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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열흘나비를 아시나요?

by 이상민 NIRVANA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핸드폰이 흔하지 않았던, 무선호출기도 생경했던, 그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상우는 정들었던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건물주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임대료를 올려서 가게를 비워야했습니다. 사실은 건물주의 의지는 아니었습니다. 그걸 알기에 상우는 건물주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상우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전시회에 마주친 사람인데 첫눈에 반해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인연이었던 것인지 그녀 또한 상우에게 어떤 끌림을 느끼고 그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혹시, 열흘나비라고 아세요? 친한 친구 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딱 열흘만 산다는 열흘나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래요. 너무 아름다워서 한번 열흘나비를 본 사람은 그 모습을 잊지 못해 평생 열흘나비를 찾아다니다가 결국에는 상사에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만대요. 세상에 하나뿐인 사랑 같은 거……. 근데요. 초면에 이런 말하면 미친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요. 저, 오늘 그 열흘나비를 본 거 같아요.”

그녀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마 처음 받아보는 근사한 고백이었을 겁니다.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가까워졌습니다.
서로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이었던 것처럼. 운명 같은 사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 지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때문입니다.
사채업을 하는 그녀의 아버지는 자기 딸을 힘 있는 집안의 며느리로 보낼 생각이었습니다. 고아 출신인 상우를 마음에 들어야할 리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두 사람 사이를 반대했고, 그녀가 말을 듣지 않자 실력을 행사해서 건물주를 협박했던 겁니다.
결국 압박을 견디지 못한 건물주는 상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가게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마음이 여린 상우는 건물주를 이해하고 순순히 가게를 비워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상우는 가게를 정리하고 그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그녀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게를 비우기 전날, 상우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비록 가난한 청년이지만 상우에게는 멋진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사랑하는 그녀를 모델로 삼아 많은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상우는 가게를 전시장으로 삼아서, 그동안 찍었던 그녀의 사진들을 진열했습니다.
그리고 출입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벽면에는 커다랗게 확대한 사진을 걸어두었습니다.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날이 저물고, 그녀가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상우에게 열흘나비를 가르쳐줬다는 그 친구가 부탁을 받고 데려온 것입니다.
그녀는 그때까지도 영문도 모르고 상우의 친구를 따라 가게로 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뜻하지 않는 이벤트에 말문이 막혀 우두커니 서서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길이 정면에 걸린 사진에 이르렀을 때,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사진의 제목은 ‘나의 열흘나비’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게 만든 사진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커다란 액자 밑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증명사진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진에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열흘나비에 눈이 먼 남자’라는 제목이.


상우는 눈물 짓고 있는 그녀를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사랑한다고. 너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다음날, 두 사람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행복한 사랑의 도피를 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픈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두 사람은 행복했을 겁니다.
함께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열흘나비임을 확인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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