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45살이 되었다. 어쩐지 중년의 표상이라고 느껴지는 숫자 45. 45살이 되니 삶이 이렇게 달라졌노라 말할 수 있는 건 사실 별로 없다. 거창하게 인생사에 대한 통찰력이 더 생겼고 타인에 대한 관대함이 더 생겼노라고, 혹은 재산이 이만큼이나 늘었고 사회적 위치나 전문성이 이렇게나 달라졌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없다. 그냥 몸뚱아리가 좀더 비루해졌다뿐, 여전히 삶은 어렵고 나는 고만고만하다.
그럼에도 하나 달라졌다고 분명히 느끼는 건 -시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매사에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예전엔 1박2일 여행의 이튿날도 일정으로 꽉 채웠다면, 이젠 귀가 후 충분한 휴식시간이 확보되는 방향으로 느슨하게 둔다. 주말에 운전을 많이 했다면, 돌아오는 주 초반엔 상담 일정을 너무 많이 잡지 않는다. 어쩐지 탈이 날 것 같다 싶으면 만사 제치고 일찍 퇴근해 일단 잘 챙겨먹고 몸을 따뜻하게 한 뒤 자버린다. 맞다. 무리하지 않는단 건 한마디로 몸을 사린다는 것.
마음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까 마음도 사린다고 해야할까? 거동 불편한 부모님이 오랜만에 나들이를 가고 싶으시다며 운전을 부탁해와도 컨디션을 살펴 별로다 싶음 한 주 슬쩍 미룬다. 먼 타지에서 온 친구라도 잘 따져가며 볼 날을 맞춰보지, 내 사정 다 제쳐두고 당장 버선발로 뛰어나가진 않는다. 직장 동료의 부탁에 어쩐지 주저되는 마음이 앞선다면 잠깐 그 마음을 살피다가, 여전히 안 되겠다 싶음 정중히 사과하며 거절한다.
그렇게 살짝 비겁하다면 비겁해진다. 아니 좋게 말해 아낀다. 정말 필요할 때 크게 마음쓰기 위해, 잠시의 비겁함을 웃옷 삼아 두르는 거다. 그래야 부모님의 운전기사 노릇을 기꺼이 할 수 있다. 친구를 데리고 갈 맛집을 알아보고 작은 선물도 하나 준비할 수 있다. 동료가 난처해할 때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줄 수 있다. 그렇게 몸사리며 아껴둔 마음으로 말이다. 그러고보니 '사리다'라는 말이 '어떠한 일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고 살살 피하며 아끼다'의 뜻을 갖고 있다 하니, 영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그러고 보면 이건 우리 강아지 단지에게서 좀 배울 만도 하다. 요즘 부쩍 이 녀석의 움직임이 이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거실 쇼파 오른쪽은 이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자리. 떡하니 자리하고 앉아 나나 남편의 이동 동선에 따라 쫓아다니거나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시선이라도 움직이던 녀석은, 근래 어느새부턴가 이제 슬슬 '눈알'만 굴린다. 진짜 딱 '눈알'만 또르르. 그만큼 이 녀석도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거다. 굳이 때마다 몸을 발딱발딱 일으키지도 않고, 목근육을 좌우로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그냥 '눈알'만 쓰윽~ 그러면서도 너희들의 움직임을 내가 다 볼 수 있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는 듯. 이렇게나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강아지라니.
하물며 강아지도 이럴진대 -사실 난, 나보다 강아지가 더 낫다고 생각되는 게 많은 하찮은 인간이긴 하다- 45세 나이쯤 되면 어떻게 지내야 좋을까 고민되고 남들은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이렇게 일단 '무리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시라 말하고 싶다. 여기엔 계획도, 실행도 모두 포함이다. 일이나 가정, 공적인 일나 사적인 일 모두 포함이다. 하다 못해 먹고 노는 것까지 모두. 이쯤되면 '그래도 그렇지, 의리가 있는데', 라거나 '너무 이기적이지 않나?' 이렇게 느껴지실 수 있다. '사람들이 서운해하지 않을까? 사실 내가 좀만 무리하면 되는 것을' 이렇게 생각되실 수도 있다. 그럴 땐 잠시 생각해보자, 이제껏 내가 무리하는 바람에 다쳤거나 다치게 했던 일들을, 사람을, 몸을, 마음을. 무리하여 몸을 혹사시키곤 아파서 며칠을 더 힘들었던 적 없는가. 무리하여 내가 더 손해보는 결정을 해놓고는 정작 내가 힘들어지니 괜히 누구 탓을 했던 적은 없는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무리하지 않는단 것은, 내 몸과 마음의 사이즈를 정확하게 알고 그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단 것과 같다. 센 사람이 아닌데 센 척 한다거나 큰 사람이 아닌데 큰 척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약하면 약한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나의 사이즈를 제대로 알고 인정해주며 그 정도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예쁘게 하는 것과 같다. '무리하다'라는 말이 '도리나 이치에 어긋나 있거나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의 뜻을 갖고 있다 하니, 이 역시 영 틀린 말은 아니잖은가? 다행인 건, 그걸 같이 나이 들어가는 혹은 먼저 나이 들어가는 이들은 이해한다는 것. 서로가 몸 사리는 서로를 서운하거나 비겁하게 여기지 않는 거다. 무리하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어느 쪽에서건 아픔이 생기는 걸 알고 공감하기에. 그러니 서로 인사처럼 자연스러운 말이 진심에서 우러나온다. "너무 무리하진 말고~"
그러니 우리. 오늘도 너무 무리하지 말자. 몸사리고 맘사리자. 그렇게 아껴뒀다 필요할 때 세게, 크게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