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하던 날
결혼 초기부터 우리 집은 김장 김치를 처갓집에서 받아서 먹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면서 김치만 얻어먹는 것도 죄스러웠고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가 소비하는 김치의 양도 늘어났다. 그래서 작년부터 와이프랑 김장김치를 담가서 먹기로 했다. 작년에는 작은 처형이 우리 집까지 오셔서 도와주셨고 올해는 와이프랑 둘이서 처음으로 김장김치를 담갔다.
올해 이상기후로 비가 엄청나게 오면서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거 비하면 배추 가격은 그나마 평년 수준인 듯하다. 하지만 고추가루 가격이 정말 비쌌다. 고추가루도 매번 장모님께서 보내주신 것만 먹다보니 살일이 없어서 원래 가격은 잘 모르겠지만 김장 비용 중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절임배추, 고추가루, 각종 젖갈류, 각종 야채 등 생각보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요즘은 절임 배추가 정말 잘 나온다. 김장을 하면 제일 손이 많이 가는 게 배추 손질해서 절이는 것인데 이과정이 생략되니 상당한 수고를 덜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절임배추도 김장날에 맞춰서 택배를 받으려면 10월에 주문이 들어가야한다. 이 김장을 하기 위해서 10월 부터 준비를 한 셈이다.
나는 아침에 애들 등교 준비하고 와이프는 집 앞으로 딱 배달 온 절임배추를 바로 널어서 물 빼기 시작했다. 애들 학교에 데려다주고 와이프랑 배추 물 빠지는 동안에 스타벅스가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와서 본격적으로 준비 시작했다.
우선 야채들을 준비했다. 무는 채 썰고 갓과 각종 야채들을 씻어서 준비해 놓고 보니 어느새 점심때이다. 하교한 아들 데리고 순두부집에 가서 밥 먹고 다시 노동 시작
이제 양념을 준비한다. 고춧가루와 청각, 각종 젓갈류 등을 넣고 양념을 만드는데 올해는 생새우를 넣으면 맛있다고 해서 우리도 넣어 봤다. 그리고 야채와 양념을 합체해서 김치 속이 완성되었다. 물 빼놓은 배추를 들고 와서 버무리기 시작
집에 온 아이들도 비닐장갑 끼고 함께 먹을 김치 버무리기에 동참했다. 네 명이서 하니 금방이었다. 어느새 김치 냉장고가 김장 김치로 가득 찼고 굴을 넣은 김치는 먼저 먹기 위해서 따로 빼놓았다. 우리가 김장이 힘들지만 즐겁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수육이지. 김장이 마무리되어 갈 때, 수육을 삶기 시작했다.
된장 풀고 각종 야채와 마늘, 생강 등 잡내 잡아줄 특공대 들을 함께 삶아 주면 탱글탱글한 수육을 만날 수 있다. 잘 삶은 수육과 쭉쭉 손으로 찢은 김장 김치면 게임 끝난다.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김치를 담궈서 먹을까? 솔직히 우리 세대에도 직접 김장 김치를 담궈 먹는 집은 잘 없을 것이다. 김장하면 어떤 이미지가 연상이 되나? 번거로움? 귀찮음? 수고스러움? 김장 스트레스? 이런 이미지가 아닐까?
사회의 변화를 거스를수는 없겠지만 세월이 흘러감에도 우리 아이들의 추억속에서 김장김치는 맛있는 엄마표 김치와 수육의 맛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