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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되지 못한 마음으로도

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by 장원희

나는 솔직하다.

그러면서도 내 감정을 감추어왔다.


취미 같은 사소한 것부터 통장 상황까지,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들도 나는 잘 말했다.

다만, 그 안에서 나는 늘 주변을 살폈다. 잠깐의 표정, 말투, 그런 사소한 것들로도 그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밀려오는 감정의 해일에서 나를 뒤로하고, 내 감정보다 먼저 닿는 타인의 감정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어쩌면 나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답의 감정을 골라내는 데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상대가 좋아할 선택지를 고민하면서, 정작 자신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나 역시 그랬다.


유독 피곤한 날, 친구가 고민이 있다며 보자고 했다. 쉬고 싶었지만 거절하지 못했고, 결국 그날 이후 몸살이 났다. 그럼에도 마음만은 편했다.


내 감정을 감추고 모범답안을 찾으며 친구를 속이는 것 같았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면 실망할 거라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힘든 상황에서도 친구를 생각해 나간 내 선택은 그저 내 모습이었다. 어떤 이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친구에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눈치와 배려로도 보이던 나의 태도는 사실 진짜 나였다.


다만 조금 피로했고 가끔은 이런 성격을 바꾸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분위기와 감정을 살피는 내가 힘들었다. 늘 내 눈엔 주변의 모든 것이 보이고, 내 귀엔 의식하지 않아도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린다.

나를 바꾸기 위해선 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 많은 성찰을 했다. 내 어떤 결핍과 욕망이 버거운 나를 만들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심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그의 마음을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 흔하고 사소해 보이는 욕망은 내 삶 대부분의 목표가 되어 있었다.


어쩌다 이런 욕망을 갖게 되었을까.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나는 공감을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겁났다. 어렸을 적 엄마에게 혼이 나거나 다투어 난처한 상황이 오면 말문이 막히고는 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어떻게 그리 공감을 못하고 사람의 마음을 모르냐며 다그쳤다. 스스로도 정답을 모르겠는 내가 한심하고 답답했다. 나는 공감을 못한다고 여긴 내 모습을 더욱 부정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맞는 답을 찾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를 위한 해답만을 좇았다. 내 선택 하나가 그 사람을 덜 외롭게, 덜 슬프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걸 해야 한다고 믿었다. 언제부턴가 타인의 불편은 나의 몫이 되었고, 나는 나를 조금씩 깎아내며 그 책임을 떠안았다. 정답을 찾는 일처럼 말이다.


지금의 모습은 다소 과한 감이 있었다. 조금 덜 신경 쓰자. 부정적인 감정으로 되돌아올 수 있더라도 정답이 아닌, 솔직한 내 마음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사실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내 머리는 한 마디의 인사가 들려와도, 벌써부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정답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정답 자체가 내 진심일 지도 몰랐다.


“너는 정말 내 마음을 잘 알아줘.”

“너는 말을 참 예쁘게 해.”

“너는 참 사려 깊구나.”


자주 듣던 얘기다. 이 말들이 좋았다. 나는 이게 진실된 내가 아니라 여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이 가리키던 형상이 바로 내 모습 아니었을까. 여태 찾아 헤매던 정답들은 꾸며낸 모범답안이 아닌 내 마음이었던 거다. 다만, 늘 겪어 오던 감정 표현의 자기 검열 속에서 그 마음을 진정한 내 것이었다고 받아들이는 게 낯설었던 것 같다.


마음이 버거운 건 사실이었기에, 의식적으로 조금 노력해 보기로 했다. 혼자 조용히 보내고 싶었던 날, 같이 밥을 먹자는 친구의 말에 오늘은 조금 혼자 있고 싶어서 미안하다고 거절했다. 나로서는 굉장한 용기였다. 돌아올 실망이 두려웠지만, 걱정과 다르게 아무 일 없었다. 그 반응이 너무 평온해서, 내가 두려워하던 건 나 혼자 만든 결론이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이제 가끔 기만이라 여기던 마음 또한 나임을 알았다. 모든 감정을 책임지려는 자세 또한 과하긴 하나 내 특성이었으며, 결핍과 갈증에서 비롯되었지만 이제는 내 일부가 된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잘못된 마음이라고 책망하지 않고, 그 마음 또한 나이니까, 이제는 다그치지 않고 다듬어보면 어떨까 한다.


우리가 고쳐야 한다고 느끼는 모습들은, 때로는 바꾸어야 할 부분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나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따뜻하게 바라보고,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쉽사리 지나치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길이기를 바란다.


지난 세월 오랫동안 스스로를 책망해 왔던 나를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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