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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현 Jan 21. 2021

내가 롤렉스를 물려받은 이유

그들이 사는 세상 


"운동하러 갔을 뿐인데 나는 롤렉스를 만났다."


힘든 7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큰 꿈을 펼치겠다는 포부와 함께 나는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유학시절 만났던 친구와 재회를 하며 결혼과 동시에 다시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재미교포였고, 한국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7년 동안의 미국 생활 덕분에 의사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동부에서만 쭉 지내왔던 지라 서부에서의 삶은 낯설고 두려웠다. 특히 대학시절 LA 여행이 나에게 준 안 좋은 추억 때문인지 엘에이에 짐을 풀기 전부터 나는 얼어있었다. 사람을 조심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은 나를 더욱 긴장시켰다. 보스턴에서도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인지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은 극에 달했고,  같은 한국사람이라도 내 마음 같지 않아서 내가 상처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세상 쫄보인 나는 내가 덜 힘들어 할 수 있는 동네를 찾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착한 가격에 치안도 좋고 안전한 동네에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설렘과 걱정이 공존하는 가운데 드디어 천사들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시민이 되었다. 좀 섬세하게 말하자면 벨에어 시민이 되었다. 


한두 달의 집 정리와 적응기간을 거쳐 구릿빛의 탄탄의 캘리인은 아니더라도 바닷가 가서 수영복을 입으려면 운동이 필수였다. 먼저, 집 근처의 피트니스 센터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대박!!


좀 괜찮아 보이는 피트니스 센터는 몇천 불의 연회비에 300-500불 정도의 월비.

뉴욕에서 건너왔다는 곳은 한 달에 1000불.

그렇다고 트레이너가 일대일로 붙는 것도 아니었다.


스케일이 다르구나...


지금 내 상황에 운동에 몇천 불 투자할 돈이 어디 있나.. 국대 준비생도 아니고 이건 좀 아니었다. 그래서 피트니스 클럽이 아닌 운동 클래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말이다.

내가 찾은 건 리뷰도 좋고, 보기에 꽤 괜찮아 보이는 발레 피트니스 클래스!!

오래간만에 요가복을 입고 콧노래를 부르며 떨리는 가슴을 안고 수업에 들어갔다. 나를 제외한 학생들은 백인이자 중동 사람이었고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나 혼자 동양인은 건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사실 더 놀랍고 충격적인 건 그들의 아웃핏(outfit)이었다.


운동하는데 주얼리가 웬 말인가..


그들의 손가락에는 잡지에서 볼법한 다이아몬드 반지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왼팔에는 롤렉스, 오른팔에는 까르띠에 팔찌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의 요가복은 요가계의 샤넬이라 불리는 룰루레몬이었고, 그들이 들고 온 가방 중엔 에르메스도 있었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 나름 연예인들과 부잣집 사모님들이 다닌다는 피트니스를 다녀봤지만,

이 정도의 풍경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운동하는데 운동복과 운동화면 충분하지 않은가..

피트니스에서 좀 눈에 띄고 싶다 하면 신상을 입고 신는 게 전부였던 나였다.


그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여기가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왜 여기서 초라함과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가...


내가 더 충격을 받은 사실은,

결코 그들은 자랑을 하기 위해 하고 온 게 아니었다. 그들의 몸에 반짝거리는 아이들은 특별한 날이 아닌 매일 착용하는 장신구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세계였던 것 같다.


운동이 끝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이 동네 장난 아니야. 운동하는데 여기저기 번쩍거려. 운동하는데 롤렉스가 웬 말이야. 그렇게 차고 땀 흘리고 뛰면 다 상하는거 아니야? ㅋㅋ 다들 대단하다 정말. 나는 그냥 운동화에 에코백 매고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야겠어. 너무 그들이 사는 세상이야."


그 이후로 나는 내 요가 바지에 나이키 운동화 그리고 에코백을 매고 열심히 참석했다. 상황에 따라 사는 거니까 나는 괜찮다 생각했지만, 가끔은 평범한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부러웠고 나도 하고 싶었고 갖고 싶었다. 여자로서 이런 생각하는 건 어쩜 당연한 게 아닐까... 

그렇다고 운동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그런 것 때문에 운동을 그만둔다면 내 자존심이 더욱 상할 것만 같았다. 나는 더욱 운동에 매진했고, 운동만 생각하며 수업에 참여했다.

 

출장으로 한국을 잠시 들어간 어느 날,

엄마는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물건을 건넸다.

 

그녀가 아끼고 아끼던 롤렉스 시계였다.


아빠 사업이 자리를 잡고 안정기에 들었을 때 아빠는 그동안 고생한 엄마를 위해 비싼 선물을 준비하셨다.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 사지 않으실 롤렉스 시계였다. 엄마 역시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명품 시계였다.

그녀는 특별한 날에만 착용했고, 그녀를 좀 더 부티나는 사모님으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이었다. 그녀에게 그 시계는 시계 이상의 의미와 추억을 가진 물건이었다. 그런 시계를 엄마는 나에게 내어주었다.


"미국 가서 기죽지 말고 살아.

 롤렉스 안 한다고 기죽을 애는 아닌 거 안다만, 그래도 차고 있으면 좀 마음에 안정이 올 거야.

 나중에 잘 쓰다가 너 아이 낳고 그 아이가 너 나이 되면 물려줘. 엄마가 너한테 미리 물려주는 거야. 알겠지?"


어떻게 엄마는 내 마음을 알았을까..


엄마의 선물에 "엄마, 나는 괜찮아"라는 말 대신 

"엄마 고마워. 잘 쓸게. 덕분에 나도 롤렉스 차 보는구나."는 말과 함께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롤렉스는 나의 품에 안겼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운동센터는 문을 닫았고, 언제 다시 열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덕분에 엄마가 물려주신 롤렉스는 내 옷장에 고이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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