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먼 나라에서도 어김없이 금쪽같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본다.
다른 예능처럼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닌데 굳이 찾아보는 이유라면 아마도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전문가가 문제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을 할 때면, 나는 때때로 십 년 이상을 훌쩍 넘는 시간을 되돌아가 영락없는 어린이가 되어 훌쩍이게 된다. 직접 해준 말이 아닌데도 누군가에게 나 자신으로 온전히 수용되는 기분이 되고, 그러면 자주 눈물이 났다.
늘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다. 불안을 떨쳐내지 못해서 언제나 에너지가 부족했다. 사람들은 자주 왜 지쳐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이유 없이 피곤했다. 강박과 불안은 세트로 내 삶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밤에 복도형 아파트의 창문으로 누군가 방에 침입할까 봐 두려움 속에 잠들었다. 이불을 덮지 않으면 벌레들이 어디선가 기어 나와 내 몸에 뒤덮일 것 같았다. 조금의 이물질도 몸에 닿는 것이 싫어서 놀이터의 모래놀이도 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이 닿으면 찜찜한 기분이 사라질 때까지 씻었다. 쓸데없는 걱정도, 겁도 많은 까다락배기. 그것이 내가 어른들에게 평가받은 어린 시절의 정체성이다.
그 시절의 불안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그저 공기처럼 마음에 침습되어 있었을 뿐. 오랜 시간 동안 그것에 붙들려서 불안을 없애기 위해 최적화된 모드로 살아왔다. 온 힘을 다해 불안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서. 그래서 그동안 써 내려간 수많은 일기속에는 누군가가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믿을 수가 없어서 제삼자가 확인시켜주었으면 했다. 무신론자인데도 신이라는 것이 존재해 내게 '다 괜찮다'라고 말해준다면 무엇이건 덥석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은 가장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한다. 당연하게 들리는 이 명제는 어떤 사람에겐 당연하지 않다.
특별히 악하지 않은 그 시절의 평범한 가장은 남들처럼 돈 버는 자의 권위, 부모의 권위, 연장자의 권위 따위를 붙들고 가족 위에 군림했다. 그가 나방처럼 날개를 펼치고 집안 곳곳을 퍼덕이며 날아다닐 때마다 나머지 가족들은 그가 흩뿌리는 가루에 닿지 않기 위해 피하거나 숨었다. 다행히 작은 방 하나가 내 것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자주 숨죽여 방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엄마에게 자식 교육 잘 못 시킨 죄를 묻고 있진 않은지,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그는 명령이 아닌 말을 할 줄 몰랐고, 나는 공포와 권위에 기꺼이 굴복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자식이었다.
오랜 전세살이 끝에 부모님이 산 집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 언제부턴가 자동 센서등이 꺼진 어두운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집안의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거실에 앉아 무표정하게 TV를 보고 있을 그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고운 말이 오갈 리 없으니까. 그 시간은 짧기도 하고 길기도 했다. 그러다 계단을 올라오는 타인의 발소리라도 들릴라 치면 숨죽여 몸을 피했다. 도둑도 아닌데 왠지 아무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이웃이 '너 거기서 뭐하니?'따위를 묻게 될까 봐. 겨우 집 안의 불이 꺼지고 나면, 잠시 심호흡을 하고 끼이익 소리가 나는 무거운 현관문을 천천히 열고 숨듯이 내 방으로 들어갔다. 학교에서 동기 중에 가장 늦게 떠나 막차를 타는 사람은 늘 나였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항상 무거웠다.
학창 시절 집을 떠나 짧은 여행을 다녀오면, 그것이 수련회가 아니라 극기훈련이었더라도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그런 내 얼굴을 마주하면 따지듯이 추궁했다. 너는 왜 집에만 오면 얼굴이 죽상이냐, 기집애가 돼가지고 좀 웃어라, 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다. 순순히 그가 바라는 대로 곰살맞게 굴며 웃어줄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집 밖으로 떠돌기 시작했다. 그것이 여행이든 타향살이든, 그가 없는 곳이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낡은 원룸이나 기숙사는 그것 대로 남의 집 침대나 방 한 칸은 그것 대로 애로 사항이 있었지만, 그래도 숨은 쉴 수 있지 않을까. 언제쯤 온전하고도 안전한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을지를 염원했다. 혼자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쉽게 나를 부정하게 된다. 안전지대 없이 살아온 사람의 삶은 언제나 불안해. 24시간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삶이라서.
아빠가 무서워서 집이 무섭다는 일곱 살짜리 아이의 인터뷰를 보면서, 결국 오열하고 만다. 솔루션을 받지 못한 경우 그 아이의 미래를 너무 잘 알거든. 너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갖지 못한 채로 불안정하고 불안한 어른이 될 거야. 근원적 불안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몰라 동동 대면서. 사람과의 애착도 믿지 못하고 세상도 믿지 못해서 발을 땅에 대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이 되지. 그렇게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들이 모여 내가 되었다. 자기 효능감에 문제가 생긴 어른의 버전으로.
마음이 밑바닥으로 꺼질 때마다 결국 깊은 곳에 묻어둔 엄마의 지난 사랑을 자꾸 꺼내어 곱씹어 보게 된다.
살아가려면 내가 붙들 수 있는 게 그거 하나뿐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