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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혁 Dec 06. 2021

오해와 잡음으로 얼룩진 : 메신저

르-르네상스 : 다시, 인간으로 1


메신저가 없는 우리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만큼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준 새로운 커뮤니케니션 수단이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텍스트 중심적인 메신저로 접근성이 뛰어나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용한다.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는 메시지를 보내는 단순한 역할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을 이어가는 허브의 역할도 수행한다. 저장된 전화번호의 사람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이나, 친구의 친구까지도. 이러한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며 대한민국에서 필수 어플리케이션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서,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자기 전까지도 우리는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곳에서 진행한다.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식


카카오톡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어려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인 것 같다. 물론 단순한 어플리케이션이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대화들에는 너무도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이 병렬적으로 산재해있다.

상대방과 함께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연락하는 방식부터 서로 시차를 두고 연락하는 비실시간 방식에서의 연락, 단체톡방까지 각 톡방마다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가진다.



1.1 실시간 1대 1



대화와 실시간 메시지는 실시간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다른 모습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보인다. 실시간 메시지는 나의 타자 속도와 상대방의 답에 대한 예측 같은 부수적인 요소들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메신저에서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 이야기가 나온 상황이라고 가정하자. 나는 그 카페의 맛있었던 메뉴를 이야기하려던 찰나, 타자가 조금 더 빠른 상대방은 나보다 먼저 카페의 단점들을 늘여놓을 수도 있다. 실제 대화에서는 서로를 배려하며 기다려 줄 수 있는 짧은 시간이겠지만, 스마트폰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우리는 상대방의 상황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상대방의 대답에 나는 어떤 말을 해야하나 고민을 할 것이다. 하던 말을 계속 할지,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갈지. 내가 고민하는 순간의 공백은 상대방에게 의아함이나 불편함을 줄지도 모른다. 너무도 많은 잡음들이 생긴다.



집 앞에 새로운 카페가 생겼는데

    거기 이쁘긴한데 맛은 별로더라

카페라떼 시켜봤는데 맛있ㅣ



1.2 비실시간 1대 1


나의 시간과 상대방의 시간에는 시차가 생긴다. 하나의 물음을 보내면 몇 분에서 몇 시간 뒤에 하나의 답변이 온다. 우리는 답답함을 느낀다. 나는 궁금한 것이 아무리 많아도, 물음표로 채팅창을 도배할 수는 없기에, 하나의 물음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테다. 말할 것이 더욱 많음에도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아서, 그 물음과 답 사이 수많은 물음들을 버려야만 했을 테다. 그러고는 숫자 1이 사라지기를 기다릴 것이다.

그런 시차들은 대화의 흐름을 끊고는 한다. 끊기기 전까지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다시 톡방에 들어온 이가 뉴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를 짓지 못 한 채로 끝나게 된다.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상대의 답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답장이 올 때까지 상대방을 향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시작하기도 한다. 보냈는데 읽지 않았다면 왜 읽지 않았는지를 고민하거나, 읽었는데 답장이 없다면 왜 답장이 없었는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고 이어나가는 그 모든 시간동안 고민은 머리에 남아 계속해서 괴롭히기도 한다.



1      자니?

1      자는구나?

1      잘 자.



1.3 단체톡방


메신저는 입력과 기록과 전송의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완료된다. 그만큼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고,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대화에서는 충분히 고민하고, 말실수를 했다면 그 말을 우물거리며 삼켜내거나 헛기침으로 강제중단시킬 수 있다. 하지만, 메신저에서는 그럴 수 없다. 모든 것은 순간에 기록되고 순간에 보내진다.

톡방을 헷갈려서 실수로 다른 내용을 보내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다. 우리는 쉽게 톡방을 잘못 찾아가고는 한다. 톡방을 헷갈린다는 뜻은 나의 대화 상대를 헷갈린다는 뜻히다. 실제에서는 이런 일이 나타날 수 없다. 상대방도 헷갈릴만큼, 말실수가 쉬운만큼. 그만큼 가벼운 커뮤니케이션이겠다.



(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읽는 이가 불어넣는 텍스트의 생명


전화를 할 때는 대화의 메시지와 더불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반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요소인 목소리의 톤이나 높낮이, 속도라는 정보들을 통해서 오늘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챌 수 있다. 억지로 자신의 목소리를 기분 좋은 척 꾸며낸다고 해도, 우리는 이를 알아챌 수 있는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에는 그런 정보들이 없다. 우리는 대화하는 이의 평소 모습만을 상상해서 대입할 뿐이다. 눈 앞에 주어진 문장을, 읽는 이가 보낸 이의 목소리를 상상하며 다시 읽어내려가는 것이다. 이는 두 명이서 하는 대화라기보다는 혼자서 하는 대화의 방식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대방의 감정을 읽지 못하거나, 잘못된 해석으로 스스로 오해를 만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귀찮은 날이나 힘든 날에는 띄어쓰기를 신경쓰지 않거나 오타가 가득한 메시지를 보냈던 적이 있었다. 내 마음은 사실 그렇지 않음에도, 그런 성의 없는 오해투성이 메시지를 받은 이는 어떻게 반응해야만 했을까. 미안해지기도 한다.



네알겟습니다 그렇게하면좋을거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을 거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을 거 같아요!!



텍스트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죽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읽히고 머리에 들어간 순간 생명이 생기게 된다. 읽는 이가 텍스트에 생명을 불어넣기에, 결국 텍스트는 보내는 이보다는 읽는 이가 어떻게 해석하냐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미안해'라는 워딩도 이를 읽는 이의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보낸이는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감정을 담았을지 몰라도 읽는이에게는 평소에 가볍게만 보이는 상대방이었다면 어떨까. 아니면, 읽는이가 힘든 하루를 보내 날카로운 상황이라면 어떨까. 읽는이는 그 문장에서 전혀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비꼬는 듯한 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나의 단어에 두 가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해..



메신저를 읽는 방식만큼 메시지가 가지는 형식도 의미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글꼴도 의미를 갖는다. 귀여운 필기체부터 진지한 명조체까지 우리는 다양한 글꼴을 선택하고 사용한다.

최근에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으려고 뻣뻣한 돋움체스러운 기본 글꼴을 책같은 명조체로 바꿨다. 바꾸고나서부터는 톡을 할 때 평소에 장난기 많던 상대방의 농담도 웃기게 읽히지 않았고, 나조차도 농담을 하거나 가벼운 어투로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글꼴이 진지해져서 그런지, 그 글꼴로 만들어진 수많은 메시지들도 진지해진 것 모습이었다.

글꼴 뿐만 아니라, 말풍선에 한 단어나 한 마디를 끊어서 여러개의 말풍선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나 몇 문장을 하나의 말풍선에 넣는 사람도 있다. 또한, 쉼표나 마침표, 물결무늬 같은 작은 문장부호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모두 마찬가지이다. 작디 작은 차이임에도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손실되지 않은 나의 감정을 보내기도 어렵다.해석을 방해하는 잡음들이 너무 많아진다



ㅋㅋ

ㅋㅋㅋ

ㅋㅋㅋㅋ

커뮤니티와 SNS에서 화제가 된 ㅋ의 개수와 의미

: 이렇게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은 커뮤니케이션 규칙들은 변칙성을 가져오고, 해석에 방해를 준다.



무엇인가 끼어들수록



메신저에서 우리의 대화는 깊어질 수가 없다. 단순히 시간적 측면에서만 바라보아도, 통화나 만남보다 같은 양의 메시지를 보내는데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생각이 바로 목소리로 나오는 것과 손을 통해 나오는 것의 시차도 이를 거든다.



통화 ㅡ 생각 ㅡ 목소리 ㅡ 귀

카톡 ㅡ 생각 ㅡ 손가락 ㅡ 자판 ㅡ 눈



자판을 치면서 다시 한 번 나의 생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생긴다. 말실수를 하지 않게 해주는 좋은 시차일 수도 있지만, 한번 더 생각하기에 마음에서 직접 전하는 말은 되지 못한다.

자판이 끼어들고, 시간이 끼어들고, 생각이 끼어든다.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수록 뒤틀리고 상하는 것이 감정이기에. 편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사용하는 메신저일 테지만, 오히려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구석이 분명히 있다.






메신저 안에는 병렬적으로 연결된 커뮤니케이션 방식들이 산재해있다. 방마다 각기 다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마다의 평소 습관(맞춤법을 중요시 여기는가, 답을 빠르게 하는가, 이모티콘을 자주 쓰는가 등)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주의를 기울여서 톡을 이어나갈 때 그나마 대화스러운,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에 다가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쉬운일이 아니다. 톡방을 헷갈릴만큼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그 사람의 평소 습관이나 성격을 알더라도 오늘의 기분은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메신저는  절대로 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피상적이고 오류투성이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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