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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by 장원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참으로 좋아하는 말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걸 넘어서 이 표현이 나올 때면 어딘가 가슴 깊이 울렁이는 기분이 든다. 무엇이 담긴 걸까. 결국 이 말은 있었을 어려움들과 시련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유혹과 흔들림, 무엇이든 우리가 우리를 잃을 수 있는 순간들을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우리를 지켜낸 모습을 연상시킨다.


게임 <언더테일>을 20번 넘게 플레이할 만큼 무척 좋아했다. 모두가 플레이어에게 덤벼옴에도 한 명도 죽이지 않고 전부 살리는 선택을 하면, 많은 유저의 가슴을 울렸던 연출을 볼 수 있다. 있던 세계로 돌아가기 전 방문하는 장소에서 거울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당신이다. (Despite everything, it’s still you.)” 이 한마디를 보기 위해 힘든 여정을 마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도 플레이어를 꺾지 못했고, 어느 순간에도 자기를 잃지 않았으며 결국 끝까지 지켜내었음을, 그 수많은 의미와 감동을 한마디의 대사로 전달한다.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흔들릴 수 있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결국 견뎌내고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해 온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이 견뎌냈고 지켜냈기에,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당신이다.


사실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가끔 가만히 앉아 옛 일들을 떠올린다. 모든 순간을 이겨내진 않았고, 지금도 이겨내지 못한 일들이 있다. 그래도 살아있다. 그리고 살아있어서 알게 된 것들이 있고 찾은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으니까, 터득한 순간들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대학에 가 하고 싶던 공부를 하고, 엄마와 하나같은 사이가 되고, 고치진 못해도 조금씩 좋아지는 나를 만나고, 이 모든 것들이 말이다.

언제나 어려움은 매 순간 삶에 도사리고 있다. 지치기도 하고 지겹기도 하다. 때로는 그저 막막함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결국 이후에 내게 해 줄 한마디만을 떠올린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나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라도 나는 견디고 나를 지켜내게 된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이다.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앞으로도 몇 가지의 이야기를 더 하려 한다. 가벼운 주제였을 때도 있고, 다소 무거운 주제였을 때도 있다. 그저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어떤 일이었든 그럼에도 겪어내고 오늘까지 살아있으니까, 나는 오늘에 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말이다.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제 와 그때를 바라보면, 한 번도 빠짐없이 그 순간엔 몰랐던 의미들을 발견한다. 아마 이 순간조차 또 다른 미래에 떠올린다면 오늘의 다른 모습이 기록되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늘 훗날의 나였다.


우리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크고 작은 고난을 만났다. 우리들은 아직 살아있다. 어려움 속에서 어떤 순간은 졌지만 어떤 순간들은 분명히 견디고 이겨내었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너에게, 그리고 언젠가 다시 이 글을 읽을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오늘을 잘 살지 못했어도 괜찮다고, 멋지게 이겨내지 못해도 괜찮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기 숨 쉬고 있다면, 이미 충분히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언젠가 훗날의 우리가 지금을 돌아보며 또 한 번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그럼에도 살아 있었기에, 여전히 너이고 여전히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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