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0. From Gdańsk to Warszawa
그다인스크의 이튿날 아침은 첫째 날만큼 아름답고 눈부셨습니다. 가게 외벽에 미국의 유명한 배우들의 사진들이 좌르르 붙어 있던 아메리칸 식당에서 맛있는 브런치를 먹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솔리다르노시치(Solidarność) 박물관으로 이동했죠. 솔리다르노시치는 ‘연대’를 뜻하는 폴란드어라고 합니다. 이 박물관은 과거에 조선, 제철업이 흥했던 그다인스크에서 민주주의가 발현되었음을 알리고 보존하기 위한 곳이었죠.
폴란드에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때부터라고 합니다. 1980년에 노동조합이 처음 생기며 민주주의의 씨앗이 싹을 틔웠고, 자유선거가 처음 진행된 것이 1989년 6월이었다고 하니,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태동한 지 아직 반세기가 채 되지 않은 셈이죠.
박물관에는 영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가 있었습니다. 100% 이해하는 것은 못 했겠지만 대부분의 내용을 귀담아들으며 또 이해하며 방들을 둘러보던 중, 시선을 사로잡는 흰 벽면이 가득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폴란드어와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 등으로 쓰인 같은 문구들이 음각으로 흰 벽면에 가득 새겨져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라……. 의심 없이 당연히 인식하고 있는 사실임에도 어쩐지 요즘을 돌아보면 과연 그런 것이 맞나 싶은 문구이기도 해서 한참을 흰 벽 앞에서 서성였습니다.
한 구석에는 흰색과 빨간색으로 된 메모지가 있었어요. 맨 위 중앙 부분이 펀칭되어 있어, 종이 위에 문구를 쓴 후 다른 한쪽 벽면에 마련된 걸이(?)에 하나씩 꽂으면 되는 식이었죠. ‘Love & Peace’, 직관적으로 알아보기 쉬운 영어로 된 문구가 가장 먼저 보였고,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지만 몇몇 단어들로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 독일어로 된 메모도 보였습니다. 한국어로 된 메모는 없겠지, 하고 자리를 이탈하려던 찰나 고국의 글자들이 선명히 시야에 들어왔어요. ‘먼 나라 폴란드에서 비슷한 역사를 느끼고 갑니다’라고 쓰인, 한 모 씨가 남기고 간 메모지였죠. 알 수 없는 뭉클함에 잠시 사로잡혀 그 앞에서 몇 분을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박물관에서 빠져나왔습니다.
바르샤바로 돌아가는 길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350km가량 되는, 꽤나 먼 거리였습니다. 이번엔 맥도날드를 기필코 찾고야 말겠다는 일념 아래 맥도날드 로고가 보일 때마다 주의를 기울였죠. 맥도날드 사인은 몇 번 또 저를 낚았지만, 개중 마지막 하나는 정말 맥도날드로 향하는 사인이었습니다. 맥도날드에서 항상 먹곤 하는 디저트인 선데 아이스크림을 주문해 먹었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찾은 곳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폴란드가 유제품 강국인 건지 모르겠지만, 맥도날드 초코 선데 아이스크림의 맛은 기가 막혔습니다. 다소 사이즈가 작은 귀여운 컵에 서빙된 아이스크림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는 상당 시간은 졸음을 억지로 이겨내면서, 또 약간은 졸음에 져 가면서 바르샤바로 돌아오고 나니 어느덧 해가 져 있었습니다.
도착해서는 까르푸가 있는 규모가 꽤 큰 몰에 들러서 장을 봤습니다. 다음 날부터 숙소에서 먹을 물과 맥주, 와인과 토마토, 생모짜렐라, 소분된 컵 과일 등을 사서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로 향했죠. 체크인 카운터가 따로 없는 아파트형 숙소여서 출입하는 데 약간의 애를 먹었지만 겨우겨우 3층에 위치한 저의 나흘간의 폴란드 집에 체크인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도착해서 짐을 대충 풀어 두고, 장 봐온 것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넣어두고는 피곤한 몸과 뿌듯한 마음으로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따라 두고는 컵과일을 꺼내 소파 앞으로 가져옵니다. 유튜브로 디바마을 퀸가비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깔깔거리며 보면서, 컵과일에서 파인애플을 꺼내 먹다가 한두 조각 흘려가면서- 다시 찾은 바르샤바에서의 두 번째 밤은 그렇게 서서히 저물었습니다.
Day 11. In Warszawa again, a night at a jazz concert
저에겐 여행 중에 로망으로 삼는 것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그 로망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그 나라의 언어로 말해보기: ‘안녕하세요’와 같은 일상적인 인사, 인파 사이를 가로지르며 하는 ‘실례합니다’, 주문하거나 가게를 나설 때 ‘고맙습니다’ 등
(2) 그 나라의 매장에서 파는 옷가지 구매하기: 한국에 돌아와서 그 옷을 입으며 ‘이거 독일에서 사 온 아디다스 후디잖아’ 하며 즐거워하는 등 추억 여행에 활용하기
(3) 그 나라의 사람과 갑작스럽게 말을 터서 이야기해 보기
(4) 생화를 구매해 숙소의 화병에 꽂아두고 머무는 내내 기뻐하기
(1)과 (2)는 이미 위시리스트에서 이뤄 본 아이템들이었습니다.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던 튀르키예에서도, 그리고 작년 가을에 갔던 독일에서도, 그리고 가장 가까운 여행지였던 일본에서도 해본 적이 있는 일들이었죠. (3)과 (4)는, 아직은 제게 허용되지 않았던 아이템이었습니다. 폴란드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바르샤바에서는 (3)을 해볼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영어를 할 줄 아는 분을 운 좋게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능했겠지만, 어쩐지 폴란드에서는 우연한 만남 같은 건 없었어요.
(4)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집을 둘러보면서였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조화가 꽂힌 투명한 화병이 있었고, 찬장 문을 하나씩 열어보니 또 다른 비어 있는 화병이 있더군요. 짙은 푸른 색의, 투명한 재질의 아주 작지도 크지도 않은 둥근 화병이었습니다. 구글 맵을 켜고 주변에 꽃집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마침 한 군데가 도보 100m 거리 내에 있더라고요. 여길 가면 되는 거였습니다.
화병의 입구에 검지를 올려두고선 사진을 찍었습니다. 엄지와 검지의 끝을 맞닿게 해서 원을 만들어서 입구의 크기와 비교해 보기도 했어요. 손가락으로 만든 원과 입구의 지름이 얼추 비슷하더군요. 꽃을 몇 송이나 꽂을 수 있을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찾아둔 꽃집은 정말 지근거리에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화의 산뜻한 풀 내음이 밴 향기가 났습니다. 가볍게 사장님과 인사를 트고선 설명을 시작합니다. 묵고 있는 곳에 화병이 있는데, 투명한 데다가 색깔은 짙은 파랑이고, 약간 둥글게 되어 있고 높이는 15cm 정도 된다, 어떤 꽃을 꽂으면 좋을까요? 등의 내용을요. 사장님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시는 편이었습니다. 꽃 종류에 대해 말할 때 이름을 영어로 설명하는 걸 조금 건너뛰시기는 했지만, 원하는 사항에 대해 의사소통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눈에 들어온 꽃은 두 종류였습니다. 처음으로는 분홍색 거베라가 눈에 띄었고, 두 번째로 눈에 띈 건 오렌지색 국화였어요. 거베라와 국화 사이를 어지럽게 눈으로 훑다가 이내 조금 더 끌리는 오렌지색 국화 다발 앞에 섭니다. 블루와 오렌지는 필패의 조합처럼 느껴졌어요. 사장님께는 화병 입구가 이만하다고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어 보였고, 사장님이 제안하신 일곱 송이가 조금 많아 보여 한 송이 덜어내 총 여섯 송이를 구매했습니다. 한 송이당 10zł(즈워티, 폴란드의 통화로서 1즈워티는 현재 약 340원 상당임)으로 총 2만 원 정도를 값으로 치른 뒤 숙소로 돌아갔어요. 얼른 화병에 물을 받아서 꽃을 꽂아둔 뒤 산뜻한 발걸음으로 숙소를 빠져나왔습니다.
오늘 외출의 뚜렷한 목적은 하나였습니다. 그 목적이란 바르샤바의 구시가지 광장에서 열리는 국제 야외 재즈 페스티벌을 관람하는 것이었죠. 공연을 광장이 내다보이는 레스토랑의 야외 좌석에서 보기로 하고서는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Barn Burger’라는, 폴란드 사람이 수제 버거를 먹으러 다 여기로 오나 싶을 만큼 줄이 긴 곳이었어요. 버거의 이름들이 좀 특이했습니다. Heart Attack, Sex & Violence, Gender, Dirty Harry……. 저는 이중 상대적으로 무난(?)해 보이는 Dirty Harry를 주문했고, 뒤이어 서빙된 버거의 크기에 내려온 턱을 오래도록 다물지 못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먹어야 하루하루 살아지는 거라면 폴란드인들은 꽤나 연비가 나쁜 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약간 적게 먹는 사람이라면 버거 하나로 하루치 식사를 다 할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양이 많았거든요. 꽤 많이 먹는 편임에도 결국 저는 완버를 하지 못한 채 감자튀김 조금과 버거 일부를 남기고 맙니다.
공연은 7시에 시작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7시가 임박해서 자리를 잡으려거든 남아 있는 자리가 없어서 서서 봐야 할 처지가 될 게 뻔했습니다. 적당히 시야 확보가 될 것 같은, 야외 좌석이 넉넉한 레스토랑 중 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고는 카푸치노 한 잔과 치즈 케이크를 시켰어요. 주위에 흡연 중인 다른 손님들이 있어서 코가 조금 괴롭긴 했지만 광장으로 슬슬 들어차는 인파와 조명이 들어오는 무대를 보니 설레는 마음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 국제 야외 재즈 페스티벌은 올해 30주년을 맞는 행사로서, 올해엔 7월 5일부터 시작해 8월 31일이 마지막 공연일이었습니다. 8월 31일은 제가 이 광장을 찾은 날이었죠. 곧 바르샤바를 떠날 예정이었기도 하고, 두 달쯤 매주 이어지던 공연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는데 비도 오지 않고 날씨도 적당히 살랑살랑하다니! 이번 여행은 유독 행운이 많이 따른다 생각하며 가만히 커피를 홀짝이며 공연이 시작하기를 기다렸습니다.
7시가 되자 이름을 모르는 아티스트들*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흰색 셔츠에 흰색 재킷을 멋스럽게 걸친 민머리(혹은 대머리였을까요?……)의 흑인 분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셨고, 아디다스 점퍼를 입은 분이 더블베이스를 뒤에서 연주하기 시작했어요. 멜로디를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곡들만이 연주되었음에도 낯설어 보이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름은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됐습니다만, 보컬인 켄 노리스의 목소리는 훌륭했고 그는 노래를 부르다 중간에 손뼉을 치며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어요. 알록달록한 흰색 셔츠를 입은 아이를 뒤에 단차가 있는 곳에 세워두고서 곡이 연주되는 동안 살짝 몸을 흔들어 춤을 추는 아빠도 보이고, 아이를 오른 팔에 안은 채로 리듬에 맞춰 아래위로 몸을 들썩이는 엄마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매해 생산량과 당해 가격을 곱해 산출하는 명목 GDP의 국가별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14위, 폴란드는 19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폴란드보다 경제적으로 잘 살뿐더러 인터넷망이 더없이 촘촘히 깔려 있어 정보에 관한 접근성은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고, 또 한창 K-컬처가 부흥 중인 황금 시대가 도래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이와 함께 재즈 공연을 즐기는 엄마와 아빠의 이런 모습은 또 기분 좋은 낯섦으로 다가옵니다. 가장 뜨거운 여름의 두 달간의 토요일마다 광장에서 무료로 수준 높은 재즈 공연이 열리는 나라라니……. 제가 아는 범위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며, 만일 그런 이벤트가 있다 하더라도 아마 바르샤바의 구시가지 광장에서 보았던 것만큼 아이와 함께 공연을 흥겹게 즐기는 엄마 아빠를 마주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았습니다.
한 시간 반쯤 되어 공연은 모두 끝나고, 저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섭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엔 야외석이 마련된 타파스 바에 잠시 들러서 조그만 안주를 시키고, 작은 사이즈의 330ml짜리 맥주를 시켜 마셨어요. 맥주로 인한 약간의 취기와 재즈 공연에서 잃지 않고 데려온 약간의 낭만을 몸에 지니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햇볕이 쏟아지던 창가에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고, 동그란 테이블 위에는 아침에 사둔 오렌지빛 국화가 투명한 파란 화병에 꽂혀 있는 채였죠.
19세기 일본인들은 한동안 roman이라는 단어를 가타카나 ‘ロマン(로망)’으로 음역했다고 합니다.*** 의역하지 않고 원음을 그대로 살린 채 일본어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일본의 대문호로 꼽히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처음으로 20세기 초, ‘물결 낭(浪), 질펀한 만(漫)’자를 얹어 쓰기 시작했고, 그 이후 한국에도 이 ‘낭만’이라는 단어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이 모든 유래와 관계없이, 이날 저에게 로망은 로망이고 낭만은 낭만이었습니다. 숙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예쁜 화병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꽃을 꽂아둔 것이 로망이었고,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에서 파라솔을 갖춘 레스토랑의 야외석에 앉아 한가로이 햇볕이 내리쬐는 동안 카푸치노를 마시며 돈 한 푼 내지 않고 재즈 공연을 즐긴 것은 낭만이었죠. 저에게 로망이란 ‘자신만의 낭만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어떤 조각’이고, 낭만이란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피어오를 법한 간지럽고 보드라운 빛, 온도, 습도’ 같은 것입니다.
잠에 들 때 침대에 누우면서 저는 오늘 아침을 채운 로망과 저녁 내내 넘실거린 낭만에 대해서 무수히 곱씹어 보았습니다. 로망을 마침내 실현하다니, 게다가 그 로망을 실현한 날의 저녁을 낭만으로 꽉 채워 보낼 수 있다니……. 무언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바르샤바의 로망과 낭만의 날은 그렇게 저와 함께 달콤하게 눈꺼풀을 닫고선 잠에 듭니다.
* Adzik Sendecki Quartet & Ken Norris
** 2024년 2/4분기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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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24
임우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