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틂씨 May 25. 2020

집밥의 신화는 과장되고 미화되었다

여성의 가사노동은 언제나 간과되어 왔으니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전라도 출신의 음식 솜씨 좋은 집 딸로 태어난 엄마는, 그 명성에 뒤지지 않게 늘 건강식을 매끼 식구들의 밥상에 올렸다. 나의 가족은 외가에서 보내주신 해산물과 각종 나물, 신선한 식재료와 제철음식으로 가득한 집밥을 삼십여 년간 먹었다. 그러는 내내 엄마는 식구들 밥 해먹이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동창 모임에서 짧게 여행이라도 갈라 치면 그동안 먹을 식구들의 끼니와 반찬을 챙겨놓기 바빴다. 남은 식구들은 겨우 밥솥으로 밥을 하거나 라면을 끓여먹을 줄이나 알았지 다른 요리나 반찬을 할 줄은 몰랐다. 아니, 시도하지 않았다. 아무도 내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서.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퇴근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아도 갓 지은 밥과 새로 만든 국으로 차려진 밥상이 수저세트와 함께 완벽하게 세팅되어 자신을 기다리기를 바랐고, 첫째는 네가 딸이니까 밥을 좀 차려달라는 엄마의 부탁이 부당하다고 느껴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동생이 마지못해 심부름을 하기도 했지만, 엄마는 그 시절의 다른 엄마들처럼 남동생에게는 부엌일을 부러 자주 시키지는 않았다. 



대학생이 되고 독립을 하고 나서도 자취생들은 대게 제대로 된 밥을 해먹을 줄 모르는 존재로 여겨졌고, 그래서 딱히 요리할 일도 많지 않았다. 전기밥솥으로 밥만 겨우 해서 엄마가 보내주는 반찬을 본가에서 날라다 끼니를 때웠다. 학교 근처에는 싸고 양 많은 밥집이 많았고, 굳이 일 인분의 요리를 끼니때마다 해먹기에는 품이 많이 들었다. 큰 마음 먹고 뭔가를 만들어볼라 치면 필요한 재료와 소스와 도구는 왜 그렇게 다양한지.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면 날파리가 꼬였다. 여러모로 음식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여전히 '집밥' 하면 엄마의 밥을 떠올렸고, 찬양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여겼다. 그리움과 함께 떠올리는 집밥이 언제나 '엄마의 밥'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모두가 당연하게 그렇게 생각해왔으니까. 






집밥의 신화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은, 해외에 살면서 실제로 삼시 세 끼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부터였다. 교환학생이든 유학이든 이민이든, 해외에 살면서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일이 식사다. 일단 외식비가 세금이나 인건비, 팁 등으로 인해 한국보다 훨씬 비싸고 장바구니 물가는 비교적 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접 밥을 해 먹는다. 입맛의 차이나 재료의 차이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렇게 누구나 성인으로서 자신의 끼니를 해결하는 고단함을 마주하게 된다. 더 이상 집밥을 해줄 엄마도, 밥을 사 먹을 가격 경쟁력 있는 식당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 인분의 식사를 위해 얼만큼의 재료를 사야 할지, 남은 야채는 얼마 동안 상하지 않을지, 다른 재료를 어떻게 활용해야 음식 쓰레기 없이 다른 요리를 또 해 먹을 수 있을지 몰라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다. 그래도 그럭저럭 단품 요리를 해 먹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러다 마늘이나 고추를 냉동실에 보관하겠다고 한꺼번에 왕창 썰다가 손에 냄새가 베이거나 화상을 입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같이 사는 하우스 메이트들이 깔깔대고 웃었다.

 

- 아니, 여태 그걸 몰랐어? 너 요리 자주 안 해봤구나?

- 아, 응. 내가 한국에서는 (이제 와서 부끄럽지만) 요리를 거의 안 했어.

- 그럼 밥을 어떻게 먹었어?

- 음..(!!) 대부분 부모님 댁에 같이 살 때엔 엄마가 주로 해주셨고, 아니면 사 먹었지. 

 

라는 말이 타인에게 설명하기 위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깨달았다. (특히 외국어로 설명하다 보면 자기 객관화가 확실히 된다) 왜 늘 밥을 하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인가. 오래도록 부모님 댁에서 엄마 밥을 얻어먹었다는, 그래서 요리를 할 줄 모른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부끄러운 이야기인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여태까지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집밥의 신화와 그 뒤에 숨겨진 가정 주부의 노동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한식은 일품식이 아닌 경우가 많아서 손도 많이 간다. 아침에 커피에 토스트면 끝인 이 동네에서, 아침마다 새로 한 따뜻한 밥을 먹인 엄마의 이야기를 해주면 다들 놀랬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부모님 세대의 많은 가정이 그랬듯이, 우리 집에도 매 끼 새로운 국이나 찌게가 있어야 했다는 말까지는 차마 전하지 못했다. 내게 한식이 그립지 않냐고 물으면, 가끔은 그리워도 손이 많이 가서 잘 안 해 먹게 된다고 말했다. 말하면서 오래도록 그런 삶에 순응하며 살아오신 많은 어머니들을 생각했다. 그런 삶이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레 용인된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외국에서는 대게 스무 살이 되면 독립을 하게 마련이고, 독립과 동시에 각자의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기 때문에 식사를 위해 요리를 하고, 식재료를 사고, 청소와 빨래를 직접 한다. 그렇게 이미 십 년 이상의 경력이 생긴 성인이라면, 보통은 성별을 막론하고 자기가 먹을 저녁 식사 하나 요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친구들 몇 명을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 하는 일도 자연스럽다. 물론, 그들에게도 어릴 적에 먹던 엄마표 가정식 메뉴나 그리운 광경이야 있겠지만, 어릴 적의 일이다. 여전히 외국에서도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는 일은 여성의 일인 경우가 더 많지만, 한국만큼 절대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니 그만큼 강력한 '집밥=엄마밥=최고'라는 식의 신화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집밥이라는 말에 엄마의 밥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 또한 긍정으로 포장된 편견이 아닌가. 물론 여전히 엄마의 밥은 따뜻하고 맛있겠지만, 더는 여성의 노동력을 갈아 만드는 끼니의 고단함을 뒤로 한채 결과론적으로만 집밥을 찬양하고 싶지 않다. 집밥의 신화는 과장되고 미화되었다. 


이제는 부부만 남은 집에서 엄마는 밥하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이야기한다. 엄마, 밥 하고 싶지 않은 날은 하지 마. 그래도 돼. 엄마는 그럴 자격이 있어. 남편이 혹시라도 불평하면 직접 해 먹으라고 해. 스스로 끼니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은 불평할 자격도 없는거야. 유독 한국에서만, 특히 남자들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편견이 있다. 왜, 그들은 요리를 할 줄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라면과 인스턴트로 한 끼를 해결하는 불쌍한 존재로 취급될까. 어째서 두 손이 멀쩡한데 제대로 된 요리를 배워서 스스로의 끼니를 해결하려는 의지조차 없나.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자기 자신의 식사를 챙겨 먹을 줄 모르는 사람을 성인이라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까지 여성들은 누군가의 밥을 해주는 사람으로 남아야 하나.


정성이 담긴 엄마의 집밥과 손맛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간과해왔던, 당연하게 여겨지는 편향된 (요리) 노동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부모님 다음 세대로서, 적어도 성인이 된 이상 자신이 먹을 것은 스스로 만들어 먹을 줄 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건 큰 바람이려나. 


이전 04화 그녀는 매일 나를 데리러 나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