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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 Ale May 28. 2017

사원과 호수와 빨간 피아노

부부가 함께한 동남아 배낭여행 5


씨엠립에서는 어디를 가도 사원 유적지이다. 하도 많은 사원을 돌아다니다 보니, 나중에는 거기가 거기 같고 이 사원이 저 사원 같고, 처음 감탄사는 어느덧 어디로 사라지고 심드렁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다니는 길가 어디나 옛 사원 건물들이 널려있고, 툭툭 기사가 열심히 사원 이름을 알려줬는데 이제는 이름조차 전혀 기억나지도 않는다. 



앙코르왓이 앙코르왓으로 불리게 된 이유, 앙코르왓을 마지막으로 찾아간다. 씨엠립의 여러 사원 중 가장 보존상태가 좋고, 규모도 가장 크고, 균형 잡힌 아름다움도 그렇고, 사원 중의 사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앙코르왓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저 세 개의 탑이 보이는 이 각도가 아마도 앙코르왓을 보여주는 가장 흔한 사진 아닐까 한다. 캄보디아 화폐에서도 볼 수 있고, 캄보디아 비자에도 세 개의 탑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코르왓 내부로 들어가면 길고 긴 회랑이 늘어서 있고, 회랑에 빼곡하게 힌두 신화를 설명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사원의 맨 위층까지 올라가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탑의 상층부까지 올라갈 수 있다.






저 계단은 정말 가팔라서 실제로 올라가려면 약간 무섭기도 하다. 신에게 경배하러 올라가는 길인데 걸어서 올라가면 불경스럽다고 기어서 올라가라고 저렇게 가파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계단을 올라가려면 정말로 문자 그대로 기어서 올라가게 된다.





타프롬, 앙코르 톰, 앙코르왓을 모두 보고 나서, 꼭 보아야 할 사원으로 꼽히는 반테이 쓰레이 사원을 보러 갔다. 시내에서 꽤 떨어져 있는 곳에 있는 반테이 쓰레이 사원은 툭툭을 타고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조금 먼 거리기에 툭툭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곳의 부조는 크메르 예술의 정수라고 한다. 예술은 잘 모르지만, 정말 정교하다는 것은 문외한이 봐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원을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는다고 한다. 부조의 정교함을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붉은 사암에 조각한 섬세한 부조들은 생생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미 앙코르왓을 모두 둘러보고 왔기에 그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원의 규모는 매우 작아서 거대한 앙코르왓의 규모와 비교가 된다.  그러나 섬세한 부조들을 보고 있으면 왜 이곳을 크메르 예술의 정수라 하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이렇게 사원 구경을 모두 마치고, 동남아 최대의 담수호수라고 하는 톤레삽 호수 투어를 갔다. 톤레삽 호수는 일몰로 유명한데, 그래서 보트 투어는 대부분 오후에 시작해서 일몰을 보고 오는 것으로 끝난다. 툭툭 기사가 호수 선착장까지 가서 가격을 흥정하고 돌아왔다. 대강의 가격은 알고 왔기에 크게 차이가 없으면 따로 흥정을 하지 않지만, 가격차이가 크면 흥정이 필요하다. 동남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흥정의 기술도 습득하게 된다. 현지인 가격과 외국인에게 부르는 가격이 다른 경우가 많다. 현지인 가격을 지불하면 좋겠지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고 한낱 외국인 관광객일 뿐이다. 그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흥정을 할까 싶지만 사실 언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만국 공통어인 숫자가 있기에 계산기에 가격을 찍어 보여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원하는 가격을 찍어서 흥정을 한다. 밀고 당기는 흥정이 처음 귀찮고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며칠 지나면 오히려 이 과정을 즐기게 된다. 흥정을 하지 않으면 뭔가 빠진 듯 허전하기까지 하다.




이곳 호수에서도 빠지지 않고 어김없이 아이들이 원 달라를 외치며 따라온다.  다른 사람의 여행기 사진에서도 이 녀석을 볼 수 있었으니 꽤 깊은 인상을 남기는 꼬마임에 틀림없다. 벌써 오래전이니 이 꼬마도 이제는 훌쩍 컸겠다.


톤레삽 호수는 이곳 사람들의 생계수단이기도 해서 수상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보트는 이들 수상마을을 거쳐서 이런저런 구경거리를 보여주고 호수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일몰이 뭐 색다를 게 있을까 했는데, 바다 같은 호수 한가운데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맛이, 의외로 굉장히 새롭다. 망망대해에 온 것 같은 호수에서 선장이 엔진을 끄니 주위 풍광이 달라 보인다. 고요한 호수 한가운데, 조용히 흔들리는 배안에서의 일몰은 색다르다. 아름답기도 하고, 또 이제까지 지나온 풍경과 아이들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감상에 젖게 만든다.


씨엠립을 여행했던 당시에 나는 담배를 피우는 흡연자였다. 화양연화 마지막 장면에 양조위가 앙코르와트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있다. 그 장소에서 담배 한대를 피고 오라는 요청이 있어서, 한대를 피웠다. 앙코르와트는 원래 금연구역이지만, 경비원들조차 경내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계문화유산에서 담배 피운 것이 잘한 일은 아니고, 흡연자 시절 정말 말도 안 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많이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다. 지금은 관리가 강화되었기를 바란다.


톤레삽 호수 투어를 마지막으로 사원의 도시, 씨엠립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씨엠립에는 여행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펍 스트리트(Pub Street)가 있다. 문자 그대로 여행객들을 위한 펍과 식당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태국 방콕에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메카라 불리는 카오산로드가 있다면, 씨엠립에는 펍 스트리트가 있다. 


이곳에 유명한 곳으로 레드 피아노라는 식당이 있다. 툼레이더 촬영 당시, 안젤리나 졸리의 단골 식당으로 유명해진 곳이다. 음식 맛이 아주 뛰어나다고는 못하겠지만, 썩 괜찮은 편이다. 가격도 현지 물가로는 비싸지만, 우리 기준으로는 저렴한 편이다. 안젤리나는 볼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 밥도 먹고 앙코르 비어도 마셨다. 분위기는 썩 괜찮은 곳이다. 요즘에는 관광객이 많이 늘어나서 이곳도 많이 바뀌었고 레스토랑도 많이 생겼다고 한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도 꽤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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