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있으니까
나는 많은 걸 사랑했었고 사랑했기에 아끼고 위해주었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슬프고, 힘든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참 많은 걸 했다. 그것이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어려움이더라도 나는 그저 내 옆에서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만을 바라고 있었다.
어떤 선택에 있어 흔히 악마의 목소리로 비유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새벽 2시, 야식의 충동에 휩싸여 치킨을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먹어도 돼, 그냥 먹어” 하는 목소리 말이다. 이제 와 돌아보니, 나였다. 그래야 행복할 것 같았으니까, 그 선택으로 야기될 문제 정도는 그의 기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몇 년 전 고관절 수술을 했다. 수술도 힘들지만 그 후 재활과 생활이 훨씬 신경 쓸 게 많았다. 인공관절을 유지하기 위해 고강도의 운동이 필요했다. 나는 무엇을 했나. 아파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매번 말로만 내일은 꼭 운동을 나가자 하고는, 막상 그날이 되면 힘겨워 보이는 엄마에 오늘은 푹 쉬자는 말만 반복했다. 밥도 그렇다. 고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어 감량을 하겠다는 엄마에게 굶는 모습을 못 보겠어서 자꾸만 무언가 갖다 바쳤다. 고기도 굽고, 빵도 사 오고, 죽을 해줘도 한 솥을 퍼줬다. 학원에서도 그랬다. 아이들은 대개 밤늦게까지 저녁도 못 먹고 학원을 다녔다. 여기가 그날 세 번째 학원이라는 아이의 말에, 나가야 할 진도가 한참인데도 피곤에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깨워 억지로 시키기가 미안했다.
어느 날 엄마가 다리가 아프다고 했다. 걱정이 되어 이야기해 보니 수술 후 재활병원을 나온 뒤 다리의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쪽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제야 갑자기 정신이 차려지는 기분이었다. 보호자랍시고 한 일이 없었다. 학원 또한 그렇다. 시험이 코앞인데 진도를 다 못 나간 아이가 있었다. 늘 유독 피곤해 보여 타일러서라도 시키지 못한 까닭이다. 나는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다면서 진정으로 그들을 위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내가 여태껏 해오던 건 가장 쉬운 사랑이었다. 무책임의 사랑, 나에게만 사랑이었던 그것은 그들에게 독이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쉬운 사랑은 도처에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그저 그들이 사랑스러워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밥과 간식을 원하는 대로 주는 일,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친구에게 당장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듣기 좋은 말만 뱉는 일, 나는 왜 그랬을까. 진정한 사랑이란 그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북돋우며 지지해 주는 일이었다. 우리 엄마는 그걸 고루 잘했다. 가끔은 내 기분을 살펴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고 가끔은 내가 듣고 싶지 않았던, 그러나 꼭 필요한 말을 하며 나를 나아가게 해 주었다. 어쩔 때는 그런 엄마의 모습이 서운했다. 엄마도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나는 이제 진정한 사랑을 하려 한다. 몇 달 전 엄마의 손가락에 염증이 생겼다. 피곤하면 꽤 불편해져 꼭 제거하기는 해야 했다. 엄마는 겁이 많다. 염증 처치를 자꾸만 미루는 게 나중에는 병원 얘기만 나와도 긴장하는 듯했다. 나도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다음에 가면 되니까, 생각하고 미루어 뒀었다. 최근 이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바로 엄마를 병원에 데려갔다. 두려움에 떠는 엄마 곁에서 손을 잡아주며 염증을 제거했다. 학원도 그렇다. 지쳐 보이는 아이들에게 “우리 딱 여기까지만 해보자,” “피곤하면 나랑 같이 읽어볼까? 내가 읽어줄게.” 같은 말로 옆에서 함께하며 돕는다. 진정으로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그 과정에서 힘이 돼주고 쉼터가 돼주는 일, 그게 사랑이었다.
지금도 가끔 나는 쉬운 사랑이 하고 싶다. 싫은 소리 대신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고, 당장의 눈물만 닦아주고 싶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들을 제자리에서만 맴돌게 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불편을 함께 견디고, 두려운 순간을 옆에서 버텨 주며,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는 길을 같이 찾아주는 사람이고 싶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도망치지 않기. 내 마음이 편한 쪽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쪽을 고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