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1993

디스코

by 임월

밤은 언제부터인가 제게 숨겨줄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열두 시간째의 불면이 서른 번째 삶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열한 번째 담배, 여섯 잔의 커피, 스물세 번의 뒤척임. 삼 년 전 열대야가 시작된 이후로 도시는 온기를 잃어갔고, 삼십이 도에서 시작된 열기는 이제 영하로 떨어졌습니다.


육교 위에서 열두 번째 담배를 피웠습니다. 백 미터 아래로 차들이 흐르고, 이천 미터 위로 비행기가 붉은 점을 남기며 사라졌습니다. 동경 상공을 지나는 비행기. 스물다섯의 여름밤 그녀와 처음 만났던 그 도시로 향하는 불빛입니다. 열세 번째 담배를 꺼내 물고, 꽁초를 난간 밑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작은 불빛 하나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습니다. 담배 한 개비의 시간만큼, 밤이 늙어버렸습니다.


삼십 분을 걸었습니다. 한 걸음에 일 초씩, 천팔백 번의 발자국이 이어지는 동안 디스코의 음악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열여덟의 첫 키스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고, 십 년 된 가죽재킷 주머니 속에서 라이터가 딸각거렸습니다. 유리창에 비친 얼굴이 낯설었습니다. 스물다섯의 여름밤이 그 안에서 반짝였다가 사라졌습니다.


삼백육십육 일째였습니다. 이십 평 남짓한 공간에서 매일 밤 다른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울 앞에서는 입술이 물들어갔고 구석에서는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으며 바에서는 술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습니다. 언젠가 이곳에서 처음 그녀를 봤을 때, 저는 그림자를 열 개 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 와트 전구 열 개가 만드는 그림자였습니다. 시간은 여기서 다른 모습을 가집니다. 초침은 비트에 맞춰 움직였고 분침은 담배 한 개비의 길이로 측정되었으며 시침은 술잔의 깊이로 가늠되었습니다.


그날도 평범한 밤이 될 것 같았습니다.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까지는. 수백 개의 그림자 속에서 그녀는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춤사위는 퍽 무심했고 다른 어떤 음악을 듣는 것조차 잊은 듯했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춤은 깊어졌고, 음악이 귓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열일곱 걸음을 걸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시계 초침이 한 바퀴 돌 때마다 그녀는 조금씩 멀어져 갔습니다.


주변에서 연인들이 춤을 췄습니다. 스무 살의 손은 스무 살의 허리를 감싸고, 마흔의 입술은 마흔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습니다. 그들은 각자의 시간 속에 있었고, 저는 그들 사이를 걸었지만 아무도 저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제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춤을 췄고, 우리 사이에는 수백 개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한순간 그녀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귀에 익은 멜로디가 들려왔습니다. 스물다섯 여름밤의 그 음악. 그녀가 제 앞에 서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는 제가 잃어버린 여름을 담고 있었습니다.


"춤추지 않을 거예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습니다. 우리의 손이 맞닿았고. 춤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몸은 그녀를 따라갔고 그녀의 몸은 음악을 따라갔습니다. 우리는 같은 그림자를 밟으며 돌았습니다. 열두 시간의 불면, 열세 개비의 담배, 천팔백 걸음. 맞닿은 손은 놓이지 않았고, 디스코의 전구 열 개는 여전히 그림자를 만들어냈으며, 새벽은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음악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밤은,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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