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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 Oct 25. 2022

월급 빼고 다 비싸

월급에 의존해서는 독립이 아득히 멀기만 하다

  엄마와 아빠가 싸운다. 하루 이틀 된 일도 아닌데 글을 쓴답시고 귀가 평소보다 예민해져서 오늘따라 유독 거슬렸다. 워낙 청각이 민감한지라 손이 닿는 거리에 소음을 차단할 수 있는 이어 플러그가 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시끄러운 순간 소음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고마운 물건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둘 다 평소보다 언성이 높아져 있다. 공모전에 응모 준비하느라 글 쓰고 있는 중이었는데 도움이 전혀 안 되고 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거 같다. 도움은 못 되어도 방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꾹 참아본다. 그래도 오늘은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어 플러그를 빼고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예전에는 해보지 않았던 시도를 해본다. 집 근처 고시원 시세를 알아보았다. 눕거나 엎드려서 글을 쓰고 잠도 잘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이만한 데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일하는 필라테스 센터는 걸으나 버스를 타나 30분이지만 이 시간을 아끼면 왕복 한 시간이다.      


  소음도 소음이지만 집에서는 내 일거수일투족이 잔소리 거리다. 문도 살살 닫아야 하고 늦은 밤에 물을 틀어서도 안 된다. 엄마랑 아빠가 만들고 있는 소음을 생각하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자유에 대한 대가치고 이 돈을 내는 것이 나쁘지 않은 거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값이 시세보다 저렴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같이 없었다. 둘 다 같이 있어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같이 있는 곳을 찾아봤다.


  그렇게 고시원 투어를 준비했고 가기 전 이번 달 카드 사용 누적 결제 대금을 봤다. 고시원비를 결제하면 백만 원이 훅 넘어갈 거 같았다. 오십만 원 정도 쓴 줄 알았는데 항상 내가 쓴 돈은 예상을 뛰어넘곤 한다. 놀랍게도 언제나 버는 만큼 쓰고 있었다. 월급은 그렇게 번번이 통장에 스며들 새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고시원비를 내면 생활이 살짝 빠듯할 것 같았다. 며칠 생각해보기로 한다. 조금 힘이 빠진다.      


  그러다 문득 도대체 어디다 돈을 쓰는 것인가 싶었다. 하나하나 따져보았다. 일단 먹는 입을 무시할 수 없었다. 가난할수록 생활비에서 식비 비중이 높다는 엥겔지수는 정확히 내 소비 수준에 해당이 되는 것이었다. 점심만 해도 맛있지도 배부르지도 않은 그저 한 끼를 때울 뿐인 음식을 만 원 정도 내고 사 먹어야 할 때가 많다.      


  식자재값도 오르고 식당 음식값도 많이 올랐다. 가격이 올랐음에도 식당에서는 메뉴에 들어가는 재료를 상당히 아낀다. 돈은 더 주는데 음식이 예전만 못하다. 가끔은 돈을 주고 구황식품을 사 먹는 기분도 든다. 식대, 차비, 통신비, 보험료와 더불어 기본적인 생필품들만 해도 꽤 됐다. 하나하나 따져 계산해보니 카드값이 틀리지 않았다. 카드사의 전산상의 오류를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은행 전산은 생각보다 허술하지 않았다.     


  사치하지 않았다. 생존과 더불어 약간의 군것질과 자잘한 것을 조금 샀을 뿐이다. 그런데도 돈을 꽤 썼다. 꼭 써야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상당했다. 여기서 독립하고 더 나아가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까지 있다면… 상위 소득 구간에 있는 사람 빼고는 대부분 생활이 그렇게 여유롭지 않을 것 같았다.     


  서민들 먹고사는 것이 어느 때라고 여유로운 적이 있겠냐마는 월급 빼고 전부 비싸니 의식주 중에 ‘의’와 ‘식’을 줄일 수는 없는 일이고 ‘주’에서 구멍이 난다. 그것도 아주 큰 구멍 말이다. 기본적인 생활 기반인데. 청년들이 힘이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노력이 부족하다고 탓할 일만은 아니다.      


  월급에 의존해서는 독립이 묘연해 보인다. 대부분 당연한 듯이 대학을 가고 취업해서 열심히 살아간다. 그런데도 동네 뒷산에서 보자면 손톱보다도 작아 보이는 아파트 한 칸을 얻기가 힘들다. 저 시멘트 덩어리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저 시멘트 여러모로 거품이 많이 들어간 것이 분명하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대로 살면 저 시멘트 덩어리라도 하나 얻을 수 있나 하면 그것도 모를 일이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확실한 답을 주는 곳은 없고 불확실한 미래를 불안이란 걸 잔뜩 안고 걸어갈 따름이다. 한참을 동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간다. 아직도 시끄럽다. 귀를 틀어막은 채 잠을 청해 본다.


 이미지 출처_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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