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숨기고 덮고 보호한다. 작은 불빛은 어둠을 뚫고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따라오라고 하면서 불빛을 없애버린다. 찾으라고 찾아보라고. 어둠보다 환하게 빛나는 밝음이 더 무섭다면서.
비상구 불빛이 어둠 속에서 찬란히 웃게 하는 것은 가로등도 작은 별빛도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불빛을 둘러싼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빛을 꼼짝없이 응시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주변이 말간 물처럼 젖어 버린다. 없어도 되는 굳이 있을 필요가 없는 잔가지에 불과하다.
살아가다 보면 아니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숨 막히게 다가오는 절망의 순간들. 뿌리칠 수 없는 거부할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입을 굳게 다물게 만든다. 생의 끝으로 몰아붙이듯 한꺼번에 밀물처럼 들어온다. 크게 한번 한숨 쉴 겨를도 없이 겹겹이 쌓이는 좌절. 좌절은 어디 한번 견뎌봐 하며 조롱하는 것만 같다. 인생 관문의 테스트처럼.
별빛이 유난히 반짝이는 날. 누군가 다시금 태어날 것 같은 날. 지치고 방치된 몸과 마음을 돌아본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나를 누가 사랑한단 말인가. 난 나의 소중한 생각과 가끔 모순되는 판단 앞에서도 당당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 아닌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오늘도 나에게 위로하고 다독이고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빛을 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