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 In Warszawa, a day at the Chopin concerts
지난번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폴란드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 규모는 조금 떨어지지만, 문화적인 기반은 훨씬 단단한 것 같다는 얘기를요. 여행 11일 차인 토요일에는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에서 무료로 재즈 공연을 관람했었고, 여행 12일 차인 일요일에는 12시와 4시에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공원인 와지엔키 공원에서 무료 피아노 공연이 있었습니다.
‘Chopin Concerts, 65th season of summer recitals’. 쇼팽 콘서트 홈페이지에서는 이런 설명이 타이틀에 붙어 있습니다. 올해 쇼팽 콘서트는 5월 19일부터 9월 29일까지 매주 일요일 12시와 4시에 열렸습니다. 와지엔키 공원에서의 이 콘서트는 폴란드 사람들이 여름을 사랑할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공연을 보기 전부터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진풍경을 보기도 전에 주어진 사실들만으로 이미 납득해 버린 것이죠.
저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공연 시작 시각보다 아주 일찍 와지엔키 공원에 도착해 벤치를 잡는 것과, 때맞춰 가서 그때 빈 틈바구니로 들어가 바닥에 앉아버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죠. 오전 늦게 기상한 탓에 12시 공연을 이르게 준비하는 건 어려웠고, 4시 공연을 보기로 했습니다. 공원에 가기 전에 늦은 점심을 먹으면 딱일 것 같았어요. H가 알려준 라멘 맛집인 Uki Uki로 이동했습니다.
라멘집 앞에는 꽤 늦은 점심인데도 줄이 늘어져 있었어요. 줄에 서서 기다리던 저는 비취색 눈을 가진 금발의 남자아이를 구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무 늦지 않게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오리고기와 유자 제스트가 들어갔다는 라멘을 호기심에 주문했습니다. 메뉴를 기다리는 사이 오른편을 둘러보니 웬 꼬마 여자아이가 나무를 타고 있더라고요. 문자 그대로, 여자아이가 나무를 타고 있었습니다! 눈을 의심하며 한참 동안이나 나무를 타는 소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 소녀는 이 나무를 탔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또 다른 나무를 골라 타는 등 뛰어난 운동 신경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어요. 폴란드의 생활체육이란 뭘까…… 저는 잠시 아연실색했지만 이내 서빙된 라멘에 미각과 시각, 후각을 송두리째 빼앗기며 나무 타던 소녀를 잊어버렸습니다. 과연 식사 시간의 정점을 지날 때까지도 줄이 늘어설 법한 맛집이었어요. 꽤나 실험적인 메뉴였음에도 아주 맛있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후 네 시 경의 햇살이 정수리부터 콧등과 어깨에 닿는 따사로운 감각 속에 와지엔키 공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공원 초입에 다다르자 어떤 압도감이 저를 휘감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어요. 프랑스와 독일, 영국을 포함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와지엔키 공원은 제가 다녀 본 공원 중에서도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큰 공원임을 입구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알 수 있었습니다. 공원의 시작과 끝을 바깥에선 쉬이 가늠할 수 없었거든요. 입구를 찾는 것에서부터 한번 삐끗한 뒤에야 공원 입구를 찾아 들어가는 데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 시작 시각인 4시를 갓 넘긴 때였습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서 걸은 걸음이 백 보가 되어가기 전이었어요.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귓가를 지나 고막 가까이 들어차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심장이 점차 두근대는 게 느껴졌습니다. 당장 옆에 조금의 호감이라도 가진 사람이 있기라도 했다면 누구든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분위기였달까요. 여행하면서, 아니 살아오면서 느낀 가장 로맨틱한 순간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 순간의 두근거림과 설렘은 아아, 지금도 잊기 어려울 정도로 밀도 높은 것이었어요.
공원의 공간은 이미 아주 많은 사람들에 의해 선점된 뒤였습니다. 계속되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만끽하며 제가 앉을 만한 마땅한 자리가 있나 둘러보았어요. 돗자리를 펴고 앉거나 누운 사람들 사이로 약간씩 빈 곳이 보였습니다. 어두운 외투를 방석 삼아 작게 펴두고 바닥에 앉아버렸어요. 쇼팽의 동상이 있는 곳 바로 오른쪽에 피아노가 있었고, 오늘의 연주자가 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바르샤바의 여름, 이 와지엔키 공원에서 열리는 쇼팽 콘서트에 서는 것을 연주자들은 영광으로 여긴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쇼팽의 나라에서, 쇼팽 콘서트를 바르샤바에서 제일 큰 공원인 와지엔키 공원에서 하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몇 달간의 매주 일요일, 이렇게 많은 바르샤바의 시민들과 여행객들이 찾는 공연에 말이죠.
훌륭하도록 화창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늦은 이날의 오후는 이 공연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음악을 많이 알지 못하지만 좋은 음악이 주는 감상을 느끼는 데는 저도 모자람이 없는 관람객이었어요. 외투를 깔고 앉은 채로, 흙 내음과 앞에서 공연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의 부산스러움마저도 선율의 일부가 되는 듯한 착각 속에 한참이나 와지엔키 공원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을 즐겼습니다.
한 시간 반이 조금 안 돼서 공연은 종료되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와지엔키 공원을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공원이 너무 크기 때문에 둘러봤다는 표현은 사실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원의 한 호(弧, arc) 정도를 구경해 보고, 빠져나가는 길을 선택해 공원 한복판을 가로질러 나온 정도에 불과했으니까요. 분수 근처에 핀 예쁜 꽃들을 찍다가, 지나가는 여러 국적의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이내 조금 지쳐버려서 벤치에 걸터앉아 봅니다. 인스타그램을 하다 보니, 제가 팔로우 중인 어떤 분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코모레비*’라는 일본어에 관한 내용이 있더군요. 마침 제가 와지엔키 공원 벤치에 앉아 바라보고 있는 것이 그것이었거든요.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자면 ‘볕뉘’ 정도에 해당할까요. 그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코모레비는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라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모든 순간들이 그렇지만, 그날 제가 본 와지엔키 공원을 가득 채운 나무의 이파리들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 또한 그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겠죠. 순간의 소중함, 또는 순간의 특별함과 유일함, 그런 것들에 대해 지친 다리를 쉬이며 즐거이 되새김질해 보았어요. 평소에는 어쩐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 없었던 것들에 대해 조금 숙고할 수 있어지는 여유. 여행이 주는 선물 중의 하나가 분명할 테지요.
그날의 코모레비이자 볕뉘이자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을 오래도록 느끼다가 일어섰습니다. 공원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는 엄청나게 빠르게 먹이를 씹어 삼키는 갈색의 청설모를 아이처럼 구경하기도 했어요. 이참에 다람쥐와 청설모의 차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람쥐는 등에 줄무늬가 있고, 청설모는 없대요. 또 청설모는 겨울이 되면 귀 쪽에도 털이 풍성하게 자란다고 합니다. 활동 반경에도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다람쥐는 주로 땅에서 활동을 하는 편이고 청설모는 나무 위에서의 활동을 즐긴다고 하네요. 처음엔 저게 다람쥐야 청설모야 했었는데 다람쥐와 청설모의 차이를 알아가면 갈수록 그것은 청설모일 수밖에 없는 동물이었더랬습니다.
공원을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엔 어떤 풍경에 사로잡혀 오래도록 자리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바로 이 글의 커버 사진으로 쓰인 사진인데요. 여름을 지나 가을을 맞이할지도 모르는, 노랑과 오렌지가 섞인 커다란 나무와 상아색 벤치, 그리고 거기에 앉아 있는 두 여성이 합작해 만들어낸 풍경이었어요. 선글라스를 쓴 젊은 여성분은 셔츠에 반바지를 입은 채 다리를 한쪽으로 꼰 채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제가 보는 시야에서 오른편에 앉아 계신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중년의 여성분께서는 신문인지 잡지인지 또는 공원 안내도일지 모를 것을 보고 계셨어요. 벤치가 놓인 부분은 황토색으로 고운 흙모래가 깔려 있고, 수평선을 깔끔하게 그리면서 그 아래론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죠. 앵글 끄트머리에 살짝 담긴 파란색 하늘과 노랑과 오렌지, 연두와 진초록과 갈색이 조화롭게 섞인 나무와, 나무의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진 상아색 벤치. 수직으로 뻗은 벤치의 나무 살과 두 여성분 간의 적절한 거리, 비워진 오른쪽 벤치……. 모든 것이 완벽한 하나의 합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찍었지만 너무 멋진 풍경이야……’, 스스로 찍은 사진에 크나큰, 또 기나긴 감탄을 하던 저는 뒤이어 찾아온 허기에 한참을 서성이던 그 자리를 겨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제가 한국인임을 알게 되는 여러 순간들이 있습니다. 음식을 크게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한식이 미친 듯이 당길 때가 결국은 찾아오거든요. 며칠 전에 바르샤바의 한식당에서 제육볶음을 먹은 기억이 아직 선명했지만, 어쩐지 또 한식당에 가는 것은 굉장히 기꺼운 일이었습니다. 이날 저녁 메뉴도 저는 결국 한식으로 결정하고는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합니다. 멈춤 버튼이 파란 원에 빨간 테두리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역시 폴란드를 상징하는 건 파랑과 빨강이구나, 버스 안에서 불이 들어와 있는 멈춤 버튼을 바라보며 덜컹거림을 조금 느끼고 나니 어느덧 식당 앞 정류장이었습니다.
메뉴판을 신중히 본 뒤 김치전과 소갈비 양곱창 찌개를 주문하면서 폴란드의 카스와 하이트 중 하나인 지비에츠(Żywiec)와 참이슬 한 병을 같이 시켜 소맥을 제조했습니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소맥의 시원하고 맑은(?) 기운을 가감 없이 느끼며 바삭하게 구워져 나온 김치전을 한 입 했습니다. 한국에서 먹던 김치전에서는 나지 않는 약간의 독특한 맛이 오히려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얼큰하지만 맵지는 않은 정도의 소갈비 양곱창 찌개도 역시 맛이 있었죠. 한국 사람은 한식이 짱이야, 아- 아니야 그냥 한식이 짱인 것 같아, 생각하며 한편으론 바깥으로 뉘엿뉘엿 지는 태양이 만든 오렌지빛 하늘을 구경하면서 저녁 식사 시간을 즐겼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면서는 코모레비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어쩌면 코모레비의 총합인지도 모르죠. 오늘 제가 먹은 라멘집에서 거침없이 나무를 타던 소녀, 와지엔키 공원에 들어서며 들리는 피아노 선율에 느끼던 전율과 낭만, 쇼팽 콘서트를 즐기기 위해 들어찬 사람들과 조바심 없이 높은 하늘과 여러 초록을 가진 나무들의 살랑임, 먹이를 먹는 갈색 청설모의 꼬리를 따라 쫓아가던 어린 아이 같아진 순간, 코모레비라는 단어를 알게 해준 팔로잉 중인 분의 인스타그램 스토리, 그 순간 담아낸 볕뉘, 커다란 나무 아래 상아색 벤치에 앉아 있던 두 여성분이 만들어 준 아름다운 풍경, 맛있고 건강한 한식과 다소 불량하지만 상쾌한 소맥의 목 넘김……. 오늘을 만들어 준 저만의 코모레비는 이런 선율과 풍경이 만나 촘촘히 생성된 것들이었죠.
내일은 바르샤바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코모레비가 나를 반겨줄까, 숙소에 도착해서는 그런 생각을 잠시 하며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더 했습니다. 취기가 조금 더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어요. 아무렴 괜찮았습니다. 이것조차 오늘의 술기운 가득한 코모레비가 되면 그만일 테니까요.
16/10/24
임우유 드림.
* 코모레비: 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