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 2
무거운 원목 책장 골짜기. 가운데 손 닿는 곳을 제외하고 오래 묵은 먼지를 몸으로 안고 있는 오래된 책들. 제습기도 공기 청정기도 없던 그래서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 속에 오래된 책과 먼지향이 나던 도서관. 현재를 살아 나가는 동기와 꿈. 이룰 수 없는 꿈의 뒷면 좌절과 도피의 현실. 비현실로 날고 날아 그 끝인 천국과 지옥까지도 닿아있던 공간.
많은 책. 다 읽을 수 없지만 내 손길 닿은 그 책과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읽고 읽고 읽어내던. 그 순간 어느 공간에 머물러도 어느 감정선에 올라타 있어도 다 용납되는. 나는 도서관을 사랑한다.
미니멀 전에는 도서관의 방대함을 사랑했고 후에는 제자리에 차근히 앉아있는 책들을 사랑한다. 책은 분야에 따라 나눠져서 숫자로 번호가 매겨지고 제목에 저자에 ㄱㄴㄷㄹ 순으로 제자리에 앉아있다.
책을 만나는 순간들은 다양하다. 여러 매체에서 소개해주기도 하고 블로그 친구들이 읽은 책을 따라 읽기도 한다. 민음사에서 나온 고전들 앞에서 두께 얇은 책만 골라 읽기도 하고 유명한 작가의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기쁜 순간은 제목과 그 뒤에 표지 색만으로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을 뻗고 닿아 책을 선택해 읽기 시작할 때이다. 언젠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멈출 수 없이 빠져들어갈 때 가득 차 오르는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와 안정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많은 책을 소유했던 것은 아니지만 미니멀라이프로 살며 책도 많이 비워냈다. 지금은 되도록 책을 소유하지 않고 도서관을 간다. 마트를 음식물 보관창고를 둔 듯 한 마음으로 가는 것처럼, 사서를 고용한 리치언니가 된 듯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간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하고 공기청정기와 제습기 그리고 어디든 전기를 쓸 수 있는 콘센트가 있고, 밝은 조도와 오늘자 신문 이번 주 시사인 씨네가 있는 곳. 깨끗한 책상과 단정한 책꽂이들 편히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좌석이 있는 곳. 적당한 시기가 지난 책들은 폐기가 될 테고 이제 오래된 먼지와 종이 냄새는 나지 않는다. 과거는 과거대로 기억할 만하고, 현재는 현재대로 편안함 가득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현재를 살아나가고 이룰 수 없는 꿈을 뒤쫓아 가며 그러다가 비현실 속에서 살기도 한다. 그 수많은 책들을 손으로 훑어본다. 책과 책 사이 얇은 계곡들이 자글자글 손으로 느껴진다. 각기 다른 깊이와 이해와 미학들 속에서 나는 무엇을 골라 나올 것인가.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다는 함민복 시인의 시보다 못한 내 글의 처지에 부끄럽지만, 언젠가 내 글을 뽀얀 종이에 찍힌 활자로 만나고 싶다. 800번대 ㄹ로 자리 잡고 싶다. 브런치에 쓴 글들이 몽글몽글 몽글몽글 끓어올라 틀에 넣고 누름독으로 눌러둔다. 탈고를 거친 하얗고 뽀얀 글들이 책이 된다. 그렇게 언젠가의 내 책을 만나본다. 도서관 한켠에서...
*함민복 긍정적인 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