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적어도 지금은, 혼자라서 다행이다

여름 오후의 꼬치와 맥주

by Jay

테이블을 차지하고 바라보는 창밖 풍경은 술꾼 최고의 호사다. 거기에 딱 맞게 익혀 나온 꼬치와 맥주가 더해지면 더할나위 없다


오후 6시 30분. 술집에 앉아 창밖을 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해지기 전에 마시는 술의 죄스러움은 젖혀두고, 혼자라니.

취기가 수다를 부르고 쟁여둔 이야기들이 속절없이 쏟아져야 술맛도 돋는 법이다. 도통 혼자 앉은 술집은 어색하다. 꼬치와 맥주를 주문한다. 가게를 혼자 꾸리는 사장님의 정성어린 루틴을 재촉할 수는 없는 일.

안주가 아직이지만 술꾼에겐 문제가 아니다. 천천히 술집의 분위기를 살피며 한 잔, 창밖 풍경과 시나브로

풍기는 꼬지구이 냄새를 슬쩍 들이켜며 또 한 잔 마신다.

어떻게 살 것인가, 따위의 높고 쓸쓸한 담론을 다투던 인연들은 모두 자신의 가정을 꾸렸다. 곁사람 몇 둘

아량도 없이 나이드는 일은 부끄럽고 괴롭다.


전화번호부 속 이름을 위아래로 훑다 내려놓고 이윽고 나온 꼬치 하나를 집어든다. 혼자 들어서는 술집의 문턱은 태산보다 높은 법. 이왕 허들을 넘어 한 자리 차지했다면 최대한 느리고 제대로 즐기는 게 예의다.

타래소스를 흠뻑 머금고 가장자리가 살짝 그을렀을 때 건져올린 닭꼬치는 어스름 마지막 햇살에 껍질을 반짝이며 식욕을 돋운다.

그러고 보면 꼬치를 굽는 일은 낚시와도 같다. 손끝으로 섬세하게 벼루며 때를 기다리다 늦기 전에

채어 올려야 손맛도 입맛도 즐길 수 있는.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며 산란하는 기름기의 옅은 반짝임과 실한 무게감에 신경을 집중한다. 추가한 맥주가

좋은 타이밍에 테이블 위에 놓인다. 덥썩 배어물자 입술 끝으로 따뜻한 고기의 온도와 바삭한 식감이

전해진다. 은근히 품평을 기다리는 주인에게 '좋네요' 눈웃음을 보낸 뒤, 한 모금 더해 씹으며

조급한 속을 달랜다. 그리고 천천히 넘기는 맥주의 맛은 앞서 풀어놓은 모든 근심과 수치를 씻어주는

일상쾌락이다. 바싹 마른 식도와 하염 없이 늘어진 정신도 한순간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래서 네 번째 잔은

음용보다는 증발에 가깝게 삭제된다. 싸한 맛으로 공복을 몰아세우는 날카로움 대신 안주와 안주 사이에서 충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는 묵묵함이 든든하고 고맙다.


이제부터는 이 루틴의 반복이다. 몇 차례 안주가 생략되며 취기가 앞서다가, 다시 심기일전

꼬치가 더해지며 술자리는 사치와 실속 사이에서 절묘한 밸런스를 찾는다.

미각과 위장의 감각에만 집중하는 지금이야말로 묵은 상처를 핥는 온전한 동물의 시간이자 그래 다시, 라며 들숨을 채우는 리필의 시간이다. 그래서 또 마지막으로 한 잔.

곧이어 단골들이 하나둘 들어설 때 접시도 술잔도 제때 빈다. 계산을 마치고 일어설 때다.

높았던 문턱 허들은 어느새 완만한 내리막처럼 온순하게 허리를 굽히며 술꾼을 배웅해 준다. 아직 창창한 여름 오후의 하늘을 피해 잰걸음으로 돌아가는 길. 아, 여름이라서 다행이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혼자라서 다행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겨울 시즈오카, 이즈 여행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