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을 꾸준히 빛으로 가꿔온 시간들
-
오늘 개인 상담을 받을 일이 있어서 나의 성향, 직업 선호도, 나에게 맞는 직업은 무엇인지 알아볼 기회가 있었다. 리더십과 독립심이 강한 야망가이지만 자신감은 부족하다는 말과 함께 개인적인 정서에 대한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정서적 안정감이 보통보다 드물 정도로 좋다는 결과를 들었다.
평균이 50이라면, 나는 그보다 한참 아래인 20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래서 상담사 선생님이 정서적 안정감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히 좋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순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나는 사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누가 말해줬는데 감정의 파도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스스로도 굉장히 많이 한다. 하지만 그걸로 인해서 파도에 빠져 죽지는 않는다.
그 파도에서 서핑하듯, 내 감정을 인식하고 언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살아온 결들이 나도 모르게 엔진과 습관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였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친구의 어머니가 내가 얼굴에 그늘이 져 있다고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한번은 정말 마음을 주고 가까이 지낸 친구가 내가 할머니랑 산다는 이유로 다른 친구들에게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나에게 이상한 병이 있는 줄 알았다. 어둡고 슬픔이 많았던 가정환경이 나를 온통 그림자로 덮어버렸나 싶기도 했고, 마음 한구석엔 어떻게든 이 그림자를 지우개로 지우듯 벅벅 지우고 싶어서 노력하듯 살아왔다.
이 존재의 근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생각해보면, 그건 타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서툴었던 어린 내가 받았던 수치심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서툰 마음으로 나 그리고 타인에게 상처 주는 시간을 겪기도 했고, 때로는 나를 희생해가면서까지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힘든 시간들도 보내기도 했었다.
때로는, "뭐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해? 너무 진지하고 심각한" 내 성격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이런 내 성격으로 인해 누군가와 짧은 시간 동안 깊게 연결되는 감정을 느낄 때도 있었다.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나는 상처받았던 피해자가 아니라, 그땐 그런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고 나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에 서툴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지나서 정서적으로 너무나도 안정적인 사람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건, 내 마음의 슬픔이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겪어내면서 스스로 회복해온 시간들이 지금의 안전한 마음 상태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느낀 일은, 어떤 고통이나 슬픈 상황을 온전히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외부의 상황은 늘 변수를 동반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에 따라 그것에 대응하는 것은 정말 천차만별이고, 그런 시간들은 사람을 더욱 더 큰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면, 어둡고 지옥 같은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그 고통을 빛으로 꾸준히 가꿔온 건 아니었을까. 그 근원은 잘 살고 싶은 마음,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안정이란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일이고, 그게 결국 안정을 만드는 일은 아니었을까?
오늘은 내가 정말 성장하고, 맞는 길 위에 놓여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한 날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왔지만 스스로 안정을 만든 나 자신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