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으로 읽은 ‘모순’

양귀자, <모순>

by 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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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람들과 첫 독서모임을 가졌다. 부유하는 많은 세상의 말들과 때로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말씀 사이에서, 한 사람의 고되고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결과물을 바라보고 싶었다.


많은 일들이 그렇듯이 정작 일을 이끌어가는 것은 내 힘이 아니다. 여러 질문 속에서 삶과 사랑의 본질과 자세에 대해 탐구할 수 있었다. 내가 갖지 못했던 물음을 되뇌고 다른 시선을 모아 각자의 답을 찾아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으므로 지난한 복기의 과정을 거치지 아니하지 않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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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을 위해 각자 노션에 추천 도서와 이유를 업로드했고, 이후 투표를 거쳐 양귀자의 <모순>을 대상 도서로 선정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었고 그중 한 번은 필사를 했다. 그래서 <모순>이 청춘의 스테디셀러가 된 작금의 현실에 상당히 공감한다. 그래도 솔직히 세 번 읽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 읽고 난 후 3년에 거쳐 같은 책을 세 번 읽어낸다는 일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는 변화하지 않는 문자 속에 매 순간 변화하는 나를 박제하는 일이다. 그래서 같은 문장에 반응하는, 혹은 반응했던 나의 다름을 읽어낼 수 있다. 즉 나는 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알았다.



모순


양귀자의 『모순』은 25살 평범한 여성 안진진이 삶의 복잡한 관계와 감정 속에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시장에서 내복을 파는 억척스러운 엄마, 알코올 중독으로 가족을 떠난 아빠, 조직폭력을 동경하는 남동생 등 진진의 가족은 어딘가 모자라고 갈등이 많지만, 그 안에서 진진은 삶의 본질을 찾아간다. 부유하지만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 이모의 이야기는 진진에게 또 다른 인생의 모순을 보여주고, 사랑에서도 그는 안정적인 남자 나영규와 감성적이지만 불안한 김장우 사이에서 갈등하며 진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모순>은 가족과 개인의 삶에 얽힌 방정식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삶을 무어라 스스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경험 부족 25살의 여성 안진진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삶을 탐구하고 운명을 소유하려 든다. 그 소유욕은 삶의 ‘부피’를 늘려 경험과 신념을 갖춘 사람이 되고자 함이다.


삶에 대한 소유욕이란 주인의식이며 니체의 생의 철학과 가깝다. 주어진 규범에 주눅 들지 말고 삶을 긍정하며 운명을 ‘개척’해나가라는 삶의 투쟁을 말한다. 주어진 운명과의 투쟁은 많은 메타포를 낳기도 하지만, 우리네 삶에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기독교의 자유의지를 오해해서 하나님께 대들었던 스물두 살의 박현인이 그러했다. 그때의 나는 입영지를 수차례 바꿔가며 내 운명을 내가 결정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지금의 나는 스물다섯 안진진보다는 더 명확한 운명을 감당하고 있다. 투쟁할 영역은 정해졌고 삶을 대하는 자세는 긍정적이며 삶의 두께를 위해 내가 쌓아야 할 경험은 목전에 가득하다. 진진에게 결혼이 있다면 취업, 커리어, 사역, 인간관계 등이 그러하다.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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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때 그 잡채
내가 내 삶에 대해 졸렬했다는 것, 나는 이제 인정한다. 지금부터라도 나는 내 생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되어가는 대로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릴 것이다. 인생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무엇이다.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인생의 부피를 늘려 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준 주리였다.


우리가 붙잡힌 문장들은 이러하다. 그리고 그 심오한 문장력과 통통 튀는 진진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여러 질문을 갖게 되었다. 특히 책을 관통하는 물음인 삶의 모순성과 사랑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가족에 대해 진진이 갖는 애정과 불만의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물었다.


진진은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가족으로 인해 생긴 삶의 관성을 피하려 애쓴다. 결국 아버지와 닮은 김장우가 아닌 이모부를 떠올리게 하는 나영규를 택한다. 이는 그녀가 모순을 딛고 살아내겠노라 하는 다짐일지, 혹은 모순에 굴복해 확률을 높이며 살아가고자 택한 차선일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


포탄이 터지고 총알이 쉭쉭 나는 전쟁터에서는 누구라도, 결코 지루할 수 없는 법이다. 가난한 삶이란 말하자면, 우리는 생활에 절박한 포즈 외엔 어떤 것도 허락하지 않는 삶이란 뜻이다.


가난은 진진에게 실체적인 괴로움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탐구의 대상이었다. 진진의 가족은 이모의 가족과 대비되게 무척 가난했다. 하지만 억척스럽게 삶을 상대하는 어머니와, 일몰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던 술꾼 아버지는 진진에게 삶의 두께를 늘려주었다.


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절박하고 강인하게 가정을 일궈낸 어머니는 진진에게 다소 냉소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는 ‘타인에 의해 단 한 번도 정확히 읽히지 않는 텍스트’였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와 쌍둥이지만 10년은 젊어 보이는 이모를 향한 애틋함을 통해 드러난다. 술꾼 아버지에게 향했던 관용이나 이모에 대한 애정이 어머니에게 적용되지 않았던 탓은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자기방어적 기제가 발현된 까닭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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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과 수플레
강함보다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진한 향기보다 연한 향기를 더 선호하는, 세상의 모든 희미한 존재들을 사랑하는 문제는 김장우가 가지고 있는 삶의 화두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향해 직진으로 강한 화살표를 쏘지 못한다. 마음으로 사랑이 넘쳐 감당하기 어려운 면 한참 후에나 희미한 선 하나를 긋는 남자.


해 질 녘에는 절대 낯선 길에서 헤매면 안 돼. 그러다 하늘 저변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 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 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지고 마는 거야.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 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진진의 괴로움은 아버지와 아버지를 닮은 남자로부터 극대화된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들은 그녀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비겁함일 수도, 누구보다 인간적인 모습일 수도 있다. 이를 판단하는 것은 진진에게 달렸다.


결국 모순적인 삶에 대한 무수한 물음은 진진의 결정으로 답이 수렴될 것이다. 그 모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끝내 진실을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손을 맞춰보기로 한 아버지는 중풍과 치매가 걸려 둘만의 약속도 사랑의 확인도 잊은 채 산송장처럼 돌아왔다. 사랑의 약속은 집행일을 알지 못하는 사형수처럼 진진을 붙들어 놓는다.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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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피바라 1기


그래서 진진이 정의 내린 삶은 무엇이며 그녀는 어떠한 선택을 했는가. 우리는 답하려 하기 보다 생각을 모아보았다. 그 과정에서 답답한 김장우와 뻔뻔한 나영규에 대해, 사랑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모순’의 의미와 삶의 두께에 대해 대화했다.


Q. 김장우와 나영규라는 남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은지: 김장우는 현실에서 만나면 답답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매력 있는 사람일 것 같아요. 마음에 넘치는 주변을 향한 사랑 때문인지 한 사람에게 강한 시그널을 주지는 못하지만 마음을 조심스럽고 사소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만의 매력이지 않을까요? 그 매력 때문에 마음이 갔을 거예요.


다은: 나영규가 뭔가를 할 때마다 이 행동조차 계획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러면 결혼은 못 하지 않을까요? 모든 것이 계획되어 있는 남자에게 나라는 변수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안진진으로서의 나를 바라봐 주는 것이 아니라, 그때 필요했던 결혼 상대가 아닌가 하고.


현인: 결국 소설의 장치에 의해 김장우는 아버지를, 나영규는 이모부를 닮게 그려질 수밖에 없어요. 김장우를 사랑하는 안진진에 의해 소설이 쓰였기 때문에 김장우의 장점은 확대되는 반면 나영규의 장점은 축소되겠죠. 김장우는 데이트 내내 눈치만 보고 주도적으로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가난한 남자이지만, 나영규는 계획을 짜고 동선을 연습하고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죠. 나영규가 억까당하는 면이 있지 않나 싶네요. 한편으로는 ‘증명되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이 복선이 되어 김장우와의 사랑도 시작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소설의 장치이자 반전의 빌드업이 존재했기 때문에, 김장우든 나영규든 각각 아버지와 이모부의 분신이 아닌 그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진진의 선택은 외부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 외부적 환경이 김장우가 아닌 나영규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요.


Q. 결국 소설의 최대 논점은 ‘사랑’과 ‘모순’이죠. 그중 사랑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태민: 책에서 사랑은 ‘감옥’이나 ‘창살’과 같은 표현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알듯 말듯 해요.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어떠한 인간관계도 맺지 않고 혼자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본질적으로 그렇게 태어나지 않은 것 같아요.


현인: 김장우가 생각하는 사랑은 무언가를 함께 짊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김장우는 형이 잠든 사이에 형수 몰래 형의 양말을 빨아주고 싶다고 말하고, 안진진은 언젠가 김장우의 양말을 빨아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사랑을 말해요. 김장우가 진진에게 사랑을 더 확실히 표현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짐을 짊어달라고 부탁할 수 없기 때문일 테고요. 반면 서로에게 부채감이 없던 나영규는 진진에게 사랑을 표현하죠. 나영규의 사랑이 더 직관적이에요. 요망한 안진진은 나영규에게도 사랑과 유사한 감정을 느낀다고 고백하죠. 어쩌면 모순의 법칙은 사랑이란 게임에도 적용되는 것만 같네요. 더 복잡하고 사연 있어 보이는 쪽이 매력 있어 보이는 것이 말이죠. 물론 선택은 직진남이지만ㅎㅎ


다은: 책임감을 느끼는 것부터가 사랑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책임감을 지고 행동하는 것은 사랑의 방식이고요. 우리가 예수님 십자가 사랑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적극적으로 그 책임감을 지고 행동하는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사랑은 아니라고 반문할 수는 있겠죠. 그래도 변명하자면 사랑이 아닌 건 아니에요. 김장우도 이처럼 진진을 사랑했지만 사랑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진진에게 적극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었겠죠. 진진도 부담스러웠을 거고요.


은지: 진진은 결국 김장우를 선택하지 않았던 스스로에 대해 배덕감을 느꼈고 그 감정이 사랑의 실체를 더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소설에 보면 “그(김장우)가 품고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의 부피가 감소될 어떤 말도 절대 하고 싶지 않다"라는 문장이 나와요. 진진은 김장우에게 양말 장사를 하는 어머니 대신 우아한 이모를 어머니라고 속였고, 살인미수로 감옥에 갇힌 동생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어요. 이런 사랑이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약점을 드러내기가 어려운 거죠. 사랑해서 떠난다는 걸까요? ㅎㅎ 김장우가 사진기 사인 것도 복선인 것 같은데, 가장 사랑한 순간을 박제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평강: 저는 ‘사랑’이 뭔지는 모르지만, 안진진같은 여자는 너무 무서워요. 두 남자를 두고 사랑의 의미를 탐구한다니.. 저희 모두 안진진한테 놀아나는 것 같아요(ㅋㅋㅋㅋㅋㅋ)


Q. 그렇다면 삶이나 사랑에 적용되는 ‘모순’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인생의 부피(두께)를 키운다는 말은 어떤 의미로 쓰였을까요?

현인: 삶을 게임으로 비유한다면 게임의 법칙이 모순이라고 생각해요. 어머니가 바랐던 이모의 안락한 삶이 행복이 아니듯이 눈앞의 결과물을 그 즉시 판단할 수 없는 것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모순적인 상황에 계속해서 놓이게 될 수밖에 없고, 이를 받아들이고 정답이 없는 선택을 여러 번 하는 것이 인생의 두께를 늘리는 방법이 아닐까요?


은지: 맞아요 스스로의 태도가 확립되어갈수록 자신의 삶의 볼륨이 커지고 ‘가치관’을 세워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알잖아요.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시련과 시험이 필요하고 이를 통해서 성장하듯이요. 그 시련의 이름이 모순인 거죠.


다은: 인생의 부피를 키운다는 말의 의미는 교훈이나 깨달음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고요. 다만 그런 부피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진진처럼 정해진 틀을 벗어난 주체적인 도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학교나 학원 등 정해지 경로를 따라 지금까지 왔어요. 겨자씨만큼의 두께를 자랑하죠. 사랑을 하면 다를까 싶은 마음에 연애를 하고 싶어요. 다 주고도 더 주고 싶거나, 누구보다 이기적인 내가 희생을 하게 되는 모순이 용인되는 만남 말이에요. 사랑이 모순이지 않을까.


평강: 저는 모순이란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직장에서도 보면 더 대접받으려 할수록 입방아에 오르게 되고, 고객사에게 그렇게 하듯이 더 낮아지려고 할수록 더 인정받고 존중받거든요. 이렇게 뭔가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고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잃게 되는 그런 법칙이요. 저는 진진이 행복하게 살지는 못했을 거라고 봐요. 너무 많은 생각이 있고 책임감이 있어서, 행복에 필요한 적정량의 책임감을 넘어선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빠르게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이러한 모순의 법칙을 이해하고 제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나 책임감에 대해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태민: 제가 올해 서른이 됐거든요. 근데 진진을 보면서 굉장히 주변에 휘둘리고 유유 부단한 모습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진진이 휘둘렸던 가정사가 관성처럼 진진에게 모순을 만든 거라고 보긴 해요. 그래도 진진은 자신의 이유로 선택을 한 거니까 거기에 저희가 가타부타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저도 진진처럼 선택을 해나가야겠죠. 서른에 맞는 선택들이랄까.




결말

나는 너무나 튼튼한 성곽에 갇혀 있었고, 성곽을 부수자니 마음을 다칠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진진아. 나, 여기서 그만 생을 끝내기로 했다.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거든.


이모는 자신의 생애를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아 버린 지리멸렬함’으로 규정하고 자살했다. 그리고 진진은 김장우가 아닌 나영규를 택했다. 이 결말은 서로 인과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진에게는 어머니와 이모 모두에게 부채감이 존재한다. 전자는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한 것, 후자는 이모의 자살을 막지 못한 것으로.


그래서 진진은 어머니의 딸로서 이모의 삶을 살아내겠노라 다짐하지 않았을까. 가난에 억척스러웠던 어머니를 닮아 삶에 질문하고 선택하며 주체적으로 살아나가는 대신, 무덤과 같았다는 이모의 생애를 이해해 보겠다는 그런 다짐으로 말이다. 소설의 초반부 물음에 진진이 충실히 답하였는지 그녀의 모순은 파훼되었는지 모르겠다.


니체와 다르게 나는 인생이 회귀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진진의 삶은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이모나 어머니의 삶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을 살아낼 거라 생각한다. <폭싹 속았수다>의 애순이 섬놈을 만나 제주를 못 벗어났다고 해서 해녀인 어머니의 삶을 답습했다고는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당돌한 그녀가 당돌함을 잃지 않기를, 행복을 택하기를 주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25년의 봄을 다 써 과몰입한 이야기와 첫 독서모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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