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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23. 2018

시외버스

그 아침의 망자들


그날 나와 아버지는 택시를 잡지 못해 결국 이른 아침 목적지로 가는 시외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삼십 분쯤 뒤 다음 차편으로 가던 중 갑자기 차가 중간에 멈춰 섰고 기사는 긴장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급히 달려 나갔다. 창밖은 안개가 자욱했고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수확을 끝낸 논 풍경이 보였다. 잠시 후 몇몇 승객이 내려갔고 또 조금 후에 아버지도 내려 안갯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돌아온 아버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약간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타려던 그 버스가 안갯속에서 전복되어 논으로 처박혔고 여러 사람이 다치고 게 중 몇은 창틈으로 밀려 들어온 흙더미에 묻혀 결국 죽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수의사 자격을 가진 이유로 불려 나가 죽은 이들의 사망 확인을 해주고 돌아온 것이었다. 어떻게 사망 여부를 확인하느냐고 내가 묻자 아버지는 사람이 죽으면 동공이 풀려 넓어지는데 빛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했다. 눈에 손전등을 비춰 동공이 축소되지 않고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사망이라는 것이었다. 나와 아버지가 택시를 잡았고 그 버스에 예정대로 탔더라면 배를 드러내고 뒤집어져 누운 그 버스 안에서 어쩌면 동공이 풀려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대략 사십여 년 전 그렇게 죽음과 비껴간 뒤 아버지는 여든넷에 암으로 소천하셨다. 의사가 동일한 방법으로 아버지의 사망 여부를 확인해 주었을 때, 오래전 그 아침에 보았던 아버지의 어두운 표정이 기억났다. 그 아침의 망자들은 그날 아침 무슨 일로 그 버스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는지 이따금 궁금해진다. 물론 그 이유를 안다 해도 달라질 건 없을 텐데 왜 궁금해지는지 설명할 길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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