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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Feb 21. 2020

조지아에 가게 된 이유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 -1.

내가 지구 상의 하고 많은 목적지 중 그리 알려지지도 않은 조지아로 가게 된 과정을 연애 소설식으로 풀어쓰자면, 존재 자체는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지인에게 조금씩 마음이 쓰이다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반해버려 다짜고짜 결혼하자는 말부터 튀어나온, 뭐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조지아라는 나라에 대해선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루지야가 국명을 바꿨다는 것, 러시아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것, 와인의 특산지라는 것, 아직 본격적으로 관광화가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좋은 곳이라는 것.... 나는 '언젠가 갈 곳'으로 분류해놓긴 했지만, 낯가림과 막연한 피로 때문에 구체적으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실은 지금 그 결정적인 사진이 어느 것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그 인상만이 깊게 남아있을 뿐. 출처: unsplash

그러다 언제,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작고 견고한 중세식 교회 뒤편에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처럼, 혹은 벽처럼 서 있는 회색 산맥. (물론 그 유명한 게르니티 교회와 카즈벡산의 사진이다)


그 풍경은 기이하고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아, 아름답다" "가고 싶다"보다도... 나는 저기에 가야 한다, 가고야 말겠다는 비장하기까지 한 결의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나는 카즈베기에 가는 것, 저 전망을 볼 수 있는 룸스 호텔에 묵는 것만을 목표로 삼았고 사실 그때는 수도인 트빌리시를 비롯해 다른 지역들은 거의 안중에도 없었다. 카즈베기(스테판츠민다)가 아주 외진 곳이라는 사실과 룸스 호텔의 예약이 3일밖에 비어있지 않았더라면, 그곳에만 이주일을 있었을 수도 있었다.


프러포즈와 마찬가지로, 여행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오랜 열망과 주변 사람들의 충고와 무의식적인 허영, 두려움, 혹은 의무감이 뒤섞인다. 그러나 인생에서 극적인 한마디가 입 밖으로 밀려나올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가장 직접적이고 강렬한 것은 급작스럽고 거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충동이다.


좀 더 화려하고 쉽고 편하고 그럴듯한 여행지들을 늘어놓고 조건을 따져보고 있을 때, 그 사진 한 장은 나의 두려움과 의심과 나태함을 멀게 했다.



그리하여 나는 황홀하게 취한 듯, 꼼짝없이 끌려가듯 코카서스의 낯선 나라로 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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