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 Last night in Warszawa
폴란드에 와서 어쩐지 폴란드 요리는 먹지 않고 떠나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날은 여행 13일 차, 폴란드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었죠. 그동안 이탈리아, 스페인, 태국 등 다양한 국가의 요리들을 맛있게 즐겼고, 상대적으로 폴란드 요리에 대한 불신(?)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거죠. 그래도 개중 맛있다고 인정받는 곳으로 가서 폴란드 요리를 시도해 보기로 합니다.
Stary Dom이라는 이름을 가진 폴란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Stary Dom은 영어로 표현하면 Old House, 즉 오래된 집이라는 뜻을 가진 식당이었어요. Pierogi(피에로기, 폴란드식 만두)와 Golonka(골롱카, 폴란드식 족발)를 시켰습니다. 처음 곁들일 술로는 무난하게 독일의 리슬링을 골랐어요. 걱정하던 것에 비해 서빙된 두 요리는 모두 맛이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음식을 양껏 먹을 상태가 되지 않아 조금 깨작거렸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이 때문에 서버분께 의도치 않게 음식이 맛이 없어서 남기는 것 같은 느낌을 드린 것 같았어요. 조바심을 내시는 것 같은 모습이 내내 마음에 걸렸지만 실제로는 맛있게 요리를 즐겼습니다.
특히 두 번째 잔으로 주문했던 폴란드 화이트와인이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도 입맛에 맞았어요. 폴란드 아니면 어디서 폴란드 와인을 시켜 먹어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주문했던 것인데 그날 시킨 요리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와인 자체로도 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이걸 보시는 분들도 혹시 어딘가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로 여행을 가시거든, 그 나라에서 생산한 와인을 드셔보시는 걸 추천할게요.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처럼 흔히 접할 수 있는 나라의 와인이 아니라면 더더욱이요.
식사를 마친 뒤 향한 곳은 쇼핑에 최적화된 장소였습니다. 시내에 위치한 도자기 가게였어요. 가게의 이름은 Bolesławiec(볼레스와비에츠)였는데, 이곳은 도자기로 유명한 폴란드의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볼레스와비에츠의 도자기들은 흔히들 ‘폴란드 그릇’을 상상했을 때 아 물론, 어느 정도 도자기, 그릇 쪽에 관심이 있으시다는 전제하에 연상되는 그 흰색과 푸른색의 조합을 이루는 것들이 많고, 실용적이고 심미적으로도 뛰어난 그릇입니다. 보기 좋은 떡이기도 하고, 먹기 좋은 떡이기도 한 거죠.
사실 저는 독일에서 여행할 때부터 ‘나를 위한 선물 시리즈’를 주구장창 업데이트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즈음 해서 이미 짐이 상당 부분 늘어나 있던 터였습니다. 마음속으로 작게 주문을 외며 들어갔어요. ‘적당히 사자, 조금만 사자……’ 폴란드 그릇의 상징이기도 한 짙은 파랑으로 쓰인 간판을 가진 그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제가 왼 주문은 산산이 부서지게 됩니다. 아니, 그릇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그것도 너무너무요. 집에서 요리를 아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예쁜 그릇에 스스로를 위해 음식을 담아내고 그걸 먹는 경험 자체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곳의 그릇들은 저를 유혹하기에 몹시 충분했습니다.
스스로를 위한 선물로도, 다른 사람을 위한 선물로도 좋은 선택으로 보였어요. 집에서 쓸 앞접시, 그냥 작은 접시, 타원형의 접시, 비누 접시 등등을 구매하고, 이어서 지인에게 선물할 만한 작은 종지와 그릇을 서너 개 구매합니다. 포장을 아주 튼튼하게 해주어서 핸드캐리로 비행기에 직접 들고 탄다면 그릇이 손상될 가능성도 작아 보였어요. 여기서 구매한 이 그릇들이 한국으로 넘어가는 순간 가격이 2.5배 정도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엄청난 금액을 세이브한 셈이기도 한 거죠! 물론 안 사면 0원입니다만, 0원을 쓰는 일은 영원히 없을 거예요. 그릇에 관심이 없는 H의 지인들조차도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는 못했다고 들었거든요.
만족스러운 그릇 쇼핑을 하고서 저는 지난번에 장을 봤던 쇼핑몰에 찾아가 서점에 들러봅니다. 취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다독가는 아니지만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여행지에서의 서점은 꽤나 매력적인 곳이거든요. 폴란드의 언어를 전혀 모르기에 어떤 책의 표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섹션이 있었습니다. 바로 카드가 모여 있는 곳이었어요. ‘Sto lat’이라는 문구가 쓰인 카드들이 많더군요. 주로 초 그림이 같이 그려져 있어서, 폴란드어를 1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그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목적인 것만은 알 수 있었어요. H에게 물어보니 영어로 치면 ‘A hundred years’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100년을 단순히 의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100세까지 건강히 살라는 의미로 주로 생일 축하할 때 폴란드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라고 하더군요. 100세 시대에 대한 열망이란 과연 언제부터 기원한 것일까, 이제 평균 기대 수명이 100세를 훌쩍 뛰어넘을 텐데, 그렇다면 폴란드의 생일 축하도 한 단계 발전할 만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Sto lat이 적힌 카드 중 마음에 드는 것 한 장을 골라 구매했습니다. 누군가의 100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언젠가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바르샤바에 도착했던 첫날, 구시가지에 성벽을 구경하러 갔다가 때아닌 화재가 발생해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던 것을 기억하고 계실까요? 바르샤바의 마지막 날인 만큼, 아쉬웠던 그때의 기억을 갱신해 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불같은 거 안 나고 멀쩡하겠지, 기대하면서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로 이동했어요. 성벽 근처에 도착했을 때 거리에는 이미 해가 지고 검푸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오렌지색 조명이 군데군데 어둠을 가로막고 있는 성벽을 조금 구경하고선, 비스와강으로 이동했습니다. 강물에 반짝이는 조명도 구경하고, 강을 비추는 달을 한참이나 바라보기도 했죠. 허기가 져서 뭘 좀 먹고 싶었지만, 식당들이 주문을 모두 마감한 터라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다 새로 지어진 다리*에 들러 보았어요. 다리 위는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는 폴란드 시민들로 북적였고, 연주되는 노래에 맞춰 10대로 보이는 두 명의 여학생이 춤을 추고 있었어요. 청춘의 움직임이랄까, 그런 경쾌함이 돋보여서 그들의 반짝이는 청춘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이내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돌아오고 나니 이미 밤마저 저무는 시간대였죠. 아쉬운 마음으로 저는 다이빙하듯 침대로 들어갔습니다. 정말 아무런 기대도 없이 왔던 폴란드에서 바르샤바와 그다인스크를 지나며 얻은 추억들을 하나하나 되새김질하다 마지막 아침을 향해 그만 잠에 들었답니다.
Day 14. On the last day, from WAW to FRA and from FRA back to ICN
어느덧 여행의 마지막,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어요. 한국행 비행기를 바르샤바가 아닌 프랑크푸르트에서 타기로 한 건 프랑크푸르트로 들어가서 바르샤바에서 나오는 것보다 금액적으로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었죠. 돈 한 푼 벌지 못하는 주제에 30만 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면 조금 번거롭더라도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서는 루프트한자 승무원들에게서 건네받은 맛있는 초콜릿을 즐기며 1시간 남짓의 비행시간을 무사히 지나 보냈어요.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약 5시간 뒤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고로 제게 남은 시간은 서너 시간 정도였죠. 서너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저는 그 시간을 한 끼의 식사와 사고 싶었던 칼 구매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줄곧 사고 싶어 ‘앓았던’ 칼 브랜드가 있었거든요. 독일의 유명한 칼 브랜드 중 하나인 로버트 허더의 칼을 꼭 구매하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빵칼을요. 참고로 우리가 흔히 아는 헹켈 같은 브랜드는 굉장히 대중적인 브랜드에 대량 생산을 하는 곳이고, 로버트 허더는 백화점 매장에 가서 물어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칼에 관심이 있는 마니아 정도 돼야 아는 브랜드였어요. 그리고 사실 저는 폴란드에 가기 전 베를린에 머물던 때 로버트 허더의 칼을 구매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배회한 적도 있었어요. 로버트 허더 홈페이지에서 여러 차례 확인하고 방문한 가게였음에도 로버트 허더의 칼을 단 한 자루도 취급하지 않고 있어서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돌려야 했었죠.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특별히 취급 매장 중 ‘칼 전문점’을 검색해 두었던 터였습니다. 가게의 점심시간이 있어서 점심시간 동안 저도 점심을 먹고 이동하기로 했죠. 무거운 짐들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모두 맡겨 두고선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대중교통으로 오래지 않아 이동할 수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중심지, Hauptwache로 향했습니다.
점심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 결국 제가 고른 메뉴는 또 한식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식이 짱이니까요. 한식만큼 포만감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요리는 없는 것 같다는 게 지금까지 제가 삼십몇 년을 살아오며 내린 결론입니다. Hauptwache에 아주 평점이 높은 한국의 분식을 판매하는 식당과 베트남 음식을 파는, 역시 평점이 높은 식당 두 곳 중 어느 곳을 갈지 계속 고민하다가 눈 떠보니 이미 한식을 파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걷고 있더라고요. 평점이 높은 곳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이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곳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손님은 한국인들뿐 아니라 독일 또는 그 외 국적의 외국인들도 반쯤 섞여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받아 가는 트레이 위 음식을 보니 담음새 정갈하고, 먹는 사람들 표정 보니 맛도 있어 보이고, 주방 한 편에서 진두지휘 중인 분은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보이고, 뭘 먹고 싶은지도 딱 결정했고.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단 하나의 문제는 그곳이 너무 인기 있던 탓에, 앉을 수 있는 빈자리가 없었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머리 아픈 빈 자리 찾기는 그쯤 관두고, 저는 하프 사이즈의 김밥과 떡볶이, 어묵 국물과 하이트 한 병을 주문했어요.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습니까. 서서라도 먹어야죠. 막상 음식이 나올 때가 다 돼가니 정말 서서 먹어도 되나 하는 의구심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저는 결국 큰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선글라스를 쓴 곱슬 단발머리의, 독일 국적으로 추정되는 여성분 혼자 앉은 테이블 앞에 가서 입을 뗍니다.
“Excuse me, do you mind If I have a seat here?”
흔쾌히 좋다고, 앉으라는 답이 들려옵니다. Thank god, 종교는 없지만 신께 감사드리며 냉장고에서 방금 꺼내 온 하이트 한 병을 들고 그의 맞은편에 앉아 봅니다. 테이블이 깨끗한 걸 보니 그의 메뉴도 아직이었어요. 저와 그는 진동벨을 만지작거리며 음식이 서빙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몇 분 후 그의 메뉴가 먼저 준비되었고, 조금 후에 제 메뉴도 준비되었어요. 국적이 다른 두 여자가 빨간 테이블을 함께 나누어 쓰며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I 성향이 지극히 강한 사람으로서 보통은 말을 아끼는 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그럴 수 없겠더라고요. 일단 빈 자리를 허락해 준 그에게 고맙기도 했고, (물론 원치 않았을 수도 있지만) 혼자 온 그에게 식사 동안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었달까요. 말을 걸고 보니 그는 다행스럽게도 한국 문화에 꽤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몇 달 전에 넷플릭스에서 본 한국 영화를 이야기해 주기도 했습니다.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며 스토리라인만 알려주긴 했지만, 흥미롭게 영화를 즐긴 것 같아 괜히 다행이었어요. 그 영화 이야기를 시작으로 저는 식사 내내 그와 함께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왜 내가 이곳에 와있고, 휴직은 뭣 때문에 했는지,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것은 어떤지, 딩크로 사는 이유는 무언지……. 그는 묻더군요. 한국, 특히 서울에서 사는 삶이란 어떤지를요. 물론 쫓기듯 바쁘고(hectic) 사람들이 항상 미어터지며(overcrowded, often packed with people) 어딜 가나 경쟁이 치열하지만(competitive), 그럼에도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문화적으로도 접근성이 뛰어나서 서울에서 사는 삶을 좋아한다고 답했죠.
그의 동생은 런던에서 정신과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번아웃으로 휴직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알려준 정보였죠. 정신 건강을 지키며 사는 일의 중요성에 관해 둘이 열심히 끄덕이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점심 식사가 끝나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저는 얼른 칼을 사러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었죠. 아쉽지만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런 얘기를 당신과 나눌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식사 마저 잘 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요. 그는 마지막까지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빌어주었습니다. 칼을 살 곳으로 이동하려고 몇 걸음을 떼었는데, 아 어딘가 아쉽더라고요. 이름도 모르는 채 헤어진다는 것이 말이죠. 저는 다시 총총 걸어가 그에게 물었고, 다음의 대화로 그와의 시간은 온점을 찍게 됩니다.
“I’m sorry but could I ask for your name?”
“It’s Alexandra.”
알렉산드라와의 대화로 마음이 기분 좋게 데워진 저는 칼 전문점으로 이동합니다. 점심시간으로 쓰인 시간을 2분 남기고 도착해 혹시 들어갈 수 있을까 하여 문을 두드렸더니, 2분 뒤에 오라는 안내를 해주시기에 아, 이것 역시 참 독일스럽구나 싶었죠. 그 가게는 안경을 쓴 나이 든 남성분이 직원으로 계신 곳이었는데, 목표로 했던 로버트 허더 칼이 다행히 있었어요. 우선 빵칼을 고르고, 나키리**를 한 자루 보여주시기에 거기에 마음이 또 휩쓸려 그것도 구매하기로 합니다. 포장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아주 순해 보이는 강아지가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
칼 두 자루와 알렉산드라와의 기억을 품고 저는 다시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돌아옵니다. 맡겨 둔 수트케이스를 찾고, 엄청나게 무거워진 짐을 이고 지고 들어가 세관 수속을 마치고, 여권 수속도 마치고, 보딩 타임을 30분쯤 남겼을 때쯤 게이트 앞에 도착했어요. 13박 14일의 긴 여정이 어느덧 막바지의 막바지에 다다라 있었습니다. 독일로 올 때는 두 다리 쭉 뻗고 웰컴 드링크로 샴페인을 마시며 우아하게 왔었는데, 가는 길은 얄짤없이 이코노미행이었지만, 피로로 온몸이 두들겨 맞은 뒤여서 아무렴 다 괜찮았어요.
회사에 다닐 때는 늘 주말에 출발해 주말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어딜 가든 늘 사람이 많았는데, 평일에 출발해 평일에 돌아가는 항공편을 끊으니 어딜 가도 사람이 아주 많지 않아 좋았어요. 세 자리가 연속된 자리의 복도 측 좌석이 제 자리였고, 창가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 보이는 독일 국적으로 추정되는 여성분이 앉아 계셨는데, 저와 그 여성분 사이의 자리가 끝끝내 비워져 있는 행운도 있었답니다. 빈자리에 기분이 좋아져서 창가 쪽 여성분과 스몰 토크를 시작해 버렸는데 그는 올해 만 열아홉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3주 동안 한국을 여행하러 간다는 Eve라는 이름을 가진 독일인이었어요. 서울에 있는 식당과 바 중 괜찮은 곳들을 몇 군데 알려주겠다고 했더니 바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묻더군요. ……이런 게 Z세대일까요? 이륙하기 직전, 그렇게 저는 Eve와 서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되었습니다.
그다음은 예상하시는 대로입니다. 두 번의 기내식과 약간의 간식, 또 상당한 헤드뱅잉…….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덧 제가 탄 비행기는 한국의 상공을 날고 있었어요. 집 가서 오늘 저녁으로는 뭘 먹지? 어떤 빨갛고 매콤한 걸로 미뢰를 뒤흔들어야 ‘아, 한국 왔다’ 하려나, 하는 귀여운 고민을 하면서 저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국답게 빠른 스피드로 모든 수속을 마치고선 서울의 품에 안겼습니다. 13박 14일의 모든 여정의 가뿐한 마무리였습니다.
20/10/24
임우유 드림.
* 2024년에 정식 개통된 다리로, 기존에는 비스와강을 건널 때는 차로 이동하는 다리밖에 없어서 이 보행자와 자전거를 위한 다리가 개통되었을 때 바르샤바 시민들이 굉장히 환영했다고 함
** 菜切(なきり): 일반 가정에서 쓰기 좋은 사이즈의 중식도로, 일반 식칼에 비해 묵직한 무게감과 사각형의 칼날이 특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