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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 Oct 26. 2022

산티아고 길 위의 천사를 본 적이 있나요?

#21일 차,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에서 몰리나세카

천사를 본 적이 있나요?

흔히 산티아고 길에서 한번 이상 천사를 만난다고 한다. 길에서 처음 만난 사이이거나 모르는 사이인데도 내게 호의를 베풀거나 도와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이다.


길 초반에 무릎이 아팠을 때 여러 명의 천사를 보았다. 일본 파스 한 박스를 주신 분, 근육통 약을 한 케이스 주신 분, 대부분의 순례자는 무릎이 아프다 하면 작건 크든, 자신이 쓰던 것이나 쓰려고 무거움을 무릅쓰고 가져온 것들을 선뜻 내밀었다. 길을 갈 때 내가 힘들어하면 엉덩이에 있는 배낭끈을 더 꽉 조여라, 신발끈을 더 꽉 메라며 소소한 팁을 주기도 하고, 누르는 걸 몰라 신호등 앞에서 마냥 기다리는 나를 보고 가던 길을 돌아와 신호등 버튼을 눌러주고 가던 동네 아저씨, 두리번거리는 나를 보며 차 안에서도 순례길을 알려주던 동네 사람 모두가 내가 길에서 만난 천사이다.


어제 알베르게에 도착하자 한 오십대로 보이는 한국 여성분이 배낭이 오지 않아 애를 태우는 모양이었다. 알베르게 주인은 그녀가 영어가 안 된다며 나에게 도와줄 수 없느냐고 하여 파악해보니, 아침에 레온에서 짐을 부쳤는데 그 짐이 도착하지 않은 것이었다. 업체로 전화하니 짐 봉투에 돈은 부족하게 들어있고 연락처도 없어 그대로 레온에서 보관 중이라 한다. 지금이라도 보내달라 하고 한 시간 뒤 배낭은 도착하였다. 그렇잖아도 감기에 걸려 정신이 없고 영어를 잘 못한다는 그녀는 천사를 만났다며 웃음을 짓는다.


순례자 디너에서 배낭을 찾고 긴장이 풀린 그녀와 함께 식사를 하였다. 친구와 둘이서 왔다 여기서 새롭게 알게 된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상해 지금은 따로 걷고 있다 했다. 자신에게 내가 여행사인 줄 아냐고 했다며 마음이 많이 상했는지 욕이 아니라면서 쇤 목소리로 핏대를 올리며 친구 흉을 보고 있는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감정쓰레기통이 된 기분이다. 밥을 다 먹고 20유로를 내게 준다. 주인에게 자기 걸 계산해 주고 남을 돈을 방으로 가져 다 달라는 말을 하곤 총총히 사라진다. 친구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밤이 되어 그녀와 나 포함 네 명의 여자가 한 방에서 잠을 잤다. 이 중 두 명은 감기 환자에 한 명은 지독한 코골이였다. 잠이 안 와 뒤척이고 있는데 내 앞에 앉아있는 형체가 보인다. 그녀이다. 문득 그녀는 내게 손을 달라더니 그녀의 손과 이마에 갖다 댄다. 축축하다. 걱정도 되지만 계속하던 기침과 그녀의 땀이 묻은 그곳에 내 손을 대는 느낌이 좋지 않다.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싶은데 이층 침대라 내려가기가 귀찮다. 그녀는 아침에 일찍 가지 말고 자신을 살펴달라 한다. 어이가 없다.  

결국 밤을 꼴딱 새우며 빨리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아침에 깬 그녀는 자신이 이제 괜찮은 것 같다고 가도 된다고 한다. 천사고 뭐고 뒤도 안 보고 인간은 그곳을 빠져나왔다.  


내 죄 크기만큼 큰 돌멩이

포세바돈을 지나 계속되는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철 십자가가 나온다. 다큐에서 본 기억에 의하면, 순례자들이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가져와 철십자가 주변에 놓는다. 설명에 따르면 돌을 철십자가 주변에 놓으면 자신이 살며 갖게 된 짐과 죄로부터 해방된다한다. 단, 돌은 자신이 지은 죄만큼 커야 한다는 설명. 내가 지은 죄의 크기의 돌멩이를 어디서 구할건가.

작은 샴푸 하나도 짐이 되는 이 길에 한국에서부터 돌멩이를 가져왔을 리 없다. 언덕 바로 아래에서 작은 돌멩이를 하나 잡고 그래도 기념이니 하나 올려두려고 십자가를 향해 올라가는데 마음이 울컥하다.

노령의 자전거 부대 할배가 혼자 셀카 찍는 나에게 사진을 찍어준다 하는데 눈물이 날 것 같다.

철 십자가를 지나 걷는데 풀 위에 앉아 흐느껴 우는 부부가 보인다. 겨우 참았던 눈물이 터진다. 나는 누구를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까..

구름과 운무가 배경이 된 산 넘어 산 풍경은 아름다움으로 나를 위로한다.

급경사의 하강 구간을 지나니 오늘 머물 몰리나세까의 고풍스러운 다리가 나타난다. 어젯밤의 밤샘으로 오늘은 호스텔에서 자기로 하고 웹사이트와 리뷰 검색까지 하며 신중히 고른다. 큰 창문이 있는 사진을 보고 예약했는데 일층에 바로 밖이 길가라 블라인드를 올리기도 창문도 열기 애매하다. 교묘한 사진과 리뷰에 당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여행 경력이지만 숙소 검색은 항상 어렵다. 밖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이런 날은 빨리 자야 한다.

 

* Tip : 숙소 검색 사이트의 리뷰를 너무 믿지 말자. 다들 아는 것처럼 금전이 지불된 대가성 리뷰도 다수이다. 알베르게가 아닌 호스텔의 싱글룸을 잡는다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선택한 방 타입의 사진에서 확인되는지 보고, 애매하다면 예약 전 문의 창을 이용하여 확인하는 것도 방법이다. 싱글룸이다 하더라도 방이 여러 개일 수 있고 일층은 거리에서 바로 보여 불편할 수 있으니 확인 후 예약한다면 좀 더 확실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을 거쳐 예약하는 건 시간 소요와 정신적 피로도가 있고 특히 산티아고 길을 편안하게 여행하려고 나선 것은 아닌 만큼 혹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욕심을 버리거나 괜찮다고 주문을 걸거나 빨리 자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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