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우면서 홀가분한
< 브런치북 시리즈로 발행하고자, 이미 발행한 글을 다시 옮겼습니다.>
11.12. 일
저녁을 먹고 가겠다던 아들은 약속이 생겼다며 일정을 바꿔 점심을 먹고 돌아갔다.
12시 버스를 타기 위해 점심을 일찍 준비해서 먹이고 터미널에 태워다 주고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를 마쳤다. 아들이 자고나간 침대를 정리하고 빨래감을 세탁기에 넣어 작동시켰다.
아들이 다녀간 나흘동안 나는 분주했고 편안했고 안정감을 느꼈다.
지난 목요일 대전으로 행사가 있어 내려온 아들은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왔다.
그리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집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그러겠다고 선언을 했던.. 날이 좋고 내 몸 컨디션이 좋았다면 토요일에 어디라도 끌고 나가려 했을 텐데 나 역시 집에 늘어져있고 싶은 하루였다.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점심까지 내리 끼니를 챙기는 일은, 평소 집에서 거의 식사를 하지 않는 내게 약간의 부담감과 분주함을 안겨준다.
메뉴 선정부터 장보기, 요리하고 정리하기까지 일련의 ‘식’을 위한 가사노동이 내 자식을 먹이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잠자고 있던 본성이 깨어나듯 착착 진행이 된다.
즐겁고 기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하게 요리를 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매일 밖에서 사먹거나 배달음식, 밀키트 제품으로 식사를 하는 아이에게 내 집에서 만큼은 내손으로 직접 밥을 해서 먹이고 싶은 마음이 깊이 우러나오는 때문이다.
잘 먹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 또한 흐뭇한 일이다.
이른 나이에 집을 떠나 반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아이인지라 늘 마음으로 품고 있다가 이렇게 눈앞에 마주하고 있으면 반갑고 마음이 놓인다. 올 상반기에 많이 다치고 아파 고생했던 지라 무탈히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아이를 마주하는 내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질것이다. 아마 아들도 다 느낄것이다. 다큰 아들 녀석 볼 한번 만지고 싶다고 양손으로 부여잡고 토닥거려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내어주는 아들. 등, 엉덩이 툭툭 쳐도 무심한듯 그런가보다 한다. 만나면 반가워서, 자기전에 잘자라고, 헤어지기전에 잘가라고 꼬옥 안아주면 저도 같이 안아준다.
그래서 참 고맙다. 저도 집 떠나 외로울때도 있을테고, 이렇게 한번씩 집에 와서 보내는 시간이 편하고 좋을 테니..
너도 엄마의 그런 스킨쉽이 좋은거지~ 라고 혼자 생각한다.
마음에 다 차지 않고, 잔소리 하고 싶은 부분도 많다.
하지만 안다.
내 눈에 보이지 않은 그 어느 시간에도 아이는 자기의 할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으며, 자기의 삶을 살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 시간을 생각하면서 지금 당장 못마땅한 습관에 잔소리하고 싶은 마음은 꾸욱 눌러 놓는다. 스스로 깨닫고 아는 시간이 올것이라고, 분명 알면서도 지금 못하는거라고, 나 역시도 그러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걸 하고, 많은 경험들을 하고 부딪혀 보길 바란다. 스스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우고, 실패를 교훈삼고 더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는 그런 삶을 배우고 있는 아이에게 나는 따뜻하고 든든한 후원자로 있어줄 것이다.
그리고 더 씩씩하고 유쾌하게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