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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확행 Dec 20. 2023

곽윤기 선수는 정말 신날까?

 그의 '신남'의 비결


겨울아침.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각. 아침 6시는 칠흑같이 어둡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아이를 깨운다. 뭉그적거리면 죽도 밥도 안되니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좀비처럼 일어나 눈도 안 뜨고 욕실로 들어가는 녀석. 뜨거운 물이 쏴 하고 떨어지는 소리. 오늘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다.



큰 아이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공부를 한다. 일곱 살 때부터 시작한 아침 공부는 6학년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월수금은 영어다. 오늘 읽을 본문에 나올 단어 15개를 외우고 시험을 친다. 두 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 글을 오디오로 들으며 눈으로 읽고, 소리 내서 한번 더 읽는다. 한 문장씩 소리 내어 읽고 해석하고, 문단별로 내용 요약하며 글 전체 내용을 이해한다. 어휘, 내용 이해, 추론, 그리고 본문에 나왔던 내용을 요약하는 형식의 영작 문항에 답을 하면 아침 영어 공부 끝. 화목토는 수학 학원 숙제.


@Unsplash


허리는 90도로 접기. 팔은 11시 방향으로 뻗어 위에 얼굴 갖다 대기. 100톤이 넘는 무게를 자랑하는 샤프를 오른손에는 좀처럼 힘이 힘이 들어가지 않는 아이를 보고 내 입에선 자동반사 멘트가 나간다.

"바른 자세!"

아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반응이 없자 나도 모르게 2절이 절로 읊어진다.  

"매일 하는 건데 뭐가 그렇게 힘드니? 그냥 하면 안 돼?"  

아이는 물기 하나 없는 마른 낙엽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매일 해도 힘든 건 힘든 거예요


화를 낸 것도 아니고,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아이의 말 한마디가 젖은 낙엽이 되어 내 마음에 척 들러붙는다.




작년 초. 쇼트트랙 곽윤기 선수가 나 혼자 산다에 나온 적이 있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막 끝낸 그의 일상을 담은 에피소드였다. 트렁크도 제대로 풀지 않은 어수선한 숙소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곽윤기 선수의 일상은 소탈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은 장면은 바로 훈련하러 가는 길.


전혀 즐겁지 않아 보이는 곽윤기 선수의 표정 그리고 건조한 굴림체 자막 (이미지 출처: 엠뚜루 마뚜루)


2007년부터 시작하여 총 10 시즌 올림픽 대표선수로 활약한 베테랑 선수. 운동을 시작한 유년시절부터 꼽아보면 거의 20년 동안 스케이트를 탄 그도 '오늘 운동을 시작하는 순간'에는 여전히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한가 보다. 국가대표 선수도 당연히 해야 하는 매일의 태스크 앞에서 마음을 다 잡는데, 초등 잼민이의 아침 공부는 말해 뭘해다.

 

이미지 출처: 엠뚜루 마뚜루

 


내가 양치질과 공부를 같은 급으로 두고 오해했다. 공부와 양치질은 엄연히 다르다. 온전히 집중해 뇌를 완전히 써야 하는 '공부'와 체화되어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양치질'과는 결이 완전히 다른 태스크이다.  



아이 입장에서 아침 공부는 어떤 의미일까? 매일 해야 일이니 컨디션이 너무 나쁘지 않은 이상 일단 해야 한다. 게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이다. 매일 한다고 실력이 늘어나는 것을 매번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게임처럼 재미있는 일도 아닌데 계속해야 한다.




나에게도 그런 일들이 있다. 밥 하기와 글 쓰기.



밥 하기. 이 정도 하면 하기 싫은 마음도 생길 법 한데 여전히 하기 싫은 일이다. 매일 비슷한 반찬에, 매일 비슷비슷한 맛. 없는 실력에 빵, 밥, 면을 메인으로 이것저것 돌려 막기 해가며 차려내는 밥.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매일 일취월장하는 건 아니다. 컨디션에 따라 어떤 날은 가족에 대한 나의 사랑과 열정을 과하게 담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구색에 겨우 맞춰 차려내는 일. 잘 먹이고 싶다는 마음과 너무 밥 하기 귀찮은 마음이 여전히 매일 충돌한다. 어떻게 하면 영양소는 풍부한데 간단하게 해치울 수는 없을까 잔머리만 굴린다.



글쓰기.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닌데 나 혼자 매일 해보겠다고 용쓰는 일. 남들은 매일매일 척척 발행도 하더만은 나는 왜 이리 글 한 편 완성하는 게 이리도 더디고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무얼 써야 할지 몰라서, 쓰고 나서도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드러나지 않아서 속상한 적 태반이며, 너무 잘하고 싶지만 참으로 하기 싫은 일. 첫 술에 배 부르랴 라는 말에 기대어 오늘도 근근이 해나가는 일.




'매일 한다'는 의미가 '쉽게 한다'는 의미가 아님을 문득 깨닫는다. 매일 해도 할 때마다 귀찮고 하기 싫고 어려운 일들일 수 있다. 그저 점점 익숙해진다 뿐이지 '당연함'과 '귀찮음'의 치열한 배틀은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서 반복된다. 한 시간 아침 공부를 끝내면 비로소 간밤에 들어온 NBA 뉴스를 확인하며 다시 침대에 널브러질 수 있는 그 달콤한 휴식을 위해 오늘도 아이는 시계를 봐가며 물을 마시고 마음을 잡는다.



매일 해 낸다고 영혼 다 빼고 타성에 젖은 칭찬을 아이에게 건넸던 것이 새삼 미안하고 부끄럽다. 귀찮은 마음을 이겨내고, 포기하지 않고, 해내는 아이. 매일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아이에게 매일 칭찬해야 하는 이유다.



공부하는 아이의 마음을 더 어루만지고 다독여야겠다. 힘들고 어렵지만 지금처럼 매일 해 낼 수 있도록 응원하고 도와줘야겠다. 너를 향한 믿음과 감사를 담아 머리 한번 쓰다듬고, 어깨 한번 토닥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안아주며.

너의 매일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게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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