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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현 Dec 05. 2022

불편한 용기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Unsplash, @rawkkim
편의점이란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곳이고 손님이나 점원이나 예외 없이 머물다 가는 공간이란 걸,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오랜만에 참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사실 처음 몇 줄을 접하고는, 이렇게나 당당하게, 대놓고 ‘사람 사는 따뜻한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하는 생각에 잠시 멈춰 섰다. 이런 류의 글에 스스로가 관대한 편이 아니라 느꼈기에 거부감이 컸다.


 나도 편의점에 잔뼈가 굵다. 편의점 야간알바생으로 2년 반을 일했고, 오전 알바를 수개월 겪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름의 ‘꼰대력’이 글을 소화하는데 약간의 장애물로 작용한다. 예컨대 업무에 대한 사소한 디테일이 어긋나 있다는 점이나, 지나치게 따뜻한 사장님이 꽤나 어색하다. 물론 타인을 위해 ‘나의 어디까지를’ 내어줄 수 있느냐는 각자의 철학에 따라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 ‘손님’이라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 편의점은 절대 쉬운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나가는 작가의 문체뿐만 아니라, 역사 교사 출신의 편의점 사장님, 공무원 준비생인 알바생 등의 인물 설정이 흥미롭다. 물론 압권은 서울역 노숙자 출신의 야간 알바생이다. 입체적이다 못해 입지적인 인물이라 느껴지는 그는, 편의점을 둘러싸고 공전하는 이야기들의 무게추이다. ‘그’라는 사람, 그의 이야기를 필두로 인물들 각자의 색채가 가지를 뻗어나간다.


 편의점의 인력은 오여사, 시현, 사장님, 그리고 독고 씨 이렇게 넷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서로 얽힐만한 것들이 전무하다. 그러나 편의점이라는 ‘불편한’ 공간에서 이들은 독고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른 가능성들을 만들어나간다. 누군가에게는 꿈의 실현을, 혹은 소중한 이와의 화해를, 그리고 본인에게는 빼앗겼던 삶을 되찾을 가능성을 말이다. 그 과정에서 독고의 용감하고 따뜻한 말과 행동이 서사를 이끈다.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영상매체나 소설에서 접하게 되는 ‘한 호흡의 세상’은 내게 언제나 경계 대상이다. 그 안에서 단번에 해결되는 것 같은 문제들은 사실 수많은 인과들의 결실이니 말이다. 혹자는 해결되지 않은, 혹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고 죽기도 한다. 때문에 그들의 세상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문법은 내 삶을 가난하게 만든다. 한두 명도 아닌 여러 사람이 간직한 문제들을 단번에 해결하는 독고의 극작술이 불편한 까닭이다.


 그러나 술술 읽히는 문체들 속 인물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면서, 어느새 나도 이 ‘불편한 편의점’에 가서 독고를 만나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해주는 로또와도 같은 그가 아닌, 묵묵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대가 없이 내 삶을 응원해줄 사람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그런 마음에서 읽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시어머니처럼 책을 대했던 스스로를 약간은 반성하게 된다.


 내가 참여하지 않는 세상이 따뜻할까,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살 부딪히고 경험한 세상과 저 너머의 이야기 사이의 틈에는 너무도 많은 모순들이 보였다. 닿을 수 없는 포도나무를 올려다보는 여우처럼, 따뜻한 삶에 대한 믿음을 저주하곤 했다.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래도, 이야기에 취해 또다시 믿어보기로 한다. 아직 세상이 따뜻하다고. 사람을 사랑할만하다고.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인생은 원래 문제 해결의 연속이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풀어야 할 문제라면, 그나마 괜찮은 문제를 고르려고 노력할 따름이고요.

- 김호연, <불편한편의점>(나무옆의자,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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