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강아지가 늙어가고 있다(2)

조금만 천천히 늙어주면 안 되겠니?

by 빛들때

그날. 평소와 다를 거 없이 볼일을 보고 슬슬 산책 타임을 향해 가던 그때. 이상하게 단지의 앞선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제 집에서 꼼짝 않고 있는 단지. 녀석에게 가만히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속삭인다. '단지야, 산책 가자' 그러나 이 녀석, 꼼짝도 안 한다. '단지야, 산책 안 갈 거야?' 거듭 물어봐도 눈만 껌벅이고 귀만 씰룩거리며 내 목소리를 좇을 뿐이다. '그럼 누나 출근한다?' 이러고 가는 시늉을 해봐도 쫓아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그날 아침에, 난 본의 아니게 20~30분 더 이른 출근을 하게 됐다. 나보다 늦게 출근을 하는 남편에게서도 그냥 얌전히 제집서 있더란 말을 들었다. 그리고 종일 좀 묘했다. '뭐지?' 이상하고 '어디가 안 좋은가?' 걱정되는 마음에 하루가 좀 길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랴부랴 퇴근을 했을 때 단지는 다행히도 다시 쌩쌩해져 있었다. 그리고 저녁 산책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신나게 내달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살짝 다리를 불편해했다. 신나게 가다가도 오른쪽 뒷다리가 뭐가 불편한지 가끔 깽깽이 발을 걸었고 잠깐씩 서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녀석, 그 전날 주말이라고 좀 멀리 나섰던 산책길에 무리가 왔던 모양이다. 이전 같았다면 그 정도 근육통이야 산책 앞에 대수냐며 훌훌 털어내고 일어났던 단지가 그날 아침은 영 안 되었던 거다. 여기서 산책까지 다녀오면 다리가 더 아플 게 뻔하니 본능적으로 잠과 휴식을 선택한 거다. 그렇게 좋아하는 산책도 아픈 다리 앞에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게 된 거다. 그렇게 상황이 보이니 이해가 갔고, 그러면서 마음이 좀 짠해졌다. 그래, 우리 단지도 이제 팔팔한 청춘이 아니지. 이제 단지도 슬개골 탈구에 근육통이 생길 나이가 됐지. 그래, 이 녀석도 제법 늙.었.지...



그 뒤로 지금까지도 단지는 여전히 아침 산책을 좋아한다. 매번 반복되는 루틴이지만 정말 매번 새로운 날인 양 너무 좋아한다. 다만, 그날 이후로 아주 가끔이지만, 제 몸이 좋지 않을 땐 그날처럼 나가길 거부한다. 그리고 제집서 얌전히 있거나 조금 더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은 소파 밑 깊숙한 곳에 숨어 들어가 우리의 손길 자체로부터 거리를 둔다. 그 좋아하는 간식의 유혹에도 나오질 않는다. 그렇게 충분한 시간을 홀로 가진 뒤 조금 컨디션이 회복되면 다시 우리에게 온다. 산책을 나선다. 그런 날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이제 우리도 제법 이 녀석의 상태에 맞게 아침 산책을 조절해주기 시작했다. 전날 평소보다 더 오래 걸은 날이면 아주 짧게 5분 산책으로 배변만 해결하게 한다. 아예 컨디션이 별로다 싶은 날엔 아침 산책도 패스 한다. 그렇게 몇 년 전까진 365일의 루틴이었던 아침 산책이, 해가 쌓이며 362일이 되고 360일이 되더니 이젠 대체로 350일 후반대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 같다. 그렇게 아침 산책의 날도 조금씩 줄어드는 거다. 단지가 그렇게 조금씩 늙어가고 있는 것처럼.



사실 늙어감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제 컨디션을 조절해내는 녀석보다 오히려 내가 더 문제다. '아이고 단지야~' 더 애달파하고 '아니야, 아직 멀었어~' 애써 거부하고 싶어 하는 내가 말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아침 산책을 하면서, 여기저기 킁킁대며 즐거운 탐색에 여념이 없는 녀석의 신난 궁둥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다짐한다. 내 강아지도 늙어가고 있어, 받아들여야 해. 근데 솔직히 그런 차분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난 꽤나 변덕스럽다. 금방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한다. "단지! 천천히 늙으라고, 넌 할 수 있잖아!" 더 나아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 "이제 말할 때도 됐잖아? 아프면 말을 하고, 이래라저래라 요구하라고!" 아직은 누리고 싶은 거다. 단지와의 아침 산책을 매일매일. 그러니 단지야, 겁 많은 누나. 늙음 앞에 꽤나 유난스러운 불쌍한 인간을 위해 조금만 천천히 늙어주면 안 되겠니?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늙어가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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