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인혁 Jul 28. 2022

커피 말고 아무거나 주세요

커피 못 마시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우리나라는 커피 소비량으로 세계 6등인 나라다. 커피 콩이 자라지 않는 나라(라고 쓰려다 커피콩 재배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보고 급하게 내용을 수정했다.  세상 많이 좋아졌어.)


커피콩이 자라기도 힘든  땅에서 6등이라니. 하긴, 생각해 보면  골목에 프랜차이즈 카페만 서너 군데인  나라에서 커피를  마시고 버티기는 불가능하다. -영화-카페로 고정된 데이트 루틴만 보더라도,  나라에서 커피가 차지한 지위는 거의 주식이나 다름없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즐기지는 않지만, 카페의 분위기는 좋아한다. 이 무슨 클럽에 음악 들으러 가는 얘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다. 적당히 소란스러운 소음, 적당히 어두운 조명, 맛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 커피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참 여유롭다. 그래서 주말의 한적한 동네 카페들을 찾아 나선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는 집 근처의 베이커리 카페인데, 핑크빛 외관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왔다.


중국집의 기본은 짜장면인 것처럼, 카페의 기본은 아메리카노다. 아무리 비싸 봐야 대개 6천 원을 넘지 않는 착한 가격도 마음에 들고, 일단 전직 카페 알바의 입장에서 아메리카노는 만들기가 참 쉽다.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많이들 사주세요.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메리카노의 세계는 두 파로 양분된 암흑가와 비슷하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하다. 아아파와 뜨아파. 중국집의 찍먹파와 부먹파에 이어 치열하게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암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더위의 이번 여름이 오면서 아아파의 승리로 끝난 것 같다. 진짜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저히 아아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계절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의 나에게 아메리카노는 어른들의 상징이기도 했다. 가끔씩 부모님들 모임에 동석하게 되면,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아메리카노를 시키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메리카노는 집에 있는 맥심 봉지를 몰래 뜯어가며 만든 커피의 맛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진짜 어른들만을 위한 음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메리카노는 가격을 생각한 어른들의 배려이자, 제일 무난한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렇게 기대했던 아메리카노와의 첫 만남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언뜻 보면 콜라같이 생긴 맛있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순도 100%의 쓴맛. 그래도 나름 아메리카노의 미묘한 고소한 맛과 쌉싸름한 맛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의 아메리카노는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만 이런 걸 마시는구나. 그렇게 맛없는 생강즙을 꿀떡꿀떡 잘 마시던 아버지를 보며, 어른이 되면 상대적으로 쓴맛에 둔감해지나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이렇게 나처럼 아메리카노에게 배신당한 사회 초년생들을 위해 '아샷추'라는 메뉴가 등장했다. 아메리카노와 마찬가지로, 아샷추와의 첫 만남도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의 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 손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스티에 샷을 추가해 달라고 하셨고, 나는 이것이 신종 진상인지 아니면 나를 테스트하는 것인지 혼란에 빠진 채로 손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어떤 악의도 없는 순순한 얼굴이었다. 뒤이어 사장님은 이것이 아샷추라는 메뉴라는 것을 알려주셨고, 그제서야 의문은 풀렸다.


커피에 물을  먹는 아메리카노에도 기겁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조차도, 야삿추를 맛보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한창 대세였던 단짠단짠에 이어,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과 아이스티의 달콤한 맛이 만들어내는 쓴단쓴단의 맛에 흠뻑 빠진 요즘 나의 카페 1픽은 스타벅스가 아닌 빽다방이다.


여러 종류의 아샷추를 맛보았지만, 빽다방의 비율은 따라올 자가 없다.  모금을 마시면 이건  과하게 달지 않나? 싶을 정도의 당도가 느껴진다. 기대보다 후회가 밀려올 때쯤, 샷의 씁쓸한 맛이 어디선가 은은하게 퍼져온다. 그러면 안심이 된다. 이런 메뉴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내는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상이라도 줘야 하지 않나 싶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역시 아샷추를 선택했다. 마지막 감상평을 남기자면 아샷추는 인생의 맛이다. 달콤한 맛이 몰려오면, 꼭 끝에는 쓴맛의 여운이 탁 치고 나간다. 좋은 일에는 꼭 나쁜 일이 생기는 인생의 절대적인 법칙과도 같다. 뭐 어쩔 수 있나, 꾹 참고 또 한 모금을 마셔보는 수밖에. 빽다방의 미스터리한 아샷추의 비율만큼, 우리 인생의 비율도 참 알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많던 우영우는 어디로 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