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숨은 상실
처음엔 모든 것이 느렸다
걷는 법도,
웃는 법도,
울 줄 아는 것도
하루는 길었고
한 계절은 영원 같았다
작은 꽃 하나를 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낯선 이름 하나를 외우기 위해
밤을 새웠다
그렇게 세상을 배워가던 시간들은
느리고,
서툴고,
그래서 반짝였다
그러나
살아갈수록
속도가 붙었다
어디쯤에서 멈춰야 하는지
무엇은 생략해도 되는지
어떤 감정은 모른 척해야 하는지 —
점점 더 빠르게 계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것이 되었다
어제와 오늘이 겹쳐지고
이름 모를 풍경들이 스쳐가고
기억은 짧아지며
숨 고를 틈은 줄어들었다
익숙함은 속도를 만들고
속도는 순간을 앗아간다
순간이 사라지면
하루의 빛깔
사람의 온기
살아 있다는 느낌을 잃어버린다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오래,
한 걸음, 한 숨을
아끼며 살아가자
시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를
기다릴 수 있으니까
"어릴 적에는,
시간이 세심한 장인처럼 움직였습니다.
하루를 천천히 깎고 다듬어
하나의 조각을 완성하듯 살았습니다.
작은 꽃을 오래 바라보고,
알 수 없는 이름 하나에도 밤을 새웠습니다.
모든 것은 새로웠고,
그 새로움이 하루를 무겁고 길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삶은 기술이 되고,
기술은 속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무엇을 생략해야 하는지,
어디서 감정을 접어야 하는지,
우리는 너무 빠르게 배워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점점 짧아지고,
시간은 손바닥 사이로 흘러내렸습니다.
기억은 흐릿해지고,
느낌은 가벼워졌습니다.
시간이 가속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삶에 익숙해져서입니다.
익숙함이 순간을 지우고,
지워진 순간은 우리를 비워갑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짐합니다.
조금 더 느리게,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뜨겁게 살아가겠다고."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