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들이 내 방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을 때도 종종 쓰레기 같아 보이기는 했는데 이렇게 밖에 내다 놓으니 정말 쓰레기였나 싶었다. 내 물건을 동의 없이 함부로 마당에 내다 놓은, 아니 내다 버린 엄마는 그저 입으로만 잘못했다고 말할 뿐이었다.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다. 미안하긴 한데 너는 방을 치웠어야 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엄마 잘못은 없다. 갈등이 생길 때는 항상 이런 식이다.
엄마와의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다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그저 드러눕고 싶었다. 화낼 힘도 없었다. 일하고 돌아와 녹초가 된 몸에서 비틀어 짜낸 힘은 그리 오래가는 것이 아니었다. 다음날도 일을 나가야 해서 집에 있는 시간 동안은 온전히 쉬고만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질러진 방 모습은 어찌 보면 내 마음을 닮아 있었다. 정해진 자리에 우뚝 서 있지 않고 힘없이 널브러진 모습. 그래서였을까. 어쩌다 가끔 방을 치워도 다시 어질러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방에다 그대로 그려냈는지 모른다. 그 그려낸 모습은 남들 보기에 특히 엄마 보기에 보기 싫은 그림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눈으로 확인하며 묘한 안정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잠을 줄이고 공부 시간을 늘려도 학교도 회사도 원하는 곳에 합격할 수 없었다. 대학 재학 시절 평균 수면시간은 두 시간이었는데도 말이다. 집에서도 아무리 착하고 좋은 딸이 되려고 해도 그건 내 바람이지 언제나 현실이 아니었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구겨지고 집에서도 구겨진 나는 힘이 없었다. 구겨질 대로 구겨져서 여간해서는 펴지지 않았다.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엄마가 내 몸에 잠깐 들어와 보면 알 텐데. 방을 치우려고 해도 치울 힘 같은 건 없다는 것을. 힘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다는 것을. 고깃집에서 일하는 것도 몸은 고되어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싫은 소리 안 하는 곳이라 감정이 상하지 않는 곳이라 다니는 것인데.
열정적이고 매사에 의욕적이지 않으면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고 벌을 받아 마땅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내 방에 있는 물건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다 버리는 벌 같은 거 말이다.
때로는 희망이나 열정 같은 거 가지지 않는 순간도 있을 수 있는 건데. 그게 죄는 아닌 건데. 그냥 숨만 쉬는 것만으로 벅찬 시간도 있는 건데. 어찌 보면 희망차고 열정적인 모습의 나를 나조차도 기다리고 있는데. 희망도 불행도 아닌 중간지점에 축 처져 있는 지금 내 모습은 엄마조차도 이해해줄 수가 없었나 보다.
사회에서 돈을 벌려면, 사람들과 어떤 형태로든 엮여 있으면 때로는 모욕을 감내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렇게 감정이 바닥까지 침잠할 때가 있었다. 엄마는 그저 물건을 마당에 내버렸을 뿐인데 왜 내 존재 자체가 버려진 거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왜 내가 쓰레기같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엄마라는 사실이 싫다.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엄마 한 테만큼은 수치심 같은 거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엄마는 나를 생각해서 그랬다지만, 정작 나는 왜 고통스러울까. 정말 내 생각을 해주는 거라면 그냥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 버린 마당에 남겨져 내던져진 물건들을 힘없이 주워 담는다. 아르바이트하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치우는 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다 치울 수나 있으려나 싶다. 일하러 가기 전까지 다 치워야 하는데. 그렇게 엄마가 내다 버린 나의 일부들을 마당에서 조금씩 지워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