만 관람하고 아직 다른 작품들은 보지 못했다.
<물괴> 제작발표 때부터 김명민, 김인권, 혜리, 최우식, 박희순, 그리고 이경영까지 화려한 캐스팅 면모를 자랑하는 이른바 펙션 사극물에 괴수물을 조합한 기대작이었다. 처음 발표 때는 정우성 주연의 진지한 분위기였으나 도중에 하차하고 감독마저 교체되면서 톤이 조금 더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바뀌겠구나 싶었다.
그동안 <괴물> 이후로 이렇다할 크리쳐물이 없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했었지만, 한 달 전쯤 극장에서 '물괴'의 예고편을 봤을 때 느낀 우려는 역시나 빗나가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영화는 크리쳐물로는 '실패'작이 아닐까 싶다.
캐스팅이나 배우들의 연기하는 캐릭터에 대한 촌평은 차치하더라도, 괴수물을 표방했을 때는 무엇보다 크리쳐의 매력을 얼마나 잘 살리는지가 관건인데 불행히도 <물괴>의 초롱이(이름조차....)는 그다지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다.
비록 최근에 혹평을 받고 있지만 <프로데터> 시리즈의 경우를 보더라도 '서사'의 빈곤함을 프로데터라는 캐릭터의 강렬함으로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런 크리쳐물은 서사를 포기하더라도 등장하는 크리쳐가 관객들에게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주는가. 장르적 쾌감을 안겨주었는가 하는 부분이 정말로 중요하다. 예컨대 앞서 개봉한 <메가로돈>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관객들이 크리쳐물에 기대하는 것은 너무 빤하다. 하지만 <물괴>는 이런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고 '초롱이'를 주인공 파티를 위협하는 강력한 안타고니스트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다. 마치 프랑스 영화 <늑대의 형재들>을 연상케하는 정치스릴러의 플롯을 입히는 바람에 오히려 이경영이 연기하는 영의정보다도 '위협'을 가하지 못한 게 패착이지 싶다. 차라리 복잡한 플롯을 포기하고 스트레이트한 크리쳐물로 이끌었으면 어땠을까? 크리쳐의 매력만 충분하다면 관객은 기꺼이 서사를 포기하고 영화를 즐길 용의가 있는 게 바로 이런 괴수물/크리쳐 장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죠스>라든가, 리부트를 거치며 여전히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에일리언>의 중심은 결국 강력한 크리쳐들이다.
일본의 장수 시리즈인 <고지라>나 <가메라>는 또 어떤가.
제목부터 <물괴>라고 정했다면 등장하는 크리쳐의 캐릭터를 제대로 확보했어야 했다. 게다가 '초롱이'의 설정도 앞서 언급한 <늑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루가루'의 탄생과정을 그대로 답습해버리는 우를 범했다. 그 어떤 개성도 부여하지 않은 크리쳐는 결국 무대에서 밀려나 '병풍'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김명민, 박희순, 김인권, 이경영, 최우식... 이런 배우들을 한데 모아놓고 이도 저도 아닌 어설픈 정치스릴러 사극으로 가버리다니.
우리가 즐겨 먹는 비빔밥은 어지간해선 실패하기 어려운, 재료만 나쁘지 않으면 충분히 '맛을 보장'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때로 사소한 조합의 실패로 맛없는 비빔밥이 되기도 한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말이다.
명맥이 끊긴 크리쳐물이 제대로 부활할 수 있을까 기대를 했으나, 아무래도 아직은 무리였던 모양이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괜찮은 크리쳐물이 나올 수 있었음에도 그저그런 팝콘무비로 전락해버린 <물괴>는 두고두고 아쉬운 기획으로 남을 것 같다.
팝콘무시지수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