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함께한 동남아 배낭여행 4
오전에 타프롬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정글 속에 묻혀있는 타프롬을 구경하고 나오니 그 많은 관광객들 속에서도 귀신같이 우리를 알아본 툭툭 기사가 번개처럼 툭툭이를 가져와 대령한다.
유적지마다 시작하고 나오는 포인트가 다를 수 있으니 미리 정확하게 의사소통을 해 두어야 유적지를 보고 나와서 툭툭 기사를 찾아 헤매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툭툭 기사들은 경험이 풍부하므로 그런 불상사는 잘 일어나지 않지만.
씨엠립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을 꼽는다면, 모든 관광객이 반드시 찾는 앙코르왓, 타프롬, 앙코르 톰 3곳이다. 일반적으로 앙코르왓이라고 통칭하는데, 앙코르왓은 유명한 3개의 사원 중 하나이다. 세 개의 사원은 서로 다른 특색이 있다. 가장 보존상태가 좋고 규모도 크고 널리 알려진 곳이 앙코르왓이다. 우리는 앙코르왓을 제일 나중에 보기로 했다. 타프롬을 먼저 보고, 앙코르 톰으로 이동했고, 마지막으로 앙코르왓을 가는 일정으로 움직였다.
앙코르 톰을 특징짓는 것은, 거대한 얼굴이다.
앙코르 톰에 들어서서, 사원 위쪽으로 올라가면 거대한 얼굴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정말 거대한 얼굴, 얼굴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온통 거대한 얼굴로 채워진 이 사원을 한참 보던 아내가 “끔찍하다”는 표현을 했다. 이 거대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오래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까. 이 많은 돌들은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을까. 신을 위해 만들어진 이 거대한 건물과 거대한 얼굴들 앞에 서 있으면 일순간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곳의 사원들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사전 지식이 필요한데, 사원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조각들을 이해해야 이 사원의 참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겠다. 그러나 우리는 사전 지식없이 겉모습만 훑었다. 믿을 수 없이 섬세한 부조, 빼곡하게 들어찬 부조들은 의미를 몰라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 유명한 코끼리 테라스의 부조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그렇게 오래 전에 이런 건축물과 조각을 만든 인간에 경외감을 느낀다.
현지에서 가이드를 고용해서 유적 해설을 들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앙코르왓에 대한 변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서 사실 제대로 된 해설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둘러보다 지칠 때면 어느 회랑의 난간에 걸터앉아 쉬곤 했는데, 일군의 관광객들이 가이드와 함께 지나가며 부조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조금 오래 쉬다 보니 계속 지나가는 여러 국적, 여러 팀의 해설을 듣게 되었는데, 해설의 내용이 가이드에 따라서 조금씩, 혹은 꽤 많이 틀렸다. 한국 가이드끼리도 설명이 틀리고, 외국 가이드의 설명도 또 틀리다. 똑같은 부조를 놓고 설명을 하는데, 가이드마다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사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가이드 별로 주관적 해설이 난무한다. 그러니 딱히 가이드를 고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현지 사정을 자세하게 알고 가면 좋겠지만, 처음에는 아무래도 어리바리할 수밖에 없다. 첫날 투어는 결국 툭툭 기사가 약간의 가이드 역할도 하게 된다. 식사시간이 되어 밥을 먹어야 하는데, 툭툭 기사에게 어디가 좋겠냐고 물어보니, 두말없이 우리를 식당으로 태워다 준다. 서양 여행객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식당이다. 가장 무난한 볶음밥을 시키고, 여행 가면 늘 마시는 현지 맥주를 시켰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는 앙코르 맥주이다. 볶음밥 $4, 맥주 $3.5. 현지 물가에 비해 과도하게 비싸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격표에 그렇게 쓰여있으니 그대로 밥값을 냈다. 나중에 안 일인데, 여기서는 이런 식당에 들어오면 밥값도 흥정을 해야 한다고. 툭툭 기사가 손님 태워다 주고 커미션을 챙기는 식당인 듯하다. 미리 현지에서 유명한 식당을 알아두고 그곳으로 가자고 했어야 했는데, 툭툭 기사에게 데려다 달라고 맡긴 것이 불찰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다 여행의 묘미다. 천 원 이천 원정도 바가지를 쓰는 것은, 심정적으로 억울하긴 하지만 금전적으로 막대한 손해는 아니니 편하게 생각하고 즐기는 것이 맞다. 가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는데, 여행지에서 약간이라도 바가지를 쓰는 것에 지나치게 민감해서 따지고 들다가 여행을 망치는 사람들이다. 국제 호구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외국인 관광객으로서 약간의 바가지는 감수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편하다.
처음 태국에 갔을 때 새벽 수상시장 담넌 싸두악 투어를 호텔 옆에 있는 현지 여행사에서 구매해서 다녀왔었다. 반나절 투어였는데 당시에는 현지에 대한 정보가 없을 때라 크게 비싸지 않다고 생각해서 별생각 없이 구매를 했다. 이스라엘에서 온 가족과 같이 팀이 되어 투어를 하고 나서, 얼마에 투어를 구매했는지 물어보는 과오를 저질렀다. 내가 지불한 금액보다 훨씬 싼 금액을 그들이 지불한 것을 알고는 여행사로 찾아가서 한 시간을 싸워서 차액을 환불받았는데, 생각해보니 고작 5000원가량이었다. 그냥 바가지를 감수하고 그 시간에 다른 구경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었을 텐데. 그 당시에는 그저 바가지를 쓴 것이 억울했고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는 정의감도 발동했었다. 현명한 여행자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리 크게 바가지를 쓰지도 않지만, 설령 바가지를 써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런 것이 다 여행의 일부라는 것을 알기에.
앙코르왓에서 꼭 봐야 할 것은 사원만이 아니다. 일출과 일몰은 꼭 보라고들 한다. 유명한 일몰, 일출 감상 포인트가 몇 군데 있다. 대부분의 툭툭 기사들이 정확한 포인트를 알고 있기에 이들에게 데려가 달라고 해도 되지만 미리 정보를 찾아보고 정확한 장소를 정한 후에 툭툭 기사에게 지정해서 데려다 달라고 해도 된다. 일출이나 일몰 시간에 맞춰 가면 벌써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자리 잡고 있다.
게으른 우리는 일출은 포기하고 일몰 구경 포인트로 유명한 사원의 가파른 탑을 올라가서 자리 잡고 앉아서 지는 석양을 감상했다. 여행객들 모두 석양에 붉게 물든 얼굴로 일몰을 감상하는데, 솔직히 이곳의 일몰이 다른 곳의 일몰과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느끼진 못했다. 아마도 정글 한복판 무너진 신전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일몰이라는 것에 대한 감정이입이 큰 작용을 하는 것 아닐까 싶다. 사실 여행지라는 장소 하나로 이미 무엇이건 감탄할 준비가 되어있다.
앙코르왓에서 일출을 꼭 봐야 한다고들 하는데, 우리 부부는 아침잠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여행 가면 늘 저녁마다 현지 맥주를 마시느라 일출은 거의 포기한다. 일출보다는 저녁 맥주에 더 큰 가치를 둔다. 그래서 우리는 정해진 틀에 따라 움직이는 패키지여행보다는 내가 원하는 일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배낭여행을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