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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더 Feb 22. 2020

모두가 잠든 비행기 안에서 혼자 깨어있다는 것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3.

나는 이런 감각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이 아마 외로움이라 부르는 것을.


혼자 음악을 들으며 아주 오래도록 걷는 것.

사방이 외국의 언어로 넘실거리는 카페 한가운데 앉아있는 것.

모두가 잠든 비행기 안에서 혼자 깨어있는 것. 지금처럼.


말하자면 남들과 약간 분리된 상태,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오는 감각이라 할 수 있겠다. 혼자가 좋은 건지 타인이 귀찮은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아마 그 사이 어딘가겠지.

어떤 인간이 인간과 인간들과 서로 얽혀 두꺼운 나무줄기처럼 묶여있는 관계 그 자체... 인연.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과 바람이 늘 내 안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외로움을 그리워한다.


'여기'에서는 진정으로 고독해질 수 없다.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익숙한 풍경, 아는 관념, 낯익은 언어... 이 모든 것이 아주 편안하고 따뜻한 품으로 나를 끌어들여, 가슴을 꽉 조이는 무섭도록 단단한 팔로 껴안는다.

나를 알고 신경 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 그 모든 인연을 두고 가버리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든다는 사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까지. 나는 때로 이 모든 마음들에서 멀리, 뒤돌아보지 않고 아주 멀리, 떠나고 싶다.



여행은 이런 욕망을 잠깐 불완전하게나마 이룰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언젠가부터 나 자신도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인데, 나는 이제 '무엇을 보러 간다'기 보다는 '어딘가에 혼자 있고 싶어서' 여행을 한다. 그 아름다운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인파에 떠밀려 짜증만 내면서 보는 둥 마는 둥 두 시간도 채 안되어 뛰쳐나왔던 기억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그리워하는 여행의 순간들은, 이를테면 니스에서 기차역을 잘못 내려 바다에 발을 담그고 다음 열차를 기다렸던 그 시간, 유럽의 땅끝에 앉아 군밤을 먹으면서 멀리서 지켜본 석양, 홍콩의 가장 화려한 도심부터 가장 조용한 바다까지 이어지는 빅토리아 산의 비밀스러운 산책로, 아주 한적한 예일대 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난 <바다 옆의 방>, 혼자 차지하는 하얗고 안락한 호텔 침대 뭐 그런 것들.


물론 가족과 친구와 함께했던 여행들도 즐거웠다. 그건 '여행'이라기보다는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라고 부르는 게 정확하겠지만, 어쨌든 소중한 시간과 경험이었고 그 때의 사진들은 여전히 보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지바른 곳을 가로지르는 담쟁이의 본능처럼 나의 본질은 언제나 외로움 쪽으로 손을 뻗는다. 도망치고 싶다고 외친다. 따뜻하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 모든 호의와 사랑과 배려, 신경, 걱정으로부터. 그 모든 선과 실과 줄기로부터. 육지로부터 달아나 저 먼, 먼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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