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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May 26. 2023

사람과 나무의 숨

나무는 말한다

텔레비전 속 어린아이들이 신이 났다. 나무 주위에서 신나게 논다. 나무는 보살펴 주고 지켜봐 주는 엄마 같다. 큰 나무를 만지고,  안아보고, 나무 그네를 탄다. 그늘을 선뜻 내어주는 나무는 아이들과 한 무리다. 기존의 평범한 놀이터의 질서를 깨는 듯한 나무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풀어진다. 생활 주변에 늘 있었지만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숲을 이용한, 지금의 나이 든 어른들이 어린 시절 신나게 뛰어놀던 자연과 함께 하던 바로 그런 놀이터다. 나무와 아이들이 함께 성장하는 . 한자 쉴 휴(休)가 보여 주듯이 나무와 사람은 한 몸이다. 사람이 나무이고 나무가 사람이다. 사람과 나무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쉰다. 쉼은 시작이고 희망이다.




얼마 전부터 시선을 끄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날도 나무를 보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남자가 그 나무를 바라보며

'건설업자들은 절대 300년이 넘은 나무는 함부로 자르거나 죽이지 않는다'라고 그러던데. 하면서 무심히 지나간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이 나무는 풍성한 잎을 사방에 팔랑거리며 자랑했는데 이젠 그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공사장 한 귀퉁이에 뭉툭뭉툭 가지 잘린 고목이 보란 듯이 버티고 서 있다. 포클레인은 자꾸만 나무 주변을 파 헤친다. 나무만 빼고 다 파 버리겠다는 투지로 보인다. 나이를 가늠케 하는 굵은 가지들이 팔다리 잘려 나가듯 다 잘려 나갔다. 굵은 밧줄은 또 어떤 이유로 가지 잘린 나무를 거쳐 아래로 향해 있는지 모르겠다. 나무는 둘 중 하나로 운명이 결정될 것 같다. 죽거나 옮겨져서 다른 장소에서 다시 사는 것.


나무의 한쪽 방향의 흙을 다 파 내어 비탈졌다.  아무것도 모른척  꼿꼿하게 서서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나무가 애처로워 보인다. 위태로운 나무는 비를 원망한다. 비가 공사장 땅바닥에 스며들어 바닥을 더욱 느슨하게 만들면 낮은 흙 언덕이 먼저 무너지고, 뒤이어 뼈 마디 굵은 나무가 힘 없이 쓰러질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뾰족한 이를 드러내듯 포클레인은 계속해서 검게 누워있는 돌들을 깨워 잘게 잘게 부순다. 비는 안중에도 없다. 나무의 턱 밑에서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나무는 피할 길이 없다. 점점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나무의 잘린 가지 주변에 돋아난 새싹은 단비를 마셔서 좋아라 하고, 나무의 뿌리는 다리를 쉽게 뻗지 못하고 두려워한다. 어쩌면 나무는 헤집고 들어오는 포클레인의 크고 무거운 포크 보다도 단단하게 자리를 지킬지도 모른다. 나무가 버티고 서 있는 바닥의 면적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속 살이 드러난 황토와 함께 큰 비나 바람에 의해 순식간에 쓰러질 수도 있다. 나무의 잎이 희망을 품고 있어서일까 나무를 더 슬프게 바라보게 만든다. 죽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보이듯 잎은 날이 갈수록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그 모습이 왠지 모순처럼 느껴진다.


새들이 나무의 새 잎 주변으로 모여들어 맑고 고운 목소리로 노래해도 나무는 듣지 못한다. 예민해진 나무에게 자극은 크고 작음이 없고, 어떤 좋은 것이 다가와도 불안한 마음은 그것을 품지 못한다. 여유가 없다. 죽을 만큼 힘든 나무 앞에 그 어떤 것이 찾아와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무는 알고 있다. 자기를 해하려 하는 것만 보이고 들린다는 것을. 가끔 내리는 비가 몇 달 후 장마를 옆에 끼고 나타나서 매일매일 찾아온다면 나무는 어떨까. 나무에게는 숨 막히는 일이 될 것이다. 나무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참고 견뎌야 할지. 나무를 본다. 나무는 죽어야 될까 살아야 될까. 새싹의 잎이 무성해져 숲을 이루면 그땐 자르지 못하고 살려 두고 싶은 마음이 들까. 참고 견디며 살았음이 기특해서.


공사장 포클레인 인부들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무를 자세히 본 적 있을까. 눈치를 챘을까. 맡은 일에 바빠서 보지 못했을까. 관심조차 없을 수도 있다. 공사장에 존재하는 고목은 골칫거리로만 여겨질 수 있을 테니까. 위태로운 나무에게 자꾸만 눈길이 간다. 사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을 주민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온 나무. 마을 주민들이 이주를 하기 전까지는 마을을 지키는 듬직한 나무였지만, 주민들이 점점 떠나 버린 마을에서 이제 나무의 역할은 없다. 쓸모없는 나무로 남았다. 온 힘을 다해 아직 살아 있다고, 존재함을 내비치는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모습. 이른 아침에는 적막함과 고요함 속에 있어서 슬퍼 보이고, 해 질 녘에는 다시 고요함 속에 들어갈까 봐 슬퍼 보인다.


사람들이 새 삶의 터전으로 미소와 함께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무는 무심히 고개를 떨군다. 다시 힘겹게 고개를 든다. 맞은편 낮은 언덕 숲을 바라보며 새 잎들은 바람의 손짓에 맞장구치듯 흔들린다.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위태로운 마음이 커지면 어쩌려고 저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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