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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우유 Oct 22. 2023

한강의 위로는 넓고 깊어서

   스몰토크 단 한 마디로 어떤 사람들이건 놀래킬 수 있는 비기가 내겐 있었다. 출근 시간이 편도 두 시간이라고 하면 모두가 말도 안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놀랐거든. 내가 뱉으면서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말이 두 시간이지 출근과 퇴근을 모두 합치면 하루에 네 시간을 도로에 내버리는 셈이다.


   영어로만 진행되는 팟캐스트 듣기, 좋은 책 읽기, 영어 기사 찾아보기 같은 생산적인 일들을 해보려 수없이 노력 — 물론 뻥이다 — 해봤지만 사흘 정도 해보고 잠기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잠에 매번 굴복하는 건 왜 한점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 길고 긴 출근시간동안 늘 그 자리에서 변함없이 날 응원해줬던 건 오로지 한강이었다. 나의 긴 통근길에서는 뚝섬유원지 역에서 청담 역으로 이동할 때나 잠실대교를 건널 때 한강을 볼 수 있었다. ‘한강 포인트’에 다다를 때쯤이면 작은 설렘을 안고 한강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문 앞으로 이동하거나 창문을 슬쩍 열었다. 그런 식으로 행복의 순간으로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었다. 이상하지, 본가가 대전인 내게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한강은 한결같고 드넓은 그 아름다움으로 매번 나를 위로해 줬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물결과 윤슬, 그 반짝이는 것들로 나를 압도하면서.


   일이 피곤하고 사람이 나를 괴롭게 해 여지없이 눈물이 날 것 같은 날에도 한강을 지나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바람이 찬 날은 물결이 날카로워서, 바람이 따뜻한 날은 물결마저 보드랍게 일렁여서 좋았다.


   서울 사람들도 역시 그런지 궁금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한강의 품을 따뜻한 안식으로, 늘 그렇듯 아름다운 그 무엇으로 마음에 품고 있는지. 내게 그런 것처럼 그들에게도 한강이 대체 불가한 존재인지. 나처럼, 이 하염없이 지겹기만 한 회사 생활을 한강으로 잠시나마 버텨내는지. 눈물이 나는 날은 눈물을 버리고, 괴로운 날은 그 마음을 한강에 던지며, 그렇게 한강에 기대어 하루를 위로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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