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꼼지락
줄곧 뚜벅이였다. 면허는 정말 일찍 땄는데 운전이랑 거리가 멀었다. 적당히 대중교통 좋은 곳들에 살아서, 배우자가 운전하니까, 내가 운전하는 것은 가성비와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운전과 거리를 둔 것이 화근이었을까... 주차를 드릅게 못한다. 결국 장롱면허라는 비밀 하나를 털어놓는다.
전 동네도 출퇴근하기 무척 좋았다. 동네는 조용했고 집은 신축이었고 학교는 가까웠고 이건 부동산 입지의 장점이고 속-장점으로 제일이었던 건 이웃이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좋다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헤어지기 싫어하면 거리낌없이 돌아가면서 서로의 집에 가서 같이 맛난 거 만들어 먹거나 배달시키거나 하며 같이 있다가 헤어질 수 있는 이웃. 내 이야기를 타인에게 옮기지 않는 묵직하고 단단한 카운셀러 이웃들. 그리고 내 아이의 흠을 단점을 이해해 주고 다독거려 주는 이웃. 이웃사촌의 정을 놓기 아쉬워서 신랑은 출퇴근 왕복 1시간이 걸리는데 내 욕심에 계속 계속 살고 싶었다.
그런 이웃들을 두고 이사를 결정했다. 신랑의 출퇴근과 아이들의 중학교 문제가 제일 큰 화두였다. 다른 동네로 향하는 마음은 무거웠지만 또 이사 가기로 한 곳에 적응해야 했다. 적응...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사 갈 집이 평수가 좁아졌다. 넓은 집으로 넓혀가는 것은 상관없지만 좁은 집으로 가는 일은 가히 대환장 파티였다. 모두 다 같이 가면 집은 포화상태로 터져버린다. 줄자를 들고 거실과 방 그리고 화장실의 가로 세로 높이를 재고 집의 모든 물건들의 크기를 재어서 시뮬레이션해보았다. 어플들도 있지만 종이 한편에 그렸다가 지웠다가 다시 그렸다가 하는 것이 일이었다. 소파도 냉장고도 책상도 모두 다 가지고 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포기하는 것들과 가지고 가야 하는 것들을 냉정하게 구분해야 했고 중고거래 어플을 통해 정리하고 또 새로운 물건을 사야 했다. 물건을 사야 할 때 가장 우선 되어야 할 점은 공간의 활용이었는데 공간의 5-10센티도 소중해서 맞춤장이 꼭 필요했다. 오래 살 예정인데 알루미늄 새시도 바꿔야 했다. 공간 5-10센티에 연연하다 보니 여기 조금 저기 조금은 어느새 큰 공사가 되어버렸다.
인테리어 하게 되었다. 보통 턴키와 공정별 부분 인테리어를 맡기거나 완전 셀프 인테리어 이렇게 진행하는데 나는 이 3가지가 우왕좌왕 섞인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다. 인테리어를 글로 쓰는 건 생각보다 즐겁지는 않아서 내가 셀프 인테리어 한 이야기 위주로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직접 한 것은 철거와 설치였다. 집에서 빠루를 가지고 와서 몰딩이랑 문틀을 정리했다. 빠루가 들어가는 각에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들어내면 무겁던 문틀이 쏙 빠진다. 잘 빠지면 속 시원한데 안될 때는 톱질과 빠루질 망치질 여러 가지를 동원해도 안되어서 몸으로 매달려서 빼내보기도 하고 안되어서 맥 빠지기도 하고 그랬었다. 간간히 중간중간 오셨던 사장님들이 안쓰러워하며 도와주시고 가셨고 아빠가 나머지 폐기물을 시골집으로 다 정리도 해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철거를 내가 했던 이유는 그것이 제일 쉽고 이후의 디테일을 검열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인데, 역시나 하면서 한 번쯤은 이런 경험 괜찮다였다. 보람도 느껴지고 뿌듯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철거가 끝나고 다른 공정이 들어오면서 5-10센티를 살리기 위해 턴키를 봐주시는 사장님이랑 끊임없이 덧샘 뺄셈을 했다. 모든 공간이 한정된 사이즈에서 어떻게 공간을 살릴지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다. 특히 주방은 넣고 빼고 빼고 넣고 할 품목들이 가득했는데. 나의 예산으로는 눈이 높아질 데로 높아져서 마땅한 제품군으로 갈 수가 없었다. 결국 반 이케아 + 반 사제맞춤으로 진행했는데 이때 이케아 제품 조립을 내가 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품이 들었다. 이케아 제품의 사용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서랍이 들어가다 보니 난이도가 한층 높아졌다. 쉬운 설명서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왼쪽이 자주 헷갈렸고 드릴질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보통 사제와 높이를 맞추기 위해 가구 다리 높이가 맞지 않아서 턴키 사장님이 끊임없이 조언 및 관심 쏟아주셔서 겨우겨우 완성을 했다. 공간을 살리겠다고 가스레인지 2 구로 살림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고 싱크대 개수대도 1600 이상이 아니라 800각으로 줄였다. 이너서랍을 넣어서 죽은 공간이 없도록 했고 싱크대 아래에 아파트 보일러 분배기 자리까지 수납이 되도록 하나하나 다 맞춰두었다. 딱 공간에 맞아 들어 구현될 때의 상황들은 글로 표현하기 힘든 희열이 가득했다.
주방을 세팅하고 가전을 넣고 나름 만족해진 듯했는데, 사실 여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여자들의 화장으로 따지자면 기초 파운데이션까지 톤만 맞춰놓았을 뿐 이제 색조를 올려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집도 마찬가지로 이제 이미지를 쌓을 가구를 넣어야 했는데 예산이 부족했다. 소파도 갖고 싶고 괜찮은 의자도 사고 싶고 이것저것 바꾸고 싶은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거기까지 예산을 남겨두질 못했다. 막판 인테리어 추가 비용들로 남은 예산은 100. 고심고심 끝에 레어로우라는 철제 선반을 두기로 했다. 가정집 그것도 좁은 평수에 레어로우가 답답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많은 짐을 늘어놓을 공간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벽이라는 공간에 수납이 되어야 했다. 새 제품을 사기엔 조금 무리여서 평화로운 중고나라에서 구입을 시도 결국 경기도 북부까지 가서 제품을 픽업해 왔다. 철제로 이뤄진 레어로우를 차에 묵직하게 싣고 집에 와서 설치했을 때 그 희열. 아이들의 레고 디스플레이를 하고 나서의 뿌듯함. 먼지가 쌓여도 볼 때마다 좋았던 그 진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인테리어를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내 손길 닿은 모든 것에 대한 기른 정에 대한 애착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사물을 사랑하게 만드는지, 시간이 우리를 얼마나 정들게 하는지 눈으로 귀로 코로 분위기로 늘 느낀다.
내가 그때 구현 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과 최저의 금액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도 뿌듯하다. 실현하고 싶던 수많은 것들이 응축되어 있는 공간이 그립다. 내 시간과 노력과 정성과 열정이 들어간 이 공간이 그립다. 꼼지락꼼지락.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인생은 모르는 일이라지만 언제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니 더 막연해서 그런 걸까? 빠루를 들고 다시 뭔가를 할 수 있을까? 빠루, 드릴, 사포질, 넣었다 뺐다, 여기에 힘을 주고 빼고 수많은 내 생각이 담긴 디스플레이들. 모든 것들이 그립고 그리운 어떤 날이다. 꼼지락꼼지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