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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ul 18. 2022

겨우 파운드 케이크를 구울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무엇을 이룬거라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 




흐음- 하고 공기를 들이마시면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났다. 하우스 메이트가 파운드케이크를 구웠기 때문이다. 갓 구운 빵 냄새는 정말이지, 강력하다. 집에서 베이킹을 하고 나서 빵을 나누어 먹지 않는 것은 일종의 범죄가 아닐까, 괜히 혼자 생각하게 될 정도로.


원래 베이킹에 큰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저울이며, 계량이며, 뭐 이런저런 재료와 도구가 필요한데, 그걸 다 살 여력도 없었고, 이 관심이 얼마나 갈까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에 함께 살던 하우스 메이트는 종종 파운드케이크를 구워서 나누어 주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베이킹을 한다고, 파운드케이크가 제일 쉬워서 자주 굽는다고 했다. 한 번 케이크를 구울 때마다 온 집안이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찼다. 그걸로 이미 케이크를 잔뜩 먹은 기분이 되었다. 딱히 단 것에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편인 데도 갓 구운 빵의 냄새는 늘 황홀하고 근사했다.


그런데 어느 연말, 그녀가 갓 구운 케이크를 통째로 들고 파티에 가버리는 통에 한동안 코 끝에 달콤한 케이크 냄새만 맴돌았던 적이 있다. 그 해에는 어쩐지 전쟁처럼 폭죽이 터지는 길거리에 사람들과 나서고 싶지 않았고, 하우스 메이트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자신의 나라로 가족을 보러 떠났다. 이때다, 베이킹을 해보자. 그녀의 베이킹 도구를 이용해서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블로그와 유튜브를 찾아 레시피를 익힌다. 재료를 섞어 틀에 붓고,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30분 정도가 지나면, 짜잔- 노오랗게 부푼 파운드케이크다! 이렇게 쉬운 거였다니, 나도 할 수 있는 거였네!


처음 구워본 얼그레이 파운드케이크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것 다운 맛이 났다. 아무래도 실컷 부풀어 오르지 않은 건 실온의 버터에 넉넉하게 공기를 넣어주지 못해서 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나의 첫 케이크는 익숙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겼고, 26cm짜리 길쭉하고 네모난 틀에 가득 찬 파운드케이크가 통째로 내 것이 되었다. 버터와 설탕, 계란, 밀가루가 섞여서 이렇게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되다니. 진짜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신기하고 또 신이 났다. 아아, 이렇게 입문하게 되는 거구나, 베이킹에. 






그때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처음 구워준 빵이 바로 파운드케이크였거든. (모든 베이킹 입문자는 파운드케이크를 거쳐가게 되어 있다.) 당시에 나의 가족은 서울의 전셋집을 1,2년씩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집이란 걸 사서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동생과 나는 근처의 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연고도 없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와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엄마는 종종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 열리는 어머니 교실에 참여했다. 어느 날은 부모 교육 시간에 배웠다며 '~ 했구나' 하는 말투를 써서 동생과 내게 느끼하고 이상하다는 타박을 들었고, 어느 날엔 꽃꽂이 교실을 시작했다며 매주 오아시스에 꽂힌 화려한 꽃바구니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베이킹을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자식들에게 건강한 가정식을 먹여야만 안심이 되는 전라도가 고향인 전업주부였다. 간식까지도 직접 해먹일 정도였으니, 우리는 배달음식이라는 건 가끔 먹는 피자나 치킨을 제외한다면 구경하기 힘들었고 과자나 라면 같은 것도 쉽게 얻어먹기 어려웠다. 동생과 나의 불만은 그거였다. 엄마가 라면, 빵, 과자를 안 사줘! 그러니까 엄마가 베이킹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매주 공식적으로 엄마가 만든 빵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고, 우리는 그 사실에 그저 환호했다. 만세!


매번 빵을 들고 올 때마다 엄마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이번 건, 어때?

우리는 이번 빵이 더 맛있네, 지난번 꺼가 더 맛이 있네 하며 엄마의 빵에 점수를 매겼지. 그동안 보고 배운 건 그런 거였거든. 부친은 매번 자신의 입맛이 까다로운 것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엄마의 음식을 평가하기 바빴다. 그녀의 음식은 맛없는 게 없을 정도로 늘 훌륭했는데도, 이건 좀 짜네, 저건 재료가 신선하지 않은 것 같아 뭔가 비린 냄새가 나네, 하며 타박하기 바빴다. 그래서 자식인 우리들은 그래도 되는 건 줄 알았지. 대학생이 되어 독립하고 다양한 타인을 더 많이 만나기 전까지. 


매번 새 밥과 반찬을 해내는 엄마가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겼다. 다른 집들다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 게다가 그녀는 늘 가족들의 평가질을 나무라는 대신 미안해, 엄마가 다음에는 더 맛있게 만들어 줄게. 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왜 그때 생각이 나지.





엄마의 파운드케이크는 달큰하고 포슬했으며 묵직했다. 버터와 설탕이 엄청나게 들어갔으니 조금만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처음 맛본 버터의 달콤함에 빠진 나와 동생은 우유와 함께 금세 그 케이크를 뚝딱 먹어치웠다. 가끔 오븐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에 설레가면서, 또 만들어 달라고 조르면서.


어느새 나는 처음 파운드케이크를 굽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두 연년생 남매를 건사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느라 고군분투하던 엄마 나이의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철이 없으며, 가진 것도 없는, 한 치 앞의 미래도 볼 줄 모르고 다른 나라를 떠도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20여 년이 넘는 시간의 갭이라는 것이, 그리고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엄마는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 할 것 같은데.


무명한 존재의 나는 이제 적어도 파운드케이크를 구울 줄 안다. 그게 벌써 3년 전 겨울의 일이다. 판데믹의 시간 동안 취미가 베이킹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꽤 많은 케이크와 쿠키를 구워냈다. 안다, 겨우 베이킹을 좀 할 줄 안다는 것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간다는 보장은 결코 될 수 없다는 걸. 그래도 매번 오븐에서 달큰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가는 케이크와 쿠키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든든해진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그래도 자라고 있는 거겠지, 싶어서. 




*2022년, 브런치북을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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