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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엮어내기 14화

세포막이 터져버린 세포

경계 없는 다정은, 파열을 부른다

by 김챗지


내장 하나쯤
흘러나온 줄도 모른 채
세상을 껴안으려 했다

막이 없었다
세포막도, 마음의 선도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였다

누군가의 말 한 조각
타인의 울분, 낯선 슬픔
모든 것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이

공감인 줄 알았다


그러는 동안
희미해졌고
윤곽은 녹아내렸다


경계는 사라지고
무엇이 나인지
무엇이 그들인지조차
가늠할 수 없을 때쯤


비로소 알았다


아직도 나는
세포의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세상 전체를 받아들이며
막 하나 없이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파열되고 있다는 것을




"너무 쉽게 아파합니다.
타인의 말 한 조각, 툭 던진 표정 하나에도
무언가가 가슴 안으로 스며듭니다.


그렇게 사람 사이를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막 하나 없는 세포처럼
온 세상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다정해 보입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감정을 예민하게 감지하며,
언제나 ‘함께 아파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다정함은 종종
자기 자신을 해체시키는 방식이 됩니다.
그 다정함 속에 자기 보호의 경계가 없다면,
그 사람은 어느새 고요를 잃고, 형태를 잃고,
마침내 파열에 이릅니다.


막은 단절이 아닙니다.
막은 경계이며, 건강한 자율성의 구조입니다.
외부의 상처가 마음 깊숙이 들어오는 걸 막고,
내면의 평온을 지키는 첫 울타리입니다."


‘모두를 끌어안아야만 착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건강한 관계는 열림과 닫힘의 리듬,
즉 조율된 공존에서 시작됩니다.
파열되지 않고도
충분히 다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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