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가끔 숨이 턱 막힌다.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가 없다. 생각해보니 이사하고도 그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저는 사가정역에 살아요. 사가정역이… 어디예요? 아… 그게…… 군자 아세요? 아, 아뇨. 그…그럼 노원은 아시죠? 노원 아래에서 군자, 아니다 건대입구 중간쯤에 있어요. 7호선이요. 노원이나 건대입구가 어딘지는 알아도 사가정역이나 그 바로 옆의 용마산역은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 상황은 칠곡이나 왜관 같은, 인지도 면에서 아주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과도 상통할 것이다. 칠곡이 어디예요? 아 칠곡은요…… 경상북도인데요, 대구랑 김천 뭐 이런 데랑 가까워요. 왜관이 어디예요? 왜관은 칠곡군 소속이에요. 칠곡이 어딘데요? 아, 칠곡은요… 경상북도 아시죠? 대략 이런 ‘아 그럼 A는 아시죠’ 문형이 끝도 없이 필요해지는, 그런 지역 말이다.
그런 면에서 나의 어떤 직무적 포지션이라는 것은 서울특별시 사가정역 인근 주민의 거주자와 유사했다. 서울은 모두가 다 알지만, 사가정역에 대해 설명하려면 이것저것 설명을 끌어와서 덕지덕지 붙여야 하는. 심지어 다 말하고도 선뜻 상대방의 이해도를 가늠하기가 애매한. 우리 회사는 모두가 아는 ‘서울특별시’였지만, 내가 속한 부서와 해야 하는 일은 ‘사가정역’ 또는 ‘용마산역’스러운 것이 내가 짊어져야 할 오랜 숙제가 될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바깥으로 이직하려다 실패하고, 회사 안에서 부서나 팀이동을 하려다 실패하는 날엔 나도 그런 대답을 하고 대화를 빠르게 끝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서울 서초구에 산다고 하고 내가 어디 사는지에 관한 설명을 쉽게 마치고 싶었다. ‘아, 저는 인사팀이에요.’, ‘저는 마케팅팀에서 일해요.’하면서. 어떡하지. 그동안 쌓아온 거주 n년차의 안정감과 베네핏 같은 것을 모두 버리고, 같은 서울 안의 건대입구역, 건대입구역이 안되면 군자역 정도라도 이주를 시도해봐야 하나. 같은 7호선이니까 군자역 정도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아, 아니다 그냥 서울을 포기하더라도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로 이주해야 할까. 아니 그럼 뭐 부산에 이사 가는 건 뭐 쉽나? 그런 고민을 오래 하다 보면 집 가는 길에 사가정역에 내리는 것조차도 제대로 해내기 버거웠다.
모르는 사람과 만난 자리에서 내가 속한 회사를 밝히기를 꺼렸던 이유는 회사가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그 큰 회사 속의 내가 너무 작고 보잘것없이 느껴져서다. 심지어 같은 회사 안에서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우리 회사와 우리 부서를, 그 사이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던져지는 무슨 일 하세요? 하고 묻는 질문에 매번 움츠러드는 내가 조금 가여워서. 중요한 건 회사의 이름이나 크기가 아니라,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타인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명료함에 달렸다는 걸 누군가 입사할 때 일러주었더라면 좀 달라졌을까. 하긴, 그땐 가만히 있어도 몸 속에 회사 CI 색의 피가 흐르는 것 같을 때였으니 그런 조언을 설사 누가 해줬던들 와닿았을 리도 없겠지만.
존재할 수 없는 색의 피가 걷히고, 연차가 쌓이며 문득 시야가 번개같이 갤 때면 이름이 분명한 노동력을 가진 사람의 어깨가 더 곧게 펴지는 걸 목도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나는 어디에서도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나의 입지를 머릿속으로 두런두런 맴돌며 한숨을 쉰다. 내가 입사한 회사의 커다랗고 무거운 이름을 참 사랑하는 엄마에겐 차마 하지 못할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