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지난 6년, 난 숨고, 숨기고, 감추는 데 익숙해졌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정말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제는 ‘일상’이라는 단어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나는 오래도록 '일상답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왔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두 끼쯤은 챙겨 먹고, 사람들 사이에서 무리 없이 어울리는 삶. 하지만 나는 그 기준에 부합하고 있었을까.
일상의 사전적 정의는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다. 삶이 얼마나 비틀렸든, 엇나가든, 그 모든 것은 결국 일상이었다. 내 일상은, 늘 같은 생각으로 시작한다. ‘오늘은 조금 더 괜찮게 살아보자. 의지와 이성으로 하루를 채워보자.’ 짐작했다시피, 결국 열에 아홉은 제자리걸음 같은 하루다. 수많은 후회와 자책 속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망가진 것 같은 자신의 삶조차 일상이라고 인정하는 것. 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그것을 받아들였다. 의지로 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매일같이 수십 번, 6년 동안 수천 번을 다짐했다. 그 세월 속에서 내가 견딘 건 한두 번의 실패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의지의 문제라고.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의지로 되는 문제가 아니라고.
나는 이제 애초에 이것은 정해진 답이 없는 문제임을 안다.
확실한 건, 나는 7년 전과 다른 존재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마치 타인을 보는 듯하다. 망가짐 속에서, 뒤틀린 일상과 공존하는 법을 배웠고, 엇나감을 계기로 나 자신을 마주했다.
나는 분명 7년 전 그 시절엔 모두가 말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의 변화가 찾아오고, 나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때는 이후였다. 내 인생 중 아주 작지만 가장 많은 일이 있었던 시간, 바로 그 6년이다.
예전의 나는 사회적으로 칭해지는 ‘건강한 정신상태’를 가졌을 뿐,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공부와 할 일을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포기하곤 했다. 성격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이제 나는, 비록 건강하다 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쓰는 것이 내게 즐거움임을 알고, 일정을 기록하고 끝까지 일을 마무리한다. 성격도 그렇다. 다른 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바로 이것이다. 그때 나는, 나를 몰랐다.
삶은 참 기묘하다.
어떤 것은, 가까워 보여도 끝내 닿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어떤 것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던 일이, 어느 날 문득, 나의 것이 되고 만다.
나를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이,
끝내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
정의조차 해본 적 없던 고통이, 어느새 내 일이 됐다. 이상하게도, 그 고통은 동시에 내가 가장 매달리게 된 것이기도 했다.
6년간 끊임없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 아이러니들에 대해 고민했다. 나아졌는가, 하면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계속 나를 찾아내겠다. 더 많이 돌아보고,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며. 언젠가 내 가장 깊은 결핍과 화해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 문제를 명시하지 않는 까닭은, 비단 그것에 한정된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금씩 아프다. 그 아픔을, 어쩌면 자신이 아프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아가는 이도 많다.
아픔을 나누는 것, 우리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을 나누는 것. 가끔, 우리를 더 잘 아는 건 내가 아닌 날 마주한 사람이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그 모든 아픔을, 함께 조용히 들여다보고 싶다. 나는 우리를 통해 나를 찾고, 마치 화면 속 나를 바라보는 듯 나를 생각한다. 이 글쓰기 역시 그러한 기분이다. 내 6년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마음이 든다.
나는 매일을 버틴다. 사람들 속에서, 일상 속에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하지만 이에 좌절하고, 자책하며 살아가지만은 않겠다. 일상은 바뀌었을지언정, 내 삶까지 앗아가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나중에 이 순간들을 돌이켜봤을 때 사무치게 후회하고 싶지만은 않다.
같은 아픔이 아니더라도, 혹시 자책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당신을 책망하고, 당신의 의지를 약하다고 좌절하며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복잡한 인간이다. 나는 그 세월 동안 나도 모르는 수많은 허기와 결핍이 내 속에 있음을 알았다. 내 지금은, 그 모든 것의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나치게 많은 감정을 책임져왔고, 나를 책임져왔고, 나의 허기를 모른 체했다.
그래도 살아남았기에, 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이제 그 모든 시간 속에서 고민해 온 나의 아픔과 마음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바라보아주려 한다.
내 글이 나에게, 그리고 아픔을 간직한 우리에게 조그마한 위로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나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내면의 나를 마주하고, 깊은 곳에서 나를 끌어올릴 마음을 찾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